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삼태
발전소 정비노동자
(전 한국노총 대변인)

어젯밤 퇴근길 실내포장마차에서 현숙씨는 서럽게 울었다. 좋아하는 족발은 손도 안 대고 ‘소맥폭탄’을 들이키며 서럽게 울었다. 그녀 옆에서 두 50대는 말없이 소주만 들이켰다. 현숙씨가 그렇게 우는 연유를 뻔히 알면서도 무어라 위로해 줄 말을 찾을 수 없었으므로….

단아하고 맘씨 곱고 손매 야무진 현숙씨는 올해 서른일곱 미혼이다. 현숙씨는 내가 이곳 사업장으로 발령받아 온 한 달쯤 뒤 그러니까 딱 2년 전 이맘때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들어온 여직원이다. 이제 막 업무를 시작한 신설 사업장이라서 현장은 물론 사무실도 잡다한 일들이 첩첩이었다. 아직 건설현장의 뽀얀 먼지가 가시지 않은 사무실 책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훔쳐 내며 현숙씨는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해냈다. 홍일점인 현숙씨는 성격도 좋아서 거친 기름쟁이 남자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항상 낯낯했다.

현숙씨가 오고 얼마 뒤 뒤 우리는 날을 잡아 전 직원(그래 봤자 협력업체 노동자를 합쳐 열댓 명이다) 체육의 날 겸 현숙씨 환영 단합대회를 했다. 겨울산행 후 광교산 자락 닭백숙집에서 시작한 단합대회는 장작불 땐 구들장 아랫목만큼이나 뜨거웠다. 현숙씨 부모님은 뭐 하시냐, 형제가 몇이냐, 왜 여태 결혼을 안했느냐, 애인은 있느냐는 둥 시시껄렁한 신상 털기와 이아무개(서른아홉 노총각 직원)하고 딱 어울린다, 잘해 봐라는 둥 짓궂은 장난까지 해댔으나 그녀는 발그레한 얼굴에 방글방글 웃으며 잘도 받아넘겼다.

그렇게 1차를 끝낸 우리는 아직 체내 알코올농도가 덜 찼다며 저수지 가장자리 소줏집으로 2차를 갔다. 주문한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우리는 “오늘밤은 현숙씨를 위하여”를 외치며 소주 한 잔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누군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현숙씨 그전에 다니던 회사는 어땠어?”

그때였다. 금방까지 방글방글 웃던 그녀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소주잔에 머리를 박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아주 서럽게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적당히 오른 취기가 번쩍 달아났다. 큰일이다 우리가 뭘 잘못했지?

“누구야 누가 무슨 실수를 했어?” 잠시 나른해 있던 나는 소리쳤다. 그리고는 그녀를 달랬다. “왜 그래, 현숙씨. 왜 그래. 누가 뭐라 했어?”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도리질하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 나는 일행을 한 바퀴 돌아봤다. 분명 누군가가 무슨 실수를 한 것 같았다. 일행은 다들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양 서 있었다. 술기운은 멀리 달아나고 눈만 껌벅거렸다. 나는 다시 다그쳤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제야 현숙씨는 눈물 콧물에 범벅이 된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말했다. “아니예요, 과장님. 아니예요. 제가 그냥 그래서…. 죄송해요.”

그리고는 휴지를 한 줌 말아 쥐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동안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나온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참 따뜻하네요.”

현숙씨는 ‘평범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부모인 삼남매 중 둘째다. 그녀는 뼈 빠지게 고생해서 키우고 가르쳐 준 부모의 바람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수도권의 괜찮은 대학에 진학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장학금을 탈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 때는 학과장 표창도 받았다. 그리고 청운의 꿈을 품고 사회로 나왔다. 많은 선배들이 정규직 취업을 못하고 비정규직, 알바로 전전한다는 애기를 들었지만 설마 나는 아닐 거라고 믿었다. 열심히 공부했고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나름 갖출 건 다 갖췄다고 자신했으므로…. 처음엔 몇 군데 회사에서 떨어지고 알바를 하면서도 그랬다고 한다. “나 같은 인재를 안 뽑은 그 회사는 틀림없이 후회할 거야.”

그런 오기와 자신감은 1년, 2년, 3년이 지나면서 바닥이 났다. 처음엔 ‘이번만’ 이라고 생각했던 비정규 계약직 취업이 몇 차례 반복되니 서른이 훌쩍 넘고, 이제는 어디 정규직 자리에 서류 낼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꽤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비슷한 처지라서 서로 결혼 얘기도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녀가 오기 전 얼핏 본 그녀의 이력서에는 듣도 보도 못한 몇 개 회사가 적혀 있었는데 근속기간은 모두 2년 미만이었다. 정규직과는 밥도 함께 못 먹었다는 얘기를 하며 그녀는 또 울었다. 돈도 돈이지만 그 차별이 너무 서러웠다고 했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연신 훌쩍였다.

“그래 고생했어. 여긴 그런 차별은 없을 테니 걱정 마. 있는 동안 한 가족처럼 따뜻하게 살자.” 애써 달래고 진정시켰지만 그녀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천근인 듯 무거웠다. 그렇게 울면서 왔던 현숙씨가 2년이 된 것이다. ‘법’대로 라면 현숙씨는 정규직이 돼야 한다. 현숙씨가 하는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누군가를 다시 채용해서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는 그 ‘법’을 피하기 위해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2년에서 하루 모자라게 계약을 한다. 그래서 현숙씨는 2년을 하루 못 넘기고 길거리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파견회사를 바꿔서 계속 근무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한다. 어제 회사는 새 여직원을 쓰기 위해 몇 명을 면접했다.

도대체 현숙씨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 엄동에 길거리로 내쫓겨야 하나. 명색이 공기업인 이 회사에서 노조 위원장을 했다는 나는 애꿎은 소주병만 비우며 나의 무력함을 한탄한다. 그리고 그 알량한 노조활동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자책한다.

“미안해 현숙씨.” 어젯밤 자리를 끝낼 무렵 함께 동석했던 협력업체 후배(이 친구도 비정규직이다)가 위로한답시고 한마디 했다. “비정규직 4년으로 한다는데 그거라도 빨리 했으면 현숙씨 계속 일할 수 있을 텐데….”

그러자 현숙씨 예쁜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됐다 그래 개새끼들!” 그리곤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 이제 그만할래.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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