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미 영화평론가
<피노키오>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썼던 박혜련 작가의 20부작 드라마로, 1월15일에 종영됐다. 박신혜·이종석 주연의 로맨틱 드라마이자, 젊은이들의 성장을 그린 전문직 드라마이기도 하고, 언론의 윤리를 다룬 사회극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한다는 가상의 ‘피노키오 증후군’을 소재로, 거짓과 진실의 문제를 깊이 탐문한다.

언론 피해자와 피노키오 기자

13년 전 기하명(이종석)의 가족은 언론에 의해 파괴됐다. 소방관이었던 아버지는 부하 소방관들과 함께 화재현장에서 순직했다. 그러나 시신이 발견되지 않자 언론은 그를 도망자로 몰며, 소방관들의 순직 책임을 전가했다. 가족들에게까지 선정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항의하던 형은 폭력 혐의로 구금되고, 따돌림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어린 기하명과 함께 투신한다. 겨우 살아남은 기하명은 섬으로 흘러들어 진짜 이름을 감추고 최인하(박신혜)의 가족으로 살아간다. 당시 가장 악질적인 보도로 기하명의 가정을 파괴했던 송차옥(진경)은 최인하의 엄마로, 이혼 후 딸과 연을 끊고 살아간다. 최인하는 피노키오 증후군인 자신에게 가장 맞는 직업은 기자라는 생각으로 도전하지만 면접에서 떨어진다.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은 기자 직종에 적합할까, 그렇지 않을까. 순진하게 생각하면 가장 적합할 것 같지만, 그리 간단치 않다. 일단 취재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거짓말들이 필요하다. 송차옥은 간단한 시범을 보이며 최인하를 보기 좋게 떨어뜨린다. 그러나 송차옥은 뉴스의 신뢰도가 경쟁사에 뒤지자 ‘진실만을 전한다’는 홍보용 계약직 수습기자로 최인하를 취직시킨다. 언론에 원한을 품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던 기하명도 아버지의 진실을 밝히고 송차옥에게 복수하기 위해 경쟁사 기자가 된다.

드라마는 방송사 수습기자의 업무를 생생히 그리며, 지금까지의 드라마들이 보여 주지 못했던 기자들의 노동 상황을 보여 준다. 일선 경찰서와 지구대에서 사건·사고를 캐내려는 수습기자들의 모습은 코믹하면서도 처연하다. 일명 ‘마와리’를 도는 수습기자들은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하고 경찰서 한편의 좁고 더러운 숙소에서 서너 시간씩 쪽잠을 잔다. 계단에 앉아 삼각김밥을 씹으며 경찰들에게 사건 기사를 달라고 구걸하거나 벽에 귀를 대고 엿듣는 ‘벽치기’를 하기 일쑤다. 드라마는 이들의 노고나 애환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론의 역할과 윤리에 대한 질문들을 던진다.

빙판길에 넘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행인들에게 위험을 알리지 않고 찍는 것은 윤리적일까. 드라마는 혼란스러워하는 수습기자에게 “기자는 지켜보는 것이 공익이다. 뉴스로 만들어 구청직원들이 보게 하고, 대통령이 보게 만들고, 사람들이 조심하도록 만들어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공익이다”는 선배의 대답을 들려준다. 명품마케팅의 폐단을 비판하는 뉴스가 오히려 명품마케팅에 활용되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는 주책없을 정도로 자상한 엄마이자 온유한 박로사(김해숙) 회장이 지닌 놀라운 두 얼굴을 통해 답을 보여 준다.

자극적인 보도로 시청률을 높이려는 방송은 미담이나 마녀사냥에 집중한다. 영웅을 살인자로 만들거나, 살인자를 영웅으로 만드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난다. 명백한 조작이지만 방송사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 "팩트에 임팩트를 더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뉴스에 나온 말은 별다른 의심 없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기하명은 언론의 방식을 통해 송차옥에게 복수하면서도 송차옥이 취했던 것과 동일한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송차옥이 부당한 여론몰이 당하는 것을 오히려 막으면서, 송차옥에게 기자로서의 양심을 서서히 일깨워 엄청난 내부고발을 터뜨리게 한다.

‘기레기’의 배후엔 자본과 권력이 있다

드라마는 ‘기레기’ 언론의 선정성과 이에 휘둘리는 대중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레기’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조명한다. 13년 전 기하명의 가정을 파괴했던 화재사고는 우연이 아니었다. 부당한 이윤을 취했던 자본이 있었고 이를 눈감아 준 정치권력이 있었다. 사고가 나면서 비리와 유착이 밝혀질 위기에 처하자, 자본은 언론을 움직여 마녀사냥을 하고 엉뚱한 여론몰이로 사건의 본질을 덮는 데 성공했다. 사고는 13년 만에 더 큰 참사로 돌아왔지만 언론은 또다시 엉뚱한 희생양을 만들어 여론을 호도한다. 그러나 기하명을 비롯한 기자들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려 하자, 자본은 이를 막기 위해 언론사를 테러한다.

드라마가 보여 주는 언론과 자본과 정치권력의 커넥션은 현실 세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MSC라는 방송사의 이름은 화학조미료 MSG와 문화방송 MBC를 동시에 연상시킨다. 드라마는 재벌이 경찰에 소환됐을 때의 행태를 상세히 알려 준다. 일단 출석 거부로 시간을 끌고, 기자가 없는 일요일 아침에 지하주차장을 통해 출석하며,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인 스캔들을 터뜨린다. 돈으로 회유하고, 안 되면 협박한다. 현실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일들이다. 드라마는 재벌을 감싸는 보도로 홍보 역할을 자처하는 언론과 외모나 패션 등을 보도하며 본질을 흐리는 ‘기레기’보도를 꼬집는다. 그리고 당부한다.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보도가 아닌지, 이슈몰이로 더 큰 사건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똑바로 보라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언론은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내고, ‘군관민을 총동원한 대규모 수색작업’이라는 거짓보도에 열을 올리다가 현장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폭로한 홍가혜씨를 마녀사냥 했다. 사고 원인과 구조 책임을 묻는 심층보도는 하지 않은 채 ‘유병언 일가 추적극’으로 전파를 낭비했다. 당시 유병언에 대한 죄목은 세월호의 실소유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진정한 실소유주를 가릴 근거가 될 만한 ‘국정원 지적사항’이란 문건과 ‘양우공제회’ 등에 관한 보도는 이뤄지지 않는다.

어린이집 폭행사건도 마찬가지다. 선정적인 CCTV 장면과 가해자가 얼마나 악녀인지, 과거 행위는 어떠했는지에 보도의 초점이 맞춰진다. 폭행 장면이 찍힌 CCTV 화면이 말해 주듯이 CCTV는 폭행의 예방책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CCTV가 해결책인 양 얘기될 뿐, 폭행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다. 황선·윤기진 부부에 대한 종편의 조작보도는 워낙 공공연해서 거론할 가치도 없다.

자본과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다. 언론이 자본 혹은 권력과 유착되면 기레기가 된다. 언론은 누가 감시해야 할까. 바로 시민의 부릅뜬 눈이다. 이제 뉴스를 볼 때마다 되물어야 한다.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보도는 아닌지, 더 큰 사건을 덮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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