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길 역사연구가

새해가 되면 언론 매체에는 사람들이 한 해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고 또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다루는 기사나 칼럼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도 세대 간 격차가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먼저 20대와 40대, 세칭 386세대인 50대 초반, 긴급조치 세대인 50대 후반 등 4명의 좌담을 엮은 <한겨레> 기사를 살펴보자.

“우리는 그냥 망한 세대예요!” 20대 청년의 분노가 속사포 랩처럼 쏟아져 나왔다. 빚내서 집 사라고 권하는 사회, 취업이 어려운 사회, 산업화 시절의 향수에 젖어 자꾸만 옛날로 돌아가자는 사회…. 점점 희망이 사그라드는 우리 사회에 대한 그의 울분에 ‘선배’ 세대들은 “지금도 촛불집회 같은 데 가면 머리 허연 내 또래가 대다수더라”, “우리도 할 만큼 했다”고 항변한다.

20대가 전 세대를 통틀어 우리 사회를 가장 비관하는 것으로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이나 하듯, 20대의 목소리가 가장 매서웠다. 20대 삼포세대는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끝나고, 개천마저 시궁창으로 변한 상황”이라며 그 책임을 50대 이상에게 돌렸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너무 빨리 늙어 버린 세대가 됐다”는 40대도 “막노동이라도 해서 식구들을 벌어 먹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고 불안해했다. 386세대는 그래도 미래를 낙관했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안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앞으로도 그러지 말란 법이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긴급조치 세대 역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잘 조정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음으로 <중앙일보> 칼럼을 보자.

2015년 1월9일 KAIST 미래전략대학원 주최로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자는 40대 연구자인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였다. 박 박사는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현재와 미래를 모두 긍정적으로 보는 응답은 27%, 둘 다 부정적으로 보는 응답이 37%였다. 60대는 48%가 긍정-긍정으로 답변한 반면 부정-부정은 25%였다. 반면 20대는 긍정-긍정이 16%에 불과한 반면 부정-부정이 48%나 됐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두 세대 간 인식 차이가 엄청났던 것이다.

박 박사는 청년층(20~34세)이 바라는 미래상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23%인 반면 ‘붕괴, 새로운 시작’ 응답이 42%였다. 절반 가까이가 지금의 사회경제 체제가 붕괴된 다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시작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 기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새해를 맞은 한국인은 올 한 해 어떤 일터에서 일하고 싶을까. 자신의 직장이 어떤 모습이 되길 희망할까.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세대별 100명씩 총 500명에게 물었다. "새해 일터가 좀 더 따뜻하고 갑·을이 없는 수평적 직장 문화가 되길 바란다"는 응답이 전 세대 공통으로 1~3위 안에 들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수입보다는 수평적 직장 문화에 대한 소망이 압도적이었고, 40대 이상 세대는 그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를 희망했다.

세 가지 이이기를 종합해 보자. 나이를 먹을수록 과거의 성공에 의지해서 현재와 미래를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반대로 성공의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 세대일수록 현재와 미래를 부정적이고 절망적으로 본다. 급기야 20~34세에 속하는 청년층의 절반 가까이는 ‘붕괴 후 새로운 시작’을 갈망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의 추세라면 이러한 생각을 갖는 층이 더욱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희망하는 것 또한 세대마다 달랐다. 40대 이상은 여전히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인 반면 젊은 세대는 압도적으로 ‘갑·을이 없는 수평적 직장 문화’였다. 사회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갈구하는 것이다.

러시아혁명의 아버지 레닌은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대중이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느낄 것’, ‘지배층이 기존 방식으로 더 이상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볼 때’ 그리고 ‘혁명 조직이 준비돼 있을 것’ 등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첫 번째 조건은 빠르게 성숙되고 있다. 그동안 사용했던 방법을 총동원해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주류 사회에서는 기존 방식으로는 체제 유지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세 번째 조건이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혁명집단이 없는 것이다. 가히 혁명 전야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정작 가장 중요한 혁명의 메시지가 없다. 이럴 때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극우 선동이 대중을 현혹하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 최고의 긴장이 요구되는 시기다.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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