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발전재단은 노동자 삶의 질 향상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업장의 근로시간과 근무조건을 분석해 기업여건에 적합한 근로형태를 찾는 ‘장시간근로개선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해 재단 의뢰로 컨설팅을 받은 사업장을 취재했다. 취재 결과 노사 간 소통과 협력으로 장시간근로 개선을 추진한 기업은 노사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우수기업 두 곳의 사례를 본지에 소개한다.


① 삶의 행복 찾아 운전대 돌린 영일기업
② 월 2시간 연장근로 단축한 한국지역난방기술㈜

 

▲ 영일기업 노동자들이 차량 운전 전에 정비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영일기업 노동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50~60톤의 대형트럭에 올라탄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내내 운전대를 잡고 넓디넓은 포스코 공장을 돌아다닌다. 그리곤 오후 3시에 퇴근한다. 이렇게 닷새를 근무하고 나면, 그 다음 닷새는 오후 3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한다. 다시 그 다음에는 밤 11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을 마친다.

5일 단위로 근무조가 바뀌는 통에 주말이라고 해서 쉴 수도 없다. 한 달에 네 번의 특별휴일이 주어지지만 누군가가 특별휴일을 사용하면 다른 동료 두 명이 각각 4시간씩 연장근로(대체근로)를 해야 한다. 연장근로를 하는 동료들은 꼬박 12시간을 일하게 된다. 한 사람당 월평균 8일은 그렇게 쉬는 동료를 대신해 하루 12시간을 일한다. 12시간 근무하는 날이 많게는 한 달에 15일이나 20일이 되기도 한다.

직업적인 운전자가 아니더라도, 운전대를 잡아 본 사람은 안다. 장시간 운전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그렇게 운전할 때마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사고의 공포감을 말이다.

3조3교대의 고된 노동 … “왜 이렇게 살아야 해?” 

 

영일기업 근로자들은 2014년 2월까지 3조3교대 근무를 했다. 3개 조로 나뉜 근로자들은 하루 24시간을 쪼개 톱니바퀴처럼 운전대를 잡았다. 한 달에 쉴 수 있는 날은 4일의 특별휴일뿐이었다. 누군가의 특별휴일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연장근로였다.

일주일에 평균 56시간을 일했고, 한 달 초과근로만 66시간이었다. 근로자들은 자기계발 시간은커녕 가족과 함께 지낼 시간도 부족했다. 피곤이 몸에 쌓여 갔다. 교대근무자 10명 중 6명은 밤에 자주 깨거나 낮에 조는 ‘수면장애’ 현상을 보였다. 일부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5일을 주기로 근무시간대가 바뀌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근로자들의 입에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박상훈(48) 경북지역자동차노조 영일기업지부 위원장은 “피로가 누적된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3조3교대 근무의 문제점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지면서 경영에 큰 부담이 됐다. 게다가 원청인 포스코를 포함해 주위 대부분의 포스코 협력업체들이 4조2교대를 실시하고 있어, 영일기업의 3조3교대 근무형태는 업무 소통·연계성을 약화시켰다.

노사발전재단 문을 두드리다

근무형태를 바꿔야 한다는 데 노사 간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근무형태를 바꾼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던 차에 노사발전재단이 장시간근로개선 컨설팅을 무상으로 지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노사발전재단과 영일기업이 TF팀을 만들어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3조3교대의 문제점을 분석한 뒤 교대제 개편방안을 만드는 일이었다. 현행 교대제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3개의 근무조를 4개 근무조로 늘리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문제는 4개조로 늘린 뒤 근무조당 인력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였다. 근무조당 인력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기존 인력의 33%인 58명이나 충원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렇게 되면 근로시간을 줄이는 만큼 근로자들의 임금도 대폭 줄어들 게 뻔했다. 충원한 인력만큼 회사가 부담할 인건비도 문제였다. 노사 모두 설득하기 힘든 방안이었다.

반대로 조당 인력을 줄이는 방법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기존 임금을 보전할 수 있는 재원이 생기고, 근로자들의 임금감소 폭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번 출근하면 1인당 노동강도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다.
 

 


대세는 4조2교대 근무

다음으로 4개 근무조로 할 경우 2교대로 할지, 3교대로 할지는 컨설턴트와 노사의 고민거리였다. 2교대제를 도입하게 되면 근로자 한 명이 하루에 12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에 쉬는 날이 많아지면서 삶의 질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고 근로자들이 취미활동이나 자기계발에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많아진다. 개인 경조사로 누군가 피치 못하게 휴가를 사용하게 될 경우 대체인력을 투입하기도 쉬운 방안이었다.

반대로 3교대제의 경우 2교대제와 장단점이 바뀌게 된다. 하루 노동에 대한 피로감이 높지 않고, 기존 3조3교대와 비슷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적응하기도 쉽다. 하지만 출근하는 날이 늘어 2교대제와 비교해 휴일이 줄어들게 되고, 결원이 생기면 대체근무도 쉽지 않은 단점이 있다.

노사의 선택은 의외로 간단했다. 원청인 포스코가 4조2교대제를 하는 마당에 굳이 4조3교대제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 12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노사는 큰 어려움 없이 4조2교대제로 방향을 잡았다.

컨설턴트는 “하루 12시간 일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이미 영일기업 근로자들은 대체 연장근로를 한 경험이 많았고 휴일이 획기적으로 많아지기 때문에 2교대 운영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임금보전과 인력충원, 결국은 ‘돈’ 문제

4조2교대제로 마음을 굳힌 뒤부터 진짜 난관이 찾아왔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근로자들의 임금도 당연히 감소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기존 임금보다 41%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게다가 근무조를 늘리려면 그만큼 인력을 새로 뽑아야 한다. 근로자들은 최대한 원래 임금을 유지하려 할 것이고, 반면에 인력충원까지 해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근로자들의 임금을 전부 보전해 줄 자신이 없었다.

가장 첨예한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그야말로 컨설팅과 노사협력이 필요한 문제였다. 노사와 컨설턴트는 시뮬레이션을 돌려 4가지 방안을 도출했다.

1안은 4조2교대를 하면 기존 근무형태보다 11일의 근무가 감소함에 따라, 교육시간을 신설하고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2안은 교육수당도 신설하고 원래 없던 주휴일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휴일에 일을 하게 될 경우 초과근로수당이 붙어 근로자들의 소득보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3안은 교육수당을 주면서 직무분석을 통해 업무를 효율화하는 내용이다.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거나,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추가로 뽑아야 할 인원을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생산성을 높이면서 각 근무조당 인력을 줄이고, 휴게시간을 축소할 수도 있다.

4안은 교육수당을 새로 만들고 동시에 기존 임금의 90%를 보전할 수 있도록 회사가 추가로 인건비를 지출하는 방안이다. 1~4안은 기존 임금삭감 폭 42%에서 각각 3·13·11·31%를 보전할 수 있는 방법들을 각각 제시했다. 노사는 최종적으로 4안을 선택했다.

힘겨운 노사협상, 열매를 맺다

컨설턴트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2013년 4월에 시작한 컨설팅은 6월에 끝났다. 당사자인 노사의 결정만 남았다. 노사는 같은해 10월부터 밀고 당기기에 들어갔다. 남은 쟁점은 기존 임금을 어느 정도 보전하느냐의 문제였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소득수준의 문제였고, 사업주 입장에서는 비용 지출의 문제였다.

쉬울 리가 없었다. 노사는 팽팽하게 맞섰다. 한때 노조가 강력투쟁을 선언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게다가 중간에 노조 선거가 실시되면서 협상은 길어졌고,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노사는 “근로시간단축을 위해 교대제를 바꾸는 과정에서 임금 보전과 관련한 협상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지난한 협상 끝에 2014년 1월 노사교섭이 타결됐다. 영일기업은 4조2교대로 전환하기로 하고, 교대근무자 인원을 기존 243명에서 273명으로 30명 증원했다.

당초 4조2교대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58명의 추가인력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지만 한꺼번에 신규인력을 모두 충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영일기업 노사는 점진적으로 인력을 증원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중·단기 대책으로 상시적인 인력효율화 시스템을 가동하기로 했다.

노조는 직무분석을 통한 인력효율화와 생산성 향상에 동의했다. 순간순간의 노동강도가 높아졌다. 반대로 회사는 원래 없던 300%의 교육수당을 신설한 것을 포함해 기존 임금의 92.2%를 보전해 주기로 했다. 1인당 월평균 35만원이 감소했지만, 당초 컨설턴트가 권고한 90% 보전보다는 높았다. 근로자는 생산성 향상을, 회사는 임금보전을 통해 4조2교대제 실시의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꿀맛 같은 연속휴일, 달라진 삶

2014년 3월부터 영일기업의 근무형태가 싹 바뀌었다. 주간근무와 야간근무를 이틀씩 하고 나면 격주로 돌아가면서 사흘과 나흘씩 쉬었다. 사흘을 쉬고 난 다음날에는 직업교육을 받았다.

연간 317일, 2천920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은 182.5일, 2천286시간으로 줄었다. 1년에 48일밖에 쉬지 못했는데, 170.5일을 쉬게 됐다. 주당 근무시간은 56시간에서 42시간으로 감소했다.

한 번 출근하면 12시간을 일해야 했지만 3조3교대제 근무시 대체근로를 한 탓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나흘이나 사흘씩 연이어 주어지는 꿀맛 같은 연속휴일의 기쁨이 오히려 컸다. 휴일 여가계획을 짜는 행복을 맛보기 시작했다.

변변한 취미생활이 없었던 근로자들이 지금은 낚시·등산·탁구·검도 같은 온갖 여가활동에 빠져 있다. 박상훈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그동안 힘든 노동 때문에 챙기지 못한 건강을 회복하는 데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정무(46) 전무이사는 “근로자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며 “힘든 과정이었지만 근로자들 삶의 질도 높이고, 국가 시책인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컨설턴트는 “노사가 서로의 이익만 챙겼으면 평행선만 달렸을 것”이라며 “노조가 인력효율화에 동의해 인력충원 폭을 줄이고, 회사가 임금보전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성공의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한편에서는 장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도 눈에 띈다. 영일기업은 포스코로부터 물량을 받아 운송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물량이 늘지 않아 매출도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4조2교대 실시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에 매출을 늘려야 하는 과제가 노사 모두에게 남겨진 것이다.
 

영일기업은?

1985년 설립된 영일기업은 경북 포항시에 위치해 있다. 영일기업은 ㈜포스코의 구내운송을 담당하는 협력업체다. 철강공정에서 생산된 제품(슬래브·코일)과 부산물(스크랩·슬러지·스케일), 원료를 포스코의 요구에 따라 구내 또는 구외로 운송한다. 273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한국노총 자동차노조연맹 경북지역자동차노조 영일기업지부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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