신선아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2012년 7월께로 기억한다. 여름휴가 때 청주에서 친구들을 만나다가 급하게 기일이 잡힌 가처분 사건에 대한 연락을 받고 서울로 올라왔다. 휴가를 반납하고 맡게 된 사건이라 더욱 기억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그 사건을 통해 만나게 된 노동자들은 A사업장(원청 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었고, 그 사건은 하청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로 원청 사업장의 업무에 방해가 됐다며 제기된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사건’이었다.

배경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그들은 원청 사업장에서 수년씩, 길게는 십년 이상 계속 근로해 왔다. 용역업체가 수시로 바뀌긴 했으나 고용승계가 보장됐다. 가끔 1~2년에 한 번씩 용역업체 사장이 바뀔 때면 그 용역업체 사장이라는 사람이 새로운 근로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그 외에는 용역업체 사장이라는 사람의 얼굴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용역회사 사무실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른다. 가 본 적이 없으니까. 어떤 용역회사 사무실은 차량으로 3시간 거리에 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현장관리소장이라는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고, 매월 통장으로 입금되는 월급을 받아 왔다. 현장관리소장이라는 사람도 용역업체가 바뀌는 것과 무관하게 계속 고용승계를 보장받았고, 원청 사업장에서 수년간 자신들에게 업무지시를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그 원청 사업장이 자신들의 직장이었다. 그리고 수년을 그렇게 묵묵히 일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생애 처음으로 노동조합이라는 곳에 가입하게 됐다. 생애 처음으로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노동자에게 보장된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교섭권과 쟁의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가 2012년 6월이다.

그런데 그들은 교섭을 요구하면서도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근로조건 대부분의 궁극적 결정권은 원청이 가지고 있는데, 원청 사업주는 자신이 사용자가 아니라며 자신에게 교섭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하청 사업주를 상대로 임금교섭을 요구하고 쟁의행위를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원청이 자신들은 사용자가 아니니까 원청 사업장에서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원청의 주장에 따르면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일할 때만 근무지에 출입할 수 있을 뿐 쟁의권 같은 기본권의 행사는 원청 사업장에서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원청은 이같이 주장하며 그들의 생애 첫 쟁의행위에 대해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을 비롯해 각종 고소·고발까지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법원은 원청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처분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적절한 범위 내에서의 집회 개최를 허용하는 취지의 화해권고 판정을 하며 원청의 주장을 배척했다. 이후 단체협약 타결로 가처분 신청은 취하됐다. 원청의 일련의 고소·고발 조치도 1심에서는 유죄가 선고됐지만, 최근 2심 재판부에서는 이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됐다. 이 사건은 현재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항소심 재판부의 무죄 선고 소식을 전하던 그들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기뻐하기보다는 다소 의아해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지난 2년6개월 동안 원청 소속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게 보장되는 기본권 행사가 하청 노동자들인 자신들에게는 동일하게 보장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스스로 의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기본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것이다. 관련법령 어디에도 원청 소속 노동자들과 하청 소속 노동자들의 기본권 행사에 차별적 제한을 할 수 있다는 근거는 없다. 노동 3권 행사에 따른 불편함에 대한 수인의무는 노동 3권을 향유하는 노동자들을 사용해 발생하는 근로제공의 결과가 모두 사용자에게 귀속되는 것에 상응해 형평의 원칙 등에 근거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부분이다.

따라서 원청의 주장처럼 사실상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제공에 따른 결과는 모두 향유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불편에 대한 수인은 전혀 하지 않겠다는 주장은 당연히 허용될 수 없다. 그런데 어쩌면 그들은 아직도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이러한 의심들이 괜한 오해이고 괜한 우려였다고 웃어넘길 수 있을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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