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을미년을 맞이한 한국 사회에서 청년노동이 화두다. 규제되지 않는 노동시장은 청년의 삶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영악한 기업들은 일자리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의 절박함을 손쉽게 이용했다. 경기침체는 개인의 삶을 나락에 빠뜨릴 뿐이다. 기업들은 위기관리를 명분으로 불안정 고용을 제한 없이 확대하며 이윤을 창출했다.

지난해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증언했던 노동현실은 공분을 모았다. 그렇게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한 수면 아래의 흐름은 새해 며칠 만에 패션업계의 ‘열정착취’ 문제로, 소셜커머스 업체의 ‘갑질해고’ 문제로, 갖가지 청년노동의 문제들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패션업계의 큰 어른이자 유명인사인 이상봉 디자이너는 ‘2014 패션업계 청년착취대상’을 받으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수상자가 한글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은 만큼 시상식은 특별히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진행됐다. 현장을 장식한 축하 화환은 강남의 사무실까지 직접 배달돼 상장과 함께 전달됐다. 이 유쾌한 장면은 많은 청년들에게 카타르시스가 됐다.

소셜커머스 업계의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던 위메프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청년을 일회용품 취급한 그들의 행태에 한번 분노한 청년들은, 그들이 서둘러 내놓은 사과문에 다시 한 번 ‘빡치면서’ 거침없는 집단행동을 이어 갔다. 탈퇴 인증은 끝이 없다. 항의에 동참하기 위해 일부러 가입하고서 곧바로 탈퇴하는 변칙적인 시위방식까지 나타나고 있다. 위메프는 ‘We Make Price’의 줄임말로 등장했으나 ‘We Make Problem’의 행색으로 퇴장하고 있다. 작정하고 나선 청년들이 기업들에게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경고를 전한 것이다. 다시는 청년을 무시하지 말라.

분명한 건 대표 명의로 된 그 사과문이 악수였다는 것이다. 위메프는 얼핏 사과문의 꼴을 띤 글에서 “저희가 달을 가리켰지만 많은 사람들이 손을 본다면 그것은 저희가 말을 잘못 전한 게 맞다”며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소통의 문제였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과가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궁색하게 해명했을 뿐이다. 달을 보지 못하고 손을 본 ‘많은 사람들’을 탓했을 뿐이다. 결국 본인들은 잘못한 것이 없지만, 당신들의 성난 모양새를 고려해 양보하겠다며 거꾸로 우리에게 양해를 요구했을 뿐이다.

위메프 사태의 교훈 덕분이었을까. 지난해 가을부터 제기한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침묵하던 이상봉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으로 공개적인 사과문을 내놓았다.

분명 부족하다. 패션업계의 청년노동 문제를 세상에 알린 청년들은 ‘사회적 협의’를 요청했으나, 그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다. 이상봉 디자이너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또한 입장을 발표해 온갖 개선 방안들을 내놓았으나 정작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화에 나서겠다는 핵심은 빠뜨리고 있다. 허공에 대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그것이 ‘사과’였다고 생각한다. ‘사과’였길 바란다. 마찬가지의 궁색함을 완전히 걷어내지는 못하였으나, 청년들을 향해 공감과 위로만을 던지는 비겁한 사회에서 문제의 책임자로부터 ‘사과’를 받았다고 느꼈다. 이제 그에 맞는 책임이 이어지면 될 것이다.

사과란 군더더기를 설명함이 없이 잘못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이며, 그것에 대해 마땅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이 ‘사과의 윤리’다.

2015년 본격적으로 청년들을 착취하는 블랙기업과 그것을 허용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에 대항하는 싸움을 시작하며, 나는 청년들과 함께 더 많은 사과를 받고 싶다. 피해를 입고 있다면 반드시 그 맞은편에 피해를 가한 이가 있다.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롯데호텔이, 중소기업중앙회가, 맥도날드가, LG유플러스가, 쌤앤파커스가, 청년의 삶을 파괴해 온 가해자들이, 수많은 블랙기업들이,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사과다. 그것이 시작이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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