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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53] 여간첩 잡으러 왔다

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이소선은 장기표 재판에 가서 하고 싶은 말을 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람을 재판한다면서 벌이는 작태가 말도 안 되기에 그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어 큰소리를 쳤다. 그것이 문제의 불씨가 된 모양이다. 이소선은 감시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동안 이소선의 집을 경찰이 감시하지 않은 적이 언제 있었던가. 동네 입구 가게에서 서성거리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경찰이나 정보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소선의 집 담벼락 옆에 아예 방범초소를 새로 지어 놓았다. 가난한 사람들만 사는 동네에 지킬 게 뭐가 있다고 방법초소를 지었겠는가. 이소선을 감시하는 눈길이 그칠 새 없었다. 그런데 이번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1977년 7월19일 밤 9시께였다. 5명의 사복경찰이 이소선의 집 마당까지 들어와서 이소선을 찾았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경찰이 집 바깥에서 얼씬거리기는 했어도 마당까지 들어오지는 않았다.

감시당하는 이소선

"누군데 밤중에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는 거요?"

"아, 이 여사님이시죠? 태릉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조사할 것이 있는데 서에 잠깐만 가시죠."

이소선을 연행하겠다는 것이었다. 딸 순옥이가 잽싸게 눈치를 채고, 노조사무실과 노동교실에 전화를 했다.

"지금 어머니를 연행하려고 경찰들이 들이닥쳤으니 조합원들을 빨리 보내 주세요!"

이소선은 방 안에서 대꾸를 했다.

"가자는 이유가 뭐요? 이유를 모르고는 갈 수가 없소!"

이소선이 단호하게 갈 수 없다고 하자 그들은 난처해했다. 그중에서 계급이 높아 보이는 사람이 이유를 말했다.

"지난 7월15일 성북지원 법정에서 검사와 판사한테 욕설을 한 것 때문에 조사할 것이 있어서 그러니 잠깐만 가시죠."

"조사할 것이 있으면 여기서 조사를 하든지 아니면 낮에 올 것이지 밤중에 와서 뭐하자는 거요? 하여튼 나는 갈 수 없소!"

그러자 경찰들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이소선이 못 가겠다고 완강히 버티고 있으니까 사실을 보고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기 위해 전화하러 나가는 것이다.

이소선은 그들이 왜 자신을 연행하려고 하는지를 생각해 봤다. 틀림없이 지난번에 노동청에 가서 농성한 것 때문이리라. 그 당시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전개했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노동운동과 연관시켜 자신을 구속시키기에는 명분상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일단 석방을 시켰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법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트집 잡아 구속시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집 안팎에서 형사들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시간이 흘렀다. 그러자 조합원들이 이소선의 집에 한꺼번에 몰려왔다. 작은 집에 50여명의 조합원들이 들어오니 집안이 꽉 찼다. 조합원들은 이소선을 지키고 있던 형사들을 쫓아 버렸다. 조합원들은 노동교실에 들러 모임을 하다 달려왔다. 배가 고프겠다 싶어 저녁밥을 얼른 해서 차려 줬다.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물론 조합원들에게 밥을 해서 먹이는 일은 딸 순옥이가 했다.

이소선의 큰딸 전순옥은 오빠가 죽고 난 뒤 이소선 대신 집안에서 살림을 하게 됐다. 언제라도 조합원들이 오면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밥을 해서 먹였다. 누가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닌데 불평 없이 알아서 했다. 이소선은 이런 딸한테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아들 태일이의 뜻을 따라 만사 제쳐 놓고 노동운동을 한다고 하지만 애들한테는 강요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순옥이뿐만 아니라 작은딸 순덕이한테는 더욱더 미안했다. 순옥이야 나이가 들어 오빠의 뜻이 무엇이고 어머니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를 하니까 그래도 덜 미안하지만, 아직 어린 순덕이는 나름대로 어려움이 많았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때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손님들이 들이닥치니, 비좁은 방에서 공부할 장소도, 잠잘 곳도 마땅치 않았다.

이날 밤 조합원들 모두 다 이소선의 집에서 새우잠을 잤다. 다음날 오전 11시쯤에 조합원들이 이소선을 에워싸고 노동교실로 갔다. 경찰들은 이들 뒤만 졸졸 따라올 뿐 강제로 연행하려는 눈치는 아니었다. 이소선이 집에서 연행되려다가 노동교실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조합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노동교실로 몰려들었다. 노동교실 주변에 경찰력이 증강됐다. 그리고 노동교실에 들어오려는 조합원들을 경찰들이 가로막자 조합원들과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우리 교실에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거야?"

"어머니 연행을 중단하라!"

지키는 조합원들

노동교실 안에 들어와 있는 조합원들이 경찰과 싸우는 동료들을 도와주기 위해 노동교실 3층에서 경찰을 향해 물과 석유를 뿌리고, 유리병과 몽둥이를 내던지자 경찰의 저지망이 무너졌다. 조합원들이 왕창 밀고 들어왔다.

조합원들은 농성을 하면서 이소선을 지켰다. 하루가 지나자 경찰들은 철수했다. 어쩌자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당시 이소선은 전 지부장·조직부장과 함께 미국 피복노조의 초청을 받은 상태여서 8월에 출국하기 위해 수속을 밟던 중이었다. 이승철 전 지부장이 성북경찰서 정보과로 전화를 했다.

"당신들, 이소선 어머니가 미국에 가려고 하니까 미국 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어머니를 연행하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하필 이때 어머니를 연행하려는 이유가 뭐요?"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외신기자가 노동문제·민주회복 운동에 관한 취재만 해도 겁내는 정부로서는 이소선이 미국에 가서 한국의 노동문제, 한국의 인권상황을 알리게 되면 정권유지 차원에서 부담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럴 리가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법을 어긴 사항이 있어 조사를 해 보려는 것이겠지요."

"이것 보시오! 그렇게 말하기로 하면, 어머니가 법을 어긴 게 이번이 처음이요? 그런데도 여지껏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다가 이제 와서 문제 삼는 저의가 뭐냔 말이요? 당신들이 지킬 만한 법을 만들어야 법을 지키지, 국민을 억압하는 법만 만들어 놓으니 지킬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이 지부장,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내 말 들어보시오. 이 여사를 조사하고자 하는 곳은 태릉서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집에 들어오셔도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합니까?"

"이 여사를 연행해 가면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또 이 여사는 지금 미국에서 초청돼 있는 처지이니 이 여사를 연행하면 한국의 인권문제가 국제적으로 알려질 것이 뻔한 것 아닙니까."

그럴 듯한 말이었다.

"지금 어머니가 출국수속을 밟고 있는데 시간이 없단 말이요. 다른 서류는 대충 갖췄고, 신원조회서만 있으면 돼요. 닷새 안으로 서류를 갖춰야 출국을 할 수 있는데 당신들이 방해해서 못 가게 되면 책임은 당신들한테 있는 줄 아시오."

"이 지부장! 염려하지 마시오. 우리가 책임지고 신원조회를 해 줄 테니 지금 집으로 오시라고 하시오."

"그 말 정말 믿어도 되는 거요?"

"믿어도 되지요. 아무 염려하지 말라니까."

전화통화는 이렇게 끝났다. 이승철 전 지부장은 다른 간부들과 의논을 했다. 다들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속는 셈 치고 들어가 보자는 것이다.

구치소로 끌려간 이소선

이렇게 해서 7월22일 오후 3시께 이소선은 조합원 몇 명과 함께 집에 도착했다. 그동안 무더운 여름인데도 목욕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온몸이 끈적끈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시원하게 목욕을 하면 심신이 개운해질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낮에는 비어 있는 이웃집에 가서 목욕을 했다.

목욕을 막 끝내고 속옷을 다 입고 겉옷을 입으려는데 밖이 소란스러웠다. 덩치가 커다란 남자들이 이집 저집 몰려다니면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소선은 자신을 잡으러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순간 문을 열고 일단의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이소선을 보자마자 낚아챘다.

"야, 이놈들아! 여자가 목욕을 하는데 이렇게 무례하게 들어와서 사람의 몸을 비틀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들은 이소선의 외침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이소선을 끌고 가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에 밀어 넣어 버렸다.

딸 순옥이랑 노동교실에서 함께 따라온 조합원들이 이 모습을 봤지만 미처 손쓸 틈 없이 순식간에 당한 일이었다.

잡혀간 이소선이 경찰차 안에서 바깥을 얼핏 보니 형사들이 온 동네에 깔려 있었다. 족히 50여명은 될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무전기를 가지고 열심히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온 동네에 쫙 깔려 있는 경찰들은 태릉경찰서와 성북경찰서에서 동원됐다. 이들은 이소선을 찾으러 집집마다 다니면서 "여간첩 잡으러 왔다"면서 동네를 들쑤셨다.

이소선을 태운 승용차는 지체 없이 출발했다. 이소선의 양 옆에는 엄청나게 큰 덩치의 경찰 둘이 앉았다.

이소선이 차창 밖을 보니 뒤에서는 순옥이와 조합원들이 맨발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가로막는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이소선이 사는 동네 입구에 있는 노원파출소 앞에서 차가 잠깐 멈췄다. 그를 잡았다는 보고를 하는 것 같았다. 이소선이 탄 승용차 앞에는 백차가 선도를 하고, 뒤에는 기동대를 태운 버스가 따라오고 있었다.

거의 같은 시각 경찰은 이소선을 연행함과 동시에 노동교실을 폐쇄했다. 노동교실 주위에는 경찰이 배치돼 조합원의 접근을 막았다.

이소선은 곧바로 태릉경찰서로 갔다. 거기서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서울지검 성북지원으로 갔다.

성북지원에 도착하니 비로소 조사를 시작했다. 검찰 서기가 종이와 볼펜을 주면서 이소선한테 진술서를 쓰라고 했다.

"나는 무식해서 내 이름자도 쓸 줄 몰라요."

이소선은 서기를 등지고 돌아앉아 버렸다. 서기가 어이가 없는 듯 웃더니 자기 혼자 무슨 서류를 쓰고, 이소선한테 몇 마디 질문을 던졌다. 잠시 후 자기가 썼던 서류를 이소선한테 내밀었다.

"여기 이름 밑에다 서명을 하세요."

"나는 무식해서 이름도 쓸 줄 모른다니까요."

"뭐 이런 양반이 다 있어? 그러면 지장이라도 찍어요."

그날 밤 이소선은 곧바로 성동구치소로 송치돼 수감됐다. 이소선이 경찰서에 있으면 조합원들이 몰려와서 시위하고 농성을 할까 봐 구치소에 수감한 것 겉았다.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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