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스테크놀로지가 지난 7일 이천공장을 폐쇄하고 LCD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는 업주의 한마디와 함께 380여명의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2002년 부도난 현대전자가 LCD 부문을 떼어 중국 비오이그룹에 매각할 때부터 기술 먹튀 논란이 있었다. 새 주인이 된 비오이그룹은 투자 없이 이익만 빼먹다 2006년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2008년 대만 이잉크사에 되팔았다. 법원은 기술유출 사실을 인정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했지만 ‘기술 먹튀’ 문제를 제기했던 노동자들을 구제하지는 못했다. 2006년 제정돼 이듬해 시행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상하이차에서 마힌드라로 이리저리 팔리며 2009년 정리해고됐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경우다.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기술 먹튀.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핵심기술 관리는 국가적 문제, 노조참여 보장해야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첨단산업기술의 국외 유출은 해당 기업과 소속 노동자의 생존을 위태롭게 한다. 엄청난 국부가 빠져나감으로써 국가경쟁력과 고용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휴대폰·LCD·자동차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해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쌍용차와 LCD 제조업체 하이디스의 ‘기술 먹튀’ 사태가 증명하듯 경쟁국들의 기술유출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첨단산업기술을 보호해야 한다.

정부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관·기업이 외국기업·자본에 인수·합병될 경우 사전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신고를 승인으로 바꾸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벌칙을 신설해야 한다. 기업 간 인수·합병이 기술유출로 이어지지는 않는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충분히 검토하도록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기업은 사내 보안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사내 보완체계의 핵심은 노동자와 노조의 참여다. 보완체계를 잘 만들었다 하더라도 경영권이 해외기업으로 넘어가면 국내 경영진이 해외 본사의 기술이전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쌍용차와 하이디스가 해외로 기술을 유출할 때 노조만이 문제를 제기하고 싸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핵심기술 관리체계에 노조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다.

먹튀 외국자본에 끝까지 책임 묻자 

엄미야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

나라 꼴이 엉망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켜 주지 못하는 국가, 자국의 산업기술력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다. 2015년에도 엉망인 나라 꼴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일어난 하이디스 사태를 보면 더욱 그렇다.

쌍용차를 필두로 시작된 외국자본의 먹튀와 기술유출이 지금 하이디스에서 반복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국회의원 시절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발의에 참여했다.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의 고급 기술력을 해외로 빼돌리는 실정이다. 정부는 수수방관하며 ‘글로벌 호갱’임을 인증하고 있다.

하이디스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하이디스 특허권이 삼성과 LG의 경쟁사인 중국과 일본·대만 등의 기업에 유출되고,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면서 LCD 가격이 떨어졌다. LCD 시장이 여전히 큰 중국시장은 하이디스를 인수했던 비오이그룹이 선점했다. 시장을 잃은 하이디스는 점차 부실화됐다.

쌍용차에서 시작된 해외자본의 기술유출, 먹튀 논란을 이젠 끝내야 한다. 금속노조는 대한민국의 기술력을 헐값으로 여기저기 퍼 나른 외국자본, 특히 비오이그룹에 이어 하이디스를 인수한 뒤 틈만 나면 특허권만 들고 내빼려 했던 대만 이잉크사에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하이디스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먹튀가 벌어지도록 손을 놓고 있었던 정부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자들은 애국하는 마음으로 투쟁에 나설 것이다. 엉망인 나라 꼴을 바로잡기 위해서 말이다.

기술유출 뒤 먹튀, 정부와 국회 책임 크다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제2의 쌍용자동차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경고했건만, 정부의 ‘모르쇠’와 사용자의 ‘먹튀’ 근성으로 인해 하이디스의 공장폐쇄와 정리해고가 현실화되고 있다. 하이디스를 사들인 중국 비오이와 대만 이잉크사는 생산투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국내기술의 편법적 유출을 통한 자국 공장 성장에만 전념했다. 그 결과 국내 하이디스는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고 노동자의 일자리마저 위협받게 됐다.

하이디스를 이 지경으로 만든 데에는 정부와 국회의 책임이 크다.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모든 규제를 다 풀어 주면서도, 엄청난 수익을 남기고 떠나는 투기자본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재도 할 수 없도록 만든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투기성 외국자본이 아니라 생산적 투자에 기여할 수 있는 외국자본이 들어올 수 있도록 외국인투자 촉진법을 개정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 핵심기술 범위를 확대하고 산업기술의 불법적·편법적 유출을 제어할 수 있도록 산업기술보호법을 강화해야 한다.

투자패턴 다양화하는 지원책 마련해야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

투기자본이 기술유출 등 기업가치를 빼 가고,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행태가 확산되고 있다. 노동자에게는 너무 큰 고통이다. 투기자본이 활개치면 장기적으로 산업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 건전한 산업자본을 육성하고,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를 제어하는 방식의 규제책 마련이 필요하다.

개별 법률에 흩어져 있는 투기자본 규제 방식을 한 법률로 모을 경우 자유무역협정(FTA) 저촉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 당국이 현행 법률에 흩어져 있는 투기자본 규제 장치에 대한 정책 집행의지를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함께 경제구조를 건전하게 바꿔 나가야 한다. 정부는 외형적 성과 위주의 투자, 단기적 성과를 위한 토건 투자 위주의 경기부양책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재원 부족이라는 이유로 사모펀드와 공생하는 경제정책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것만을 만능으로 보는 관행이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 논란의 틈새를 이용해 투기자본이 기술유출과 같은 기업가치 빼 가기를 시도하고 있다. 고용과 생산에 대한 투자의사를 명확히 할 때 정부가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확립해야 한다. 정부는 특히 재벌과 투기자본 이외에 존립하지 못하는 투자패턴이 바뀔 수 있도록 중소자본을 살리고 공공기관의 역할도 강화하는 방향의 지원대책을 병행해야 한다.

해외 투기자본 규제장치 마련 시급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전문위원

쌍용차에 이어 하이디스까지 기술유출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라이선스와 플랫폼을 공유하며 합법적으로 기술을 빼 간다.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씨앤앰이나 한라비스테온공조를 인수한 사모펀드들은 기술 경쟁력보다는 가치를 부풀려서 팔아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강력한 규제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을 비롯한 역대 정권들은 이 같은 기술유출 기업을 "투자"라고 강변하면서 적극 유치하고 특혜를 줬다. 그러다 보니 이들에 의해 기업사냥이 이뤄지고 노동자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산업기술 유출과 침해를 금지하고 기술유출 기업에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정보원이 이러한 국가적 기술유출에 대해 적극 대처해야 한다. 지적재산권을 빼앗기는 것인 만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막아야 한다.

한편으로 기술유출 기업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정리해고에 대해 정부와 법원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경영권을 인정한 것처럼 긴박한 노동자의 생존권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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