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2015년이 시작됐다. 한상균의 민주노총이 시작됐다. 지난달 26일 민주노총 첫 직선제 선거에서 당선된 위원장의 임기가 1월1일부터 시작됐다. 한상균의 민주노총이 이전 민주노총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다르지 않다면 민주노총 위원장이 신승철에서 한상균으로 바뀐 것일 뿐이고, 7기에서 8기로 민주노총이 나이를 더 먹게 되는 것일 뿐일 게다. 다르지 않다면 굳이 새롭다며 시작이라고 요란을 떨 일이 아니다. 오래전에 개정된 규약규정이 정한 바에 따라 마침내 직선제를 실시해서 대의원이 아닌 직접 조합원들의 투표로 선출됐다는 것이 다른가. 그렇다면 그건 직선제 선거를 원만히 치러 냈다고 민주노총(특히 선거관리위원회 등 사무종사자)을 평가하면 될 일이지, 당선된 한상균 위원장을 말할 일이 아니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는 총파업투쟁을 말했다. 선거 공약에서, 선거운동에서 그는 총파업투쟁으로 다른 후보와 달랐다. 한상균은 즉각 돌입하겠다고 총파업투쟁의 의지를 밝혔다. 이 점에서 그는 사전 준비를 통한 투쟁을 공약한 상대 후보와 분명히 달랐다. 그러니 한상균의 민주노총이 다른 것이라면 총파업투쟁에서 달라야 할 것이다.

2. “총파업투쟁은 이미 시작됐다.” 어찌된 일인지 요샌 이렇게 결의에 찬 말이 반갑다.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한상균 위원장이 당선자로서 한 말이었다. “박근혜 정권과의 투쟁 아래 결집시켜야 한다는 것이 80만 조합원의 명령”이라며 “노동법 개악에 맞서 즉각적으로 투쟁 태세를 갖출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많은 총파업투쟁이 있었다. 민주노총이 출범한 직후부터 총파업투쟁이 있었다.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노개투) 등 많은 투쟁이 총파업이라는 이름으로 결의돼서 전개됐다. 민주노총은, 나아가 이 나라 노동운동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과 1996~1997년 노개투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런 투쟁을 만들어 내겠다고 결의하고 조직해 왔다. 법률담당으로 시작해서 법률원장으로 금속산업연맹·금속노조에서 일했던 나는 1998년부터 10년 동안 IMF 관리체제 하 일방적 구조조정 반대 및 고용안정 쟁취, 40시간 노동제 쟁취, FTA 반대, 산별교섭 쟁취, 노동법 개악 반대 등 수많은 총파업투쟁을 경험했다. 그 총파업은 전체 조합원이 파업하는 것을 말했다. 그러니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은 민주노총의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는 파업투쟁이어야 했다. 그런데 한 차례도 그러지 못했다. 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투쟁의 결의는 있었다. 그런데 총파업투쟁은 없었다. 금속 중심의 파업투쟁이 있었을 뿐이다. 더구나 사업장 임단투를 시기집중해서 총파업투쟁이라고 선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총파업투쟁이라고 했어도 총파업투쟁은 없었다. 총파업이라고 포장된 투쟁이 있었다. 그래서 총파업투쟁을 결의할 때면 민주노총·금속연맹 내지 금속노조의 각종 회의에서, 그 위원장 선거에서 ‘뻥파업’이니 뭐니 하며, 하려면 제대로 조직해서 그야말로 총파업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논쟁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 무렵에는 총파업투쟁이란 말이 상투적인 투쟁의 말이라서 식상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 나는 총파업투쟁이란 말이 반갑다.

3. 총파업. 그것이 사업으로 기획하고 조직해서 하는 투쟁이라면 세상을 바꿔 낼 수 있을까. 기획하고 조직하는 사이에 조합원 대중의 분노는 허공으로 산화돼서 마침내 총파업이라고 해 봐야 관료적으로 조직된 지루한 투쟁 전술인 파업이 전부다. 그래서 “총파업투쟁은 이미 시작됐다”고 민주노총 직선제 선거로 당선된 한상균 위원장의 말이 반가운 거였나. 총파업투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한 그의 계산 없는 말이 총파업을 기술의 문제가 아닌 결단의 문제로 여겨져서 나는 반가운 거였는지 모른다. 박근혜 정부가 비정규직법·노동법 개악 등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에 맞서 즉각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위원장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국회 등 논의를 무기력하게 지켜보지 않고 투쟁으로 이 나라 노동운동이 노동자권리를 위해 말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라서 그랬는지 모른다. 아니면 노조가 많아도 조합원권리를 두고서 파업하는 노조는 많지 않고 산별노조·산별연맹, 그리고 총연맹으로 거대하게 노조가 조직돼 있어도 노동자권리를 위해 총파업을 하는 걸 보지 못해서인가. 그래서 이 나라 노조운동이 노동자권리를 위해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하겠다는 것에 나는 계산 없이 반갑다 하는 것인지 모른다.

계산하고서 한다면 총파업투쟁은 없다. 비정규직법 등 노동법 개악에 반대해서 하는 총파업투쟁은 없다. 1996~1997년 노개투처럼 치밀하게 준비해서 하겠다고 조합원들을 몇 달을 교육하고서 하는 총파업투쟁은 없다. 물론 비정규직법 등 노동법 개악 반대에 관해서 조합원들에게 치밀하게 교육한다면 조합원들은 그런 법을 개악해서는 안 된다고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비정규직이 아닌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임금 손실을 감수하면서 비정규직법 개악에 반대해서 파업투쟁을 해야 한다고는 이해하지 않는다. 거기에 대고 이 나라 전체 노동자권리,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라고 교육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소의를 희생해야 한다고 교육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아마도 그것은 수시로 파업투쟁을 해온 금속노조 등 일부 노조 조합원들에게만 소용 있는 일일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그것도 잘해야 하루 이틀의 파업이 전부다. 그것으로는 한번 투쟁해 봤다는 것 말고는 없다. 목적을 위해서 총파업투쟁을 한 것이 아니라 투쟁하기 위해서 총파업투쟁을 한 것이 되고 만다. 비정규직법이 아닌 노동법 개악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보다 상회하는 단체협약을 확보하고 있는 노조 조합원들이 자신의 권리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노동법 개정에 반대해서 완강하게 총파업투쟁에 돌입해야 한다고는 이해하지 않는다. 투쟁해야 할 자는 투쟁할 줄을 모르고, 투쟁하지 않아도 될 자는 투쟁을 말한다. 이것이 노동운동의 비극이다. 비정규직법 개악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노동법 개악은 그 노동법보다 상회하는 단체협약상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한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한다. 정규 노동자 조합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 침해하더라도 단체교섭을 통해서 단체협약상 권리로 확보할 수가 있으니 굳이 총파업투쟁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해당 사업장 사용자를 상대로 한 임단투를 하면 족하다. 그래서 이 나라 노동운동이 외쳐온 총파업투쟁은 파괴적일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투쟁 한번 해봤다고 평가될 총파업투쟁이 되풀이됐다. 사실 1996~1997년 노개투가 위대했다고 민주노총이 추억하는 것은 그 투쟁의 성과가 아니라 그 투쟁의 규모에 있다. 당시 노개투는 정리해고 등 근로기준법 및 노조법 개악을 저지하지 못했다. 날치기 통과시켰던 노동법을 정상적인 국회의 의결절차로, 날치기 아닌 방법으로 통과시키는 것으로 투쟁은 마무리됐다. 노개투는 노동법 개정을 통해서 노동자권리를 새로이 확보하거나 지켜 내지는 못했다.

4. 1995년 11월 출범한 민주노총은 2015년, 이제 20년이다. 그 20년만큼 민주노총은 늙었다. 출범 직후 노개투 총파업투쟁을 전개했던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등 민주노총의 주력으로 남아 있지만 그들은 20년을 늙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이던 조합원들은 40대 후반, 50대 초반이 됐다. 청년노동자는 중년이 됐다. 오늘 민주노총이 총파업투쟁을 결의한다면 현안 없는 사업장 중 과연 그 총파업투쟁에 참여해서 파업할 조합원들은 누구일까. 결국 이들 늙은 노동자들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노개투 총파업투쟁을 경험했던 노동자들이다. 그들에겐 분명히 노개투의 추억이 남아 있다. 그러나 추억을 떠올려 주는 것으로 그들이 노개투 때처럼 완강하게 총파업투쟁을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신년하례식과 시무식으로 2015년이 시작됐다. 그리고 신년사도 있었다. 한상균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말했다. “노동시간은 1위이나 삶의 질은 100위인 나라, 법치를 조롱하는 자본과 자본의 이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정권, 경찰이 민주노총을 침탈하고, 민주노조를 죽이기 위해 직장폐쇄가 가능한 나라, 1년 내내 연쇄 사망사고가 속출하는 야만적인 재벌조선소·자본의 야만에 맞서는 삼보일배와 오체투지의 고행이 필요한 나라, 정리해고에 맞서 굴뚝과 전광판에 오르고 단식을 해야만 하는 나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사상초유의 정당 해산과 공안통치로 덮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권력에 맞선 총파업투쟁으로 분노로 가슴이 저리고 피눈물이 흐르지만 그 보다도 우리가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나겠다”고 말했다. 무엇을 쟁취할 수 있어서 총파업투쟁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권에 맞선 총파업투쟁으로 그 동안의 무력감에서 벗어나겠다고 한상균의 민주노총은 말하고 있었다. 총파업투쟁은 조합원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하는 것이 되도록 그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총파업투쟁이 전개될 수가 있다. 그래야 임기 3년을 마치고서도 이 글에서 한상균이 공약했던 총파업투쟁이 반갑다고 한 내 말이 한순간의 감상이 아니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투쟁은 목적에 따라 춤춘다. 민주노총은 늙은 조합원들도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완강히 투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투쟁은 계산이 없어도 목적은 계산이 있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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