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장애인단체에 주문한 ‘구독신청 받습니다’ 플래카드가 ‘구속신청 받습니다’로 배달된 적이 있습니다. 멋쩍게 웃는 활동가 옆에서 말없이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죠. 기자들이 정성 들여 만든 특별판 표지를 외주업체가 거꾸로 제본했을 때에도, 편집기자가 인쇄파일을 전송하지 않고 퇴근해 버렸을 때에도 여지없이 담배를 찾았습니다. 그러면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해결책을 고민하게 됩니다.

전 헤비 스모커(heavy smoker)입니다. 이른바 골초죠. 10여 년 전만 해도 마감이 닥치면 한두 갑은 단숨에 피웠습니다. 요즘은 하루 한 갑으로 버티려고 하는데요. 혹자는 담배를 피우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게 아니라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갈증만 사라진다고 합니다. 백해무익하다는 얘기죠.

담배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1997년 1월14일 명동성당 천막농성장에서 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과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이 담배를 나눠 피우던 모습인데요. 두 위원장은 그날 노동법 재개정을 촉구하는 양대 노총 공동투쟁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1929년 원산 총파업 이후 노동계 두 번째 총파업은 그렇게 시작됐죠.

16년 전 노동일간지에 입사했을 때 기자들은 담배를 입에 물고 기사를 썼습니다. 990제곱미터(300평) 공간이 담배연기로 자욱할 때가 많았습니다. 좋은 기사는 쌓여 가는 꽁초에 비례하는 것처럼. 8년 전쯤 지금의 회사로 옮겼는데요. 그때도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간혹 한꺼번에 피우지 말고, 마감할 때만 피우라는 눈총을 받긴 했죠.

변화는 6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회사 사무실 귀퉁이에 마련된 흡연실로 밀려난 겁니다. 뭐 어떻습니까. 담배를 피울 수 있는데.

2014년 1월.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회사 전체가 금연구역이 돼 버렸는데요. 흡연자들은 건물 입구에 재떨이가 놓여 있는 걸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2층을 오르내리는 번거로움이야 담배 두 개비씩 피우는 것으로 털어 버렸죠. 그렇게 1년을 보냈습니다.

2015년 1월. 바뀐 건물주가 마지막 조치를 취했습니다. 출입구에 있던 꽁초통을 없애 버린 겁니다. 꽁초통이 있던 자리는 “흡연시 건물 외부로 이동해 달라”는 안내문이 차지했습니다.

요즘은 건물 담벼락 주차장에서 도둑연기를 들이킵니다. 지나가는 ‘경멸의 눈초리’에 뒷골이 서늘해짐을 느끼면서도 뻐끔담배를 피우죠. 이동 중에는 담배를 물지 않고, 두 개비를 연이어 피우지 않는다는 새해 결심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세수 부족에 따른 과도한 담뱃값 인상이나 흡연자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2015년 흡연자들에게는 그런 생각조차 사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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