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6.18 화 08:00
상단여백
HOME 피플ㆍ라이프 인물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54] 성동구치소 여사 1호

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 수인복을 입은 이소선. 민종덕

어둠 속에 우뚝 솟은 높다란 벽, 기다란 복도, 수많은 철문을 지나 성동구치소 여사 1호실 방에 이소선이 갇혔다.

사방은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침묵의 바다다. 그 침묵을 헤집고 수인 중에서 직책이 높은 '지도'라는 사람이 이소선의 방 앞에 섰다.

"어떻게 들어왔소?"

"나도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소."

그는 누런 덩어리와 노란 무가 담긴 찌그러진 그릇을 구멍을 통해 밑에 넣어 줬다.

"배고프지 않아요? 밥 먹으시오."

"밥이 어디 있소?"

그는 벽에 난 구멍으로 밀어 넣은 덩이를 가리켰다.

"저기 밥이 있잖아요."

이것이 사람 먹는 밥이라니, 그것도 다 식어 빠진 것을, 문득 일제강점기 때 데이신따이(정신대, 挺身隊)에 잡혀가서 먹던 강냉이죽이 떠올랐다.

"난 안 먹을라요."

"배고프면 먹겠지. 안 먹으려면 관둬."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사라졌다.

관 속 같은 좁은 방에 갇히다

관짝같이 좁은 방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어렸을 때 태일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노동교실과 노조사무실도 떠올랐다. 자신이 없는 집에서 어렵게 살아갈 아들 태삼이·순옥이 그리고 순덕이가 궁금했다. 태일이가 마지막으로 했던 유언이 생생히 되살아왔다.

'그래 태일이는 나한테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끝까지 참아 어둠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어린 노동자들을 밝혀 주는 불이 돼 달라고 했지. 나는 태일이하고 마지막으로 약속을 했다. 그렇다. 어렵더라도 태일이하고 약속했던 사항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이후에 내가 태일이를 떳떳이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날 저녁 이소선은 이리저리 뒤척이다 잠깐 잠이 들었다. 잠깐 잠이 든 사이에 아들 태일이가 어머니를 찾아왔다.

'어머니 힘을 내세요! 내가 이렇게 지켜보고 있잖아요!'

태일이의 목소리가 생시에 듣는 것처럼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기상나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아침이다. 이 방 저 방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구치소의 일상이 시작됐다.

이소선은 특별한 일 없이 하루 종일 감방 안에 앉아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바깥에서는 자신을 내놓으라고 야단들일 텐데. 조합원들이 얼마나 고생을 할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자신이 여기에 와 있는 걸 알면 순옥이라도 면회를 올 텐데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을 보니 여기에 있는지 아직 모르거나, 알고 있어도 면회를 시켜 주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면회조차 안 되는 상태에서 3일이 지났다. 간수가 이소선의 방문을 털컹 열더니 나오라고 했다. 이소선이 간수를 따라간 곳은 보안과였다. 남방셔츠를 깨끗하게 입어 인상이 깔끔한 사람이 이소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에 법전이 놓여 있었다. 그가 종이와 볼펜을 들고 이소선에게 물었다.

"이름이 뭡니까?"

"내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지도 모르는데 무슨 얘기를 하란 말이요? 당신네들이 무조건 잡아왔으니 나한테 뭘 묻기 전에 당신네들이 먼저 얘기하시오."

"장기표 재판에 방청하러 간 사실이 있지요?"

그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기계처럼 질문했다. 이소선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상대방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계속 얘기를 했다. 장기표 재판에 가서 몇 월 며칠 어떻게 소란을 피웠는지, 판사와 검사한테 욕설을 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욕을 한 사실이 있소. 가뜩이나 재판을 강압적으로 하길래 울화통이 터져 욕을 했소. 판·검사라면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이 많은 사람들인 걸로 알고 있는데, 내 상식으로 생각할 때 많이 배운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소. 배운 사람들이 그렇게 진실되지 못하게 사람을 업신여기고 야비하게 몰아붙이는 것을 보니 화가 치밀었소. 그래서 재판장이나 검사가 먼저 죽어야 우리가 살 수 있지.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우리가 정말로 다 죽겠다는 뜻으로 욕을 했소."

"그럼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합니까? '잘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고 하면 집에 빨리 갈 수 있을 텐데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물었다.

'나 같은 여자에게 항복을 받으려고 하다니.'

꿈에 찾아온 태일이

야비한 처사에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역겨움이 솟구쳤다.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맞는 말을 했는데 왜 잘못했다고 해! 형사 놈의 새끼들이 구제 안 해 줘도 살 수 있어!"

"참 구제불능이구만, 왜 욕을 해? 내가 형사인 줄 아는가 보지?"

그는 싸늘한 냉소를 던지더니 나가 버렸다. 그가 나가고 난 뒤 보안과장이 이소선 앞으로 다가왔다.

"그 사람 형사가 아니고 검사요."

"검사가 왜 여기에 오나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서 영장을 떼 갖고 왔으면 검사가 이런 것을 안 하는데, 영장이 없으니까 검사가 직접 온 겁니다."

요식적인 절차가 어떻게 처리됐는지 모르지만 조사는 그것으로 끝나고 구치소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소선이 처음 구치소 생활을 할 때는 몹시 더운 여름이었다. 날씨는 더웠고, 물은 귀했다. 그러니 머리 감는 일이 큰일이었다. 이때까지 이소선은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고 살았다. 이소선이 여태껏 머리를 자르지 않은 이유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자신한테 했던 유언 때문이었다.

"태일이 에미야, 우리 상수가 부족하더라도 네가 꼭 참고 열심히 살아라. 나는 너를 믿는다. 그리고 태일이 저놈도 참 똑똑하다. 네가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꾹 참고 전씨 집 사람으로 살면 나중에 좋은 일도 있을 것이다."

"예, 아버님 염려하지 마세요. 열심히 잘살게요. 아이들도 훌륭하게 키우겠어요."

"암. 그래야지. 그리고 에미야, 너는 내가 죽더라도 그 쪽진 머리는 자르지 말고 그대로 살아야 한다."

"예, 아버님."

남편하고 부부의 정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온 이소선을 시아버님은 끔찍이 아껴 주셨다. 시아버님은 당신의 아들보다도 이소선을 더 미더워했다. 그래서 이소선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누구보다 서럽게 울었다.

시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여태껏 비녀 머리를 하고 살았는데 결국 이런 곳에 와서 머리를 잘라야 하다니. 이소선은 돌아가신 시아버지한테 한없이 죄스러웠다. 자기 자신의 사지육신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허전했다. 그날 밤 이소선은 시아버지 꿈을 꿨다. 태일이보다 한 해 먼저 저세상으로 간 남편도 꿈에 나타났다. 이소선은 살아생전 살뜰하게 대해 주지 못한 남편에게 속죄를 하고 또 했다.

면회는 가족밖에 안 되기 때문에 순옥이만 매일 찾아왔다. 조합원들이 날마다 수십명씩 찾아와 구치소 밖에서 몸싸움을 하다 되돌아간다고 했다. 나이 어린 조합원들이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공장일도 제쳐 놓고 면회 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순옥이한테 면회 오지 말라고 전하라고 했다.

이소선은 사회에 있을 때 가슴앓이 속병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 가슴앓이 속병이 재발했다. 속병이 발병하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고 온몸이 뻣뻣해지면서 정신을 잃는다. 이소선은 쓰러진 채 죽는다고 소리치며 성모병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구치소측은 치료할 생각은 안 하고, 이소선의 방에 '지도' 여자를 집어넣더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구치소라는 곳은 사람이 죽는가, 안 죽는가만 감시하는 곳인가 보다. 이소선이 아파서 죽는다고 해도 그대로 놔두고 감시만 했다.

어린 시다들 “어머니 내놔라”

며칠 동안 아파서 죽겠기에 면회 온 순옥이한테 자신이 집에서 먹던 약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나 약을 넣어 주지 않았다. 홍성우 변호사를 통해서야 겨우 약을 받아먹을 수가 있었다. 이소선이 아파서 고생을 하니까 밖에서는 이것이 와전이 돼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니 조합원들은 이소선의 건강상태를 염려해 날마다 면회 투쟁을 했다. 구치소측은 면회를 시켜 주지 않았다. 날마다 구치소까지 와서 몸싸움만 하고 되돌아가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이소선이 운동시간이 돼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담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하나 둘 셋, 이소선 어머니 내놔라!"

이소선의 귀에 분명히 미경이 또래 시다들의 목소리였다. 얼마나 듣고 싶은 목소리였던가. 애들은 이소선이 이렇게 듣고 있는 줄도 모를 테지. 조합원들은 하도 답답하니까 이왕에 온 것, 힘껏 고함이라도 질러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외치는 것이었다. 얼마나 반갑고 그리운 목소리인지 이소선은 눈물을 흘렸다.

"미경아! 청계!"

이소선도 온 힘을 다해 불러 봤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저 높은 담을 넘지 못했다.

조합원들이 어찌나 찰거머리처럼 면회시켜 달라고 했는지 어느 날 보안과에서 이소선을 불렀다.

"면회를 시켜 줄 테니까 나가서 '너희들 자꾸 이렇게 와서 소란을 피우면 내가 나가는데 지장이 많으니까 그러지 말고 조용히 해야 한다'고 말 좀 해 주시오."

"좋소. 그렇다면 면회를 시켜 주시오."

드디어 면회가 성사됐다. 면회실에 나가 보니까 어린 시다들이 먼저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얼마나 반가운지, 아이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떤 아이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소선은 아이들이 반갑다는 생각은 제쳐 놓고 미안한 생각이 먼저 앞섰다.

"어떻게 일 안 했어? 결근했냐?"

"어머니, 지금 일이 문제예요? 어머니가 잡혀서 여기 계시는데 우리가 일 나가면 어떻게 해요. 어머니 석방투쟁을 해야지요."

"야 너희들, 일을 제대로 안 하면 뭘 먹고사냐? 싸우더라도 일을 해서, 먹으면서 싸워야지. 배고프면 소리도 지를 수가 없잖아. 나는 잘 있으니까 그만 찾아와도 된다. 너희들이 착실하게 일하고 있으면 나도 곧 나갈 수 있을 거야."

보안과장의 부탁 때문이 아니었다. 어린것들이 일도 팽개치고 날마다 여기까지 와서 싸우고 얻어맞다가, 허탈하게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이소선의 속이 편치 않았다.

그 다음부터 조합원들은 조별로 번갈아 가면서 매일같이 면회를 왔다.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편집부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