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의 해에는 ‘사회적 대화’가 열쇳말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공무원연금이라는 정책이슈가 사회적 대화에 따라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의 윤곽은 아마도 1분기에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안은 3월, 공무원연금은 4월까지 논의 시한을 못 박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시장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전략”이라며 “노와 사는 상생의 정신을 바탕으로 노동시장 구조개혁 종합대책을 도출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공무원연금과 관련해 "공무원연금은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등 사기진작책을 보완해 처리해 달라”고 역설했다.

사회적 대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제도 개선과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부가 일방통행 하면 결국 실패한다는 것은 역사적 경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굵직한 정책 이슈를 대화로서 풀겠다고 밝힌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대화를 제안하는 당사자는 아닌 듯 싶다. 논의 시한을 못 박고, 논의 방향마저 제시하니 대화 당사자 입장에선 답답할 따름이다. 대통령이 나서 잔뜩 부담을 주고, 압박을 하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이달 12일에야 위원회 구성을 마쳤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는 지난해 말에 논의 방향과 관련한 기본합의를 했을 뿐이다. 정부가 던진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비정규직 종합대책 탓에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갓 출범한 두 대화기구에 성과를 재촉하니 당사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러니 두 대화기구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이나 다름없다. 철저히 정부 주도형으로 흘러가고 있는 탓이다. 사회적 대화는 진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사실, 정부 주도형 사회적 대화는 과거형 버전이었다. 98년 2월6일 사회적 합의는 외환위기라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출됐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한국 정부에 노동유연화를 주문했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해 풀었다. 전형적인 정부 주도형 사회적 합의였다. 이후 일자리 협약(2004년), 노사민정 합의(2009년)도 마찬가지였다. 정부 주도형 사회적 대화란 정부가 의제를 제출하고 설정한 시간 내에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을 말한다. 노사 합의가 도출되면 그 합의안을 입법하되 실패하면 정부안을 법제화하는 방식이다. 그간의 사회적 대화는 이러한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이러한 정부 주도형 사회적 대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모색이 있었다. 대화 주체와 의제를 다양화하되 대화의 틀을 유연하게 짜 나가자는 의견이 대두된 것이다. 정부 주도형보다는 이해 당사자 중심의 사회적 대화로 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노사정이 의제를 함께 선정하되 주제별 또는 담당 부처별로 노사 또는 사회단체와 공동 논의를 진행해 합의안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색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2013년 5월30일 노사정 합의는 이를 비판하는 노동계 지도부의 출범으로 부정됐다. 같은해 말 수서발 KTX 자회사 출범을 밀어붙이려는 정부와 철도노조 간 극한대립, 민주노총에 경찰력 투입으로 사회적 대화는 좌초됐다. 8개월여 만에 노사정위원회가 다시 가동됐지만 과거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가 의제를 던지고 이끌어 가는 방식을 되풀이한 것이다.

정부 주도형 사회적 대화는 경제위기라는 배경에서나 통하는 방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이 아무리 “경제 살리기의 골든타임”이라고 하지만 대화 당사자들이 공감하지 않으면 공염불일 뿐이다. 지금은 외환위기 때처럼 절박한 상황은 아니다. 대화 당사자들이 그렇게 체감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부 주도형 사회적 대화에 대한 피로도 또한 높다. 사회적 합의는 추진 동력을 상실한 채 정치적 상징성만 남은 것 같다. 그야말로 사회적 대화의 진화가 필요한 골든타임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과거 버전에만 매달리고 있다.

비록 사회적 대화는 한계를 안고 출발했지만 이것 말고 문제를 풀 마땅한 방안도 없다. 그래도 방식은 달라야 한다. 시한을 못 박고 성과를 재촉하는 것은 너무 구태의연하다. 대화의 기본도 아니다. 이제라도 정부는 대화 당사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논의하고 유연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성글게 나서지 말고 당사자들을 조율하고 중재하는 역할만 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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