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비정규직이 사회문제가 되자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격차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법을 만들었다. 2001년 7월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지 5년여 만이었다. 법에는 노동계가 요구한 사유제한이 빠지고 기간제한만 어정쩡하게 들어갔다. 그래도 사용자들에게는 기간제한이 눈엣가시였던 모양이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기간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주문했고, 이명박 정부는 집권 2년차를 앞두고 덥석 받아물었다. 2년을 4년 혹은 3년으로 늘리지 않으면 100만 해고대란이 일어난다고 위기감을 조성했다. 근거가 미약해 여론의 반발만 샀고, 법 개정을 추진하던 주무장관은 물러났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2년차 막판에 다시 기간제한을 4년으로 풀겠다고 나섰다. 파견 업무를 확대하고, 정규직 고용을 완화하는 내용까지 세트로 묶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을 평가하는 기고를 보내왔다. 5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

한국 노동시장의 특성은 과도한 유연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평균 근속연수가 가장 짧고, 비정규직 비율은 스페인·폴란드와 함께 최고 수준이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 또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유연성의 과잉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수행 직무 관련 숙련을 축적하지 못하고 소속 기업에 대한 정체성과 헌신성을 결여함으로써 기업은 높은 생산성과 품질에 기초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높은 고용불안정 수준은 내수시장 활성화를 어렵게 만들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게 된다.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 피고용자의 절반에 육박하고, 비정규직 규모는 장기적 증가추세를 지속하며 과도한 노동시장 유연화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따라서 비정규직 규모 감축이 비정규직 정책의 핵심 목표가 돼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 대안은 자명하다.

첫째, 상시적 업무의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원칙을 수립하고 비정규직은 적절한 사용사유가 발생할 때 직접고용을 전제로 허용한다. 둘째, 사용자와 노동자 개념을 확대해 사용사업주의 책임·의무를 강화하며 도급·파견 구분 기준을 법제화하고 불법파견·위장도급을 색출해 징벌적 제재를 부과함으로써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단계적으로 없애 간다.

정부가 지난달 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안)과 함께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핵심”을 정규직 채용 원칙과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 및 노동조건 개선이라고 밝힌 것은 이러한 노동시장 유연성의 과잉 현상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고려한 탓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구체적 정책수단들은 이러한 정책 방향에 역행하며 비정규직 사용 확대를 추진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종합대책은 상시적 업무와 생명·안전 담당 업무의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원칙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수단이 없다. 일부 기간제와 파견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임금인상액의 50%를 1년간 지원하는 인센티브로는 정규직 전환의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종합대책이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책도 일부 포함하고 있지만 대부분 추상적이거나 지엽적인 내용에 불과하다. 반면 비정규직 사용 확대 효과가 분명한 대책을 포함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기간제 사용기간 2년 연장과 파견노동 허용 확대다.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 연장하면 기업들은 기간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도 장기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기간제 비정규직은 20대부터 40대 중반에 이르는 연령대에 집중돼 있는데, 사용기간이 연장되면 청·장년층의 기간제 노동기간은 길어지고 비정규직 탈출은 더욱 어려워진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직접고용 비정규직에 비해 사용자의 법적 책임·의무 회피 의도로 악용되고 있어 고용불안정과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데, 비정규직 유형 중 가장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다. 특히 불법파견·위장도급은 정부의 묵인하에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대표적 재벌그룹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첨예한 노사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종합대책은 55세 이상 고령노동자의 경우 직접생산공정과 절대금지 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들에 파견노동을 허용하고, 고소득 전문직종과 인력난을 겪는 직종을 대상으로 파견노동 허용을 확대한다. 뿐만 아니라 도급·파견 판단 기준의 법제화를 거부하며 일부 징표들을 판단 기준에서 배제하고, 불법파견·위장도급이 횡행하는 사내하청에 대해 징벌적 제재를 부과하지 않고 우수사례를 홍보하겠다고 한다. 이처럼 종합대책은 불법파견·위장도급을 양성화·합법화하며 파견노동을 중심으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노동 사용 확대는 이명박 정부에 이은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정책추진 방향이었다는 점에서 정부의 정책의지가 구현된 것이며, 재계의 오랜 숙원과제를 들어준 것이기도 하다.

이제 노동자의 생애주기는 청년기·장년기 기간제로 시작해 노년기 파견노동으로 마감하게 되며, 정규직 가능성은 짧은 중년기의 요행으로 남게 됐다. 종합대책은 이렇게 '평생 비정규직' 시대를 열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