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판결 선고가 있었다. 현대자동차 통상임금사건 판결이 있었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2부 재판부가 선고한 현대차사건이었다. 2012년 9월5일 노사합의에 따라 대표소송 결과를 전 직원에게 적용하기로 하고서 2013년 3월5일 소장을 제출해서 진행해 온 사건이었다. ‘15일 이상 근무해야 지급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 이번 판결은 이렇게 한마디면 충분했다. 다만 15일 미만을 근무해도 상여금을 지급받아 온 총 5천600여명, 약 8.7%를 차지하는 옛 현대자동차서비스 소속 근로자에게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분명히 일부승소였지만 사실상 패소였다. 현대차 직군별 노동자대표 원고 윤○○외 22명 중 2명의 청구만 인정했다. 절망의 날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의 태도, 변론을 재개하면서 명령했던 석명준비사항, 그리고 이 재판부에서 지난해 11월 말 선고했던 대우조선해양 사건 판결의 법리 등을 통해서 예상했던 대로였지만 말이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절망의 2015년 1월16일이 계속되고 있다.

2. 현대차 대표소송이 제기된 직후였던 2013년 5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GM 회장이 재판 중인 통상임금 문제의 해결을 요청하고 박 대통령이 한국 경제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라며 해결해 주겠노라고 답변했다고 언론에 보도됐고, 사용자를 대변하는 언론은 통상임금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에서 새롭게 판결해야 한다고 요란하게 떠들어 댔다. 2013년 7월 말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사건을 대표사건으로 삼아서 통상임금 사건에 관해서 전원합의체 재판부에서 공개변론을 하기로 정한 뒤, 같은 해 9월5일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그리고 2013년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가 있었다.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고, 하기휴가비 등 복리후생 명목의 임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두 개의 판결을 선고했지만 통상임금 해당성에 관한 판결 내용은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소정근로의 대가와 무관하게 재직자이기만 하면 지급하는 임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고, 다만 그 임금을 퇴직시 근무일까지 일할 계산해서 지급하면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상여금이 논란이 됐다. 재직자요건의 상여금이 문제가 됐다. 2개월·3개월 등 일정한 기준 기간의 소정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이라도 중간 퇴직자에게 그 근무일까지 일할 계산해서 지급하지 않는다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2014년 1월23일 고용노동부는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서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해서 더욱 논란이 됐다. 이후 각급 법원의 판결은 이를 둘러싸고 전개됐다. 일부 법원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고, 일부 법원은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서울과 창원, 부산과 인천의 법원이 판단을 달리했다. 자동자 제조사업장과 자동차 운송사업장의 판결이 달랐다.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단순히 갑을오토텍 사건에 관해서만 판결한 것이 아니었다. 갑을오토텍에서 문제되고 있지 아니한 통상임금 판단기준에 관해서도 판결하고 있었다.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해야만 지급하는 임금은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근로일수가 15일 이상이면 특정 명목의 급여를 지급하고 그 미만이면 근무일수에 따라 급여를 일할 계산해 지급하는 경우에는 고정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해서, 15일 미만 근무시 일할 계산해 지급치 않는 임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문에 쓰고 있었다. 현대차의 상여금 지급 시행세칙은 15일 미만 근무자 지급제외규정을 두고 있었다. 재판과정에서 사용자 현대차와 그 대리인 김앤장 변호사들은 이 부분의 대법원 판결을 적극적으로 인용해서 현대차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대법원 판례와 사용자의 주장대로라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현대차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결하리라고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나는 변론을 했던 것인가.

3. 현대차에서 상여금이 아니라면 이 나라에서 상여금은 아니다. 현대차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다면 이 나라에서 많은 사업장의 상여금도 그렇게 판결하게 될 것이다. 현대차처럼 15일이든 며칠이든 일정 근무일수 이상을 근무해야 지급한다고 정하고 있다면 이미 아닌 것이고, 다행히도 아직은 정하고 있지 않다면 사용자가 그렇게 정해서 장차는 아니게 될 것이다. 현대차조차도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데 그 협력업체들이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그러니 납품단가를 인상시켜 달라고 그 사업장 사용자가 요구할 수 있겠는가. 현대차 계열사, 그리고 현대차와 무관한 사업장이라도 해마다 몇 조원의 당기순이익을 실현하는 현대차에서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을 인정해 줄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상여금에 관한 회사 제규정 등 취업규칙의 변경을 통해서, 단체협약의 변경을 통해서라도 사용자는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게 할 것이다. 지난해 1월 노동부가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발표한 이후, 사업장마다 사용자들이 재직자요건을 마련해서 상여금을 퇴직시 일할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상여금 지급기준을 변경해 왔던 것처럼 그렇게 할 것이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고서 추가로 지급해야 할 법정수당을 고민했던 사용자는 노동부 발표로 재직자요건을 둘 고민을 하더니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제 현대차처럼 15일 이상 근무해야 지급한다는 요건까지 제 앞에 두고서 무엇으로 할지 사용자는 고민할 것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고, 하기휴가비 등 복리후생 명목의 임금도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하게 될지 모른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지 1년이 겨우 지났건만 이렇게 절망의 말을 하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4. 통상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소정(법정)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일체의 임금이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해 왔다. 노동법 학술논문을 통해서도, 이 칼럼을 통해서도, 토론회와 교육을 통해서도, 그리고 대법원의 공개변론을 통해서도 주장하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상 연장·야간·휴일의 근로, 연차휴가 미사용의 근로 등 법정 외 근로의 대가인 각종 법정수당의 지급기준의 임금인 통상임금은 법정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일체의 임금이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떠들어 왔다. 법정근로가 소정근로인 나라에서 법정(소정)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임금 중 일정한 임금을 법정 외 근로의 대가 임금인 법정수당의 지급기준 임금인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고 한다면 법정 외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임금이 법정근로의 대가 임금보다 적게 지급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가산임금을 지급함으로써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도록 한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반하게 된다. 법정(소정)근로만 하면 연간 700%·800%로 지급하는 상여금에 관해 재직자요건이니 15일 이상 근무 등 일정 근무일수요건을 정해서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에서 법정수당의 지급기준으로 정한 통상임금제도에 부합하지 않는다. 상여금 지급 산정의 기준기간인 2개월, 3개월 중 15일 근무는 주 5일제 사업장에서 월의 법정(소정)근로일이 21일 내지 23일에도 훨씬 밑도는 것이고, 근로계약상 당연히 제공하기로 한 법정(소정)근로를 하기만 하면 지급받기로 정해진 임금이다. 소정근로의 대가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에 대법원 판례는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이라는 개념적 징표를 덧붙여 통상임금을 정의해 왔다.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고정적인 임금이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가 말하는 통상임금이다. 여기서 고정성이 문제가 됐다. 재직자요건도, 15일 이상 등 일정 근무일수요건도 그 요건의 성취에 따라 지급 여부가 정해지는 임금은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법원은 판결하고 있다. 사실 법원이 통상임금에서 말하고 있는 고정성은 별 것 아니다. 법정수당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그 금액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게 그 개념의 존재 이유고 정당성이다. 대법원 판례를 주의해서 읽어 보면 그걸 바로 알 수 있다. 근로계약에서 1주 40시간, 1일 8시간으로 1개월을 근무하면 월급여로 얼마를 지급하고, 그렇게 2개월을 근무하면 상여금으로 얼마를 지급하기로 정해 놓았으니 그 월급여와 상여금은 그 금액이 확정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 소정(법정)근로를 다 하지 않을 경우 지급받지 못하게 될 것까지 고려해서 고정성이 없는 것이라며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할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월급여로 지급되는 기본급조차도 고정성이 없어서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하고 만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말았다. 논문과 칼럼에서 수도 없이 했던 주장을 현대차 사건 판결을 당하고서 나는 이렇게 또 하고 말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준비서면과 참고서면, 그리고 그 공개변론에서 강변했던 것을 또 늘어놓고 말았다. 이런 내 주장대로 이 나라 법원이 판결하지 않는 한 판결문에 쓴 법원의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는 부당한 것이기에 현대차 대표소송 사건에 관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에 절망하면서도 다시 떠들어 대고 있다. 수십년간 계속돼 온 통상임금에 관한 법원의 판례가 이 나라 노동자를 장시간의 법정(소정) 외 근로에 몰아넣었다. 그리고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선고했지만 재직자요건은 논란이고, 일정 근무일수요건의 임금이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국 현대차 사건에서 문제가 되고 말았다. 종전과는 다르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법원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 법정근로시간과 법정 외 근로의 대가인 법정수당, 그 지급기준인 통상임금제도의 취지에서 통상임금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으나,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고 종전의 대법원 판례가 판시해 온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해 온 고정적인 임금이라는 통상임금의 개념에서 허우적대며 몇 걸음을 떼다가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이라는 그 개념적 징표를 부여잡고서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대법원 판결만 쳐다보고서 하급심 법원은 판결하고 있다. 1년1개월, 짧기는 하다. 하급심 법원이 대법원 판례에 따르지 않고서 판결하기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벤 노동자권리가 너무도 선연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오늘은 현대차에서 8.7%에게만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판결했지만, 내일은 이 나라에서 8.7%의 노동자에게만 해당한다고 할지 모르는데, 노동자대리인으로서 나는 했던 주장을 다시 할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관해서 노동조합은 할 말이 없다. 현대자동차를 포함해서 지금 이 나라에서 통상임금 문제는 법(근로기준법)보다 못한 단체협약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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