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인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전북본부 군산지부)

노동자는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단결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노동조합이라는 조직형태로 표현된다. 민주노총은 단결의 자유를 위해 사업장단위 복수노조를 허용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입법화됐다. 그런데 이런 복수노조가 노동자의 단결권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노동자 간 분열에 이용된다. 100여명이 안 되는 사업장에 3개의 노동조합이 조직되고 노동조합 사이에 불신이 증가된 것을 복수노조 효과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일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플랜트건설노조가 노조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 지역에서 큰 공사로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는 사업장이 있었다. 사업장은 발주처라고 하는 ○○공사였고, ○○공사로부터 도급을 받은 시공사인 A라는 종합건설회사(A사)가 있다. A사는 사업영역별로 B·C·D라는 단종회사로 사업을 다시 도급을 준다. 단종회사는 일정 기간 동안 도급받은 업무를 완성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일을 하려면 A사 출입증이 필요하다. 또 안전교육을 이수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절차를 거쳐야 현장에서 일할 수 있다. 따라서 출입증과 안전교육을 받기 위해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 작성과 동시에 갑노조 가입을 강요당한다. 갑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못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A사를 사용자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갑노조에 가입한다. 이어 안전교육을 이수한 후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노동자 E씨는 사업특성상 현장을 따라 이동하며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할 때는 을노조의 조합원이었으나 A사에서 일을 하기 위해 갑노조에 가입했다. E씨는 입사가 확정되고 현장에서 일정 기간 일을 한 다음에야 을노조에 가입할 수 있었다.

최근 단종회사가 임금을 체불해 E씨를 중심으로 집단행동을 했다. 그러자 E씨를 포함한 4명의 노동자가 해고를 당하게 됐다. 집단행동은 점심시간에 한 행동으로 해고사유에 해당하지는 않았다. E씨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인 A사와 실제 사용한 B사를 상대방으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노동위는 본 사건에 대해 각하 판정을 했다. 이유는 A사는 실제 사업주가 아니며, B사가 사용사업주이나 이미 사업을 종료한 상태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복귀할 사업장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위 심문회의 당시 B사는 열병합발전소 작업을 종료했다.

하지만 해고자 4인(을노조 조합원)을 제외한 나머지 노동자들은 전원 C사에서 일하고 있다. E씨는 C사가 고용승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수노조 시대에 회사의 묵인하에 노조가 근로계약 체결에 개입하고, 노동자는 선택 권한도 없이 특정 노조에 의무적으로 가입한다. 이후 원하는 노조에 가입해 임금체불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해고를 당한다. 채용시 특정노조 가입 강요는 부당노동행위인데도 말이다.

복수노조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갑노조는 취업에 개입함으로 1개월에 수천만원의 조합비를 받고 있다. 갑노조를 조합원들의 자주적인 단결체가 아닌 취업에 개입한 이익집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인가. 임금체불이 돼도 갑노조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조합원이 해고됐으니 을노조는 노조활동보다는 복직투쟁이나 해고자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이자 모든 결정권한을 지닌 A사는 도급을 줬다는 이유로 E씨에 대한 고용의무를 지지 않고, 구제명령을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 B사가 다른 지역에서 사업을 계속하고 있는데도 단지 열병합발전소 사업이 종료됐다고 구제명령을 이행할 수 없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C사로 을노조 조합원들을 제외한 다른 노동자들이 전원 고용됐는데, 이것도 고용승계로 볼 수 없다는 말인가.

만일 이대로라면 플랜트 같은 건설업종은 취업시 특정 노조에 가입을 강요당해 단결권이 제한되고 원하지 않는 노조에 조합비를 의무적으로 납입해야 되며,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행동을 하면 사업종료를 이유로 해고를 당하게 된다.

플랜트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은 공허한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추운 겨울 바닷가 찬바람을 맞으면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복수노조가 노동 3권 행사의 짐이 돼 버린 것이다.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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