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서울동부지법 2013가합2298 근로자지위확인

1. 사건의 개요


원고들은 ○○공사의 영업소에서 통행료 수납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근로자들이고, 이들은 모두 형식적으로는 ○○공사와 통행료징수 등에 관한 용역계약을 체결한 외주업체 소속이다. 외주업체의 다수는 피고의 직원이 외주운영자가 되는 조건으로 명예퇴직을 한 피고의 전직 직원들이고, 외주화와 관련해 피고의 퇴직직원에 대한 특혜논란이 일자 최근에는 공개입찰을 통해 외주운영자를 선정하기도 한다. 피고는 관련법에 따라 공익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공기업이고, 원고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관련법이 피고에게 위임한 업무로서 관련법은 피고의 제3자에 대한 업무위탁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피고의 수도권 영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530여명의 근로자들이 피고를 상대로 용역계약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피고에게 파견돼 근로를 제공하고 있는 파견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근로자지위확인의 소를 제기한 사건이다.

2. 판결의 주요내용

법원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의 목적과 내용에 비춰 보면, 근로자를 고용해 타인을 위한 근로에 종사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현행 파견법이 적용되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당사자들이 붙인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받을 것이 아니라 계약목적 또는 대상에 특정성·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계약당사자가 기업으로서의 실체가 있는지와 사업경영상의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 계약이행에서 사용사업주가 지휘·명령권을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 등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한다(대법원 2012.2.23 선고 2011두7076 판결, 대법원 2013.11.28 선고 2011다60247 판결). 특히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실질적인 고용관계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판단하는 것과 구분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경우 △계약의 목적 또는 대상인 외주운영자의 업무는 그 범위가 포괄적이고, 피고의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업무를 그 목적 또는 대상으로 하고 있다. △용역금액은 피고가 사전에 정해 놓은 매우 구체적인 비용 산정기준에 따라 정해지고, 외주운영자로서는 업무에 투입할 근로자의 수 및 임금의 범위까지 피고가 사전에 정해 놓은 기준을 준수할 것이 사실상 강제됐다. △용역 대가 산정방식, 사후 기성검사의 방식 등에 비추어 그 기성금은 일의 완성보다는 노동력 제공 자체에 대한 대가에 해당한다. △원고들의 근무방법이나 업무처리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외주운영자들의 취업규칙이 아니라 피고의 규정이나 지침인 것으로 보이고, 피고의 규정이나 지침 등은 피고의 직접적인 지휘·명령에 준하는 것이다. △외주운영자는 피고의 영업소의 조직체계에 중간관리자로 사무장을 선임해 편입시켰을 뿐 별도의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지도 않다. △외주운영자들은 대체로 피고의 통행료 수납업무에 관한 외주화 과정을 거쳐 비로소 형성돼 그 실체와 독립성이 피고의 업무수행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피고만을 상대로 사업을 영위했다.

이와 같은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들은 외주운영자들에게 고용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피고의 사업장인 해당 피고의 영업소에서 피고의 지휘·명령을 받아 피고를 위한 근로에 종사했다고 판단되므로 피고와 원고들이 소속된 외주운영자들 사이에 체결된 용역계약은 실질적으로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한다. 근로자파견관계는 파견사업주가 독립된 실체로서 근로자들과 고용계약을 맺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므로 외주운영자들이 각자 취업규칙을 제정하고, 근무편성표를 작성하거나 근무평정을 하고, 출퇴근·연차·대근·병가 및 휴직 등을 관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정도의 독립성은 이 사건 용역계약이 파견근로계약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함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제정 파견법 제6조제3항 본문에 따라 파견근로를 갱신한 날로부터 2년이 만료된 원고들은 그 다음날부터 고용이 간주됨으로써 피고의 근로자의 지위에 있고, 개정 파견법이 시행된 2007년 7월1일 이후 파견근로 기간이 2년이 경과한 원고들에 대해서는 피고에게 고용의 의사표시를 할 의무가 있다.

3. 판결의 의미

파견법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고용형태를 새로 창설한 것이 아니라 이미 불법적인 형태로 만연해 있던 파견의 일부를 합법적으로 승인해 주는 대신 그 외의 나머지 파견을 규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정된 것이다. 중간착취의 염려가 있는 근로자 공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파견을 허용하고 있는 파견법의 입법 과정과 취지에 비추어 볼 때, 파견과 도급의 구별은 사용자가 자신의 사업을 위해 근로자를 사용 또는 이용하면서 파견법의 규제를 회피하거나 직접고용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도급으로 위장하고 있는 경우를 찾아내어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강행규정인 노동법적 보호를 실현하는 것에 그 실천적 가치와 의미가 있다.

기업은 그 동안의 학습효과를 통해 위장도급 내지 불법파견의 징표에 해당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점차 그 외형과 형식을 변경시켜 왔다. 예컨대 제3자에게 고용된 근로자의 노무제공과 관련해 업무수행과 이에 필요한 지시권을 세분화시켜 마치 제3자가 이를 보유하고 행사하는 것으로 그 외관을 형성하거나, 수급인이나 수급인의 현장대리인을 통해 이들이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노무를 제공하고 있는 근로자들에 대한 지휘·명령권을 행사하는 외형과 형식을 만들어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술의 진보, 정보지식산업의 발달과 취업·고용형태의 다양화에 수반해 오늘날 사용자의 지휘·명령권은 종래와 같은 직접적·구체적인 것에서 간헐적이고, 간접적·포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피고는 각종 지침과 규정을 만들어 원고들로 하여금 이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 종래 하급심법원은 근로자들이 주위적으로 청구하는 묵시적 근로관계 성립여부에 관한 판단 부분을 근로자파견관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과 명백히 구분하지 않고, 묵시적 근로관계가 부인되는 이유를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인하는 판단 자료로 삼는 경우가 있었다.

이 사건 판결은 근로자를 고용해 타인을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현행 파견법이 적용되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실질적인 고용관계의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판단하는 것과 구분돼야 한다고 봤다. 즉 원고용주가 사업주로서 독립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결여해 제3자의 노무대행기관과 동일시할 수 있는 등 그 존재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피고용인이 사실상 제3자와 종속적인 관계에 있으며, 실질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자도 제3자고, 근로제공의 상대방도 제3자여서 피고용인과 제3자 간에 묵시적 근로관계가 성립돼 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원고용주에게 고용돼 제3자의 사업장에서 제3자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제3자의 근로자라고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므로,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다툼이 대상이 된 이 사건에서는 이를 적용할 수는 없다는 점을 판결 이유에 적시한 매우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판결은 근로자파견관계는 파견사업주가 독립된 실체로서 근로자들과 고용계약을 맺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한다. 이 사건 판결은 외주운영자들이 각자 취업규칙을 제정하고, 근무편성표를 작성하거나 근무평정을 하고, 출퇴근·연차·대근·병가 및 휴직 등을 관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정도의 독립성은 용역계약이 파견근로계약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 기준의 하나인 ‘계약당사자가 기업으로서의 실체가 있는지 여부 및 사업경영상의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가 묵시적 근로관계 성립여부의 판단에서 가지는 의미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급과 파견을 구별하고자 하는 실천적 의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대법원이 정립한 파견근로관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기준의 참된 의미에 부합한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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