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비정규직이 사회문제가 되자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격차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법을 만들었다. 2001년 7월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지 5년여 만이었다. 법에는 노동계가 요구한 사유제한이 빠지고 기간제한만 어정쩡하게 들어갔다. 그래도 사용자들에게는 기간제한이 눈엣가시였던 모양이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기간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주문했고, 이명박 정부는 집권 2년차를 앞두고 덥석 받아물었다. 2년을 4년 혹은 3년으로 늘리지 않으면 100만 해고대란이 일어난다고 위기감을 조성했다. 근거가 미약해 여론의 반발만 샀고, 법 개정을 추진하던 주무장관은 물러났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2년차 막판에 다시 기간제한을 4년으로 풀겠다고 나섰다. 파견 업무를 확대하고, 정규직 고용을 완화하는 내용까지 세트로 묶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을 평가하는 기고를 보내왔다. 5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김직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2015년에도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쟁점은 비정규직 문제가 될 듯하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변함없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이제껏 한국에서 비정규직의 대명사는 계약직이나 임시직과 같은 직접고용 비정규직이었다. 이는 달리 말해 중간착취 가능성이 있는 간접고용 형태가 지금까지는 적어도 드러내 놓고 활용되지는 않았음을 말해 준다. 사내하청과 용역을 비롯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최근까지 이어진 법원의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이 정부나 자본의 입장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의 족쇄로 작용해 온 셈이다. 지난달 2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은 정부가 나서 이 '족쇄'를 풀겠다는 선언으로 보인다. 수년 뒤면 서구 국가들이나 가까운 일본에서처럼 '파견사원' 내지는 '파견노동자'가 비정규직의 대명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간접고용 관련 정부 대책의 핵심은 한마디로 파견과 사내하청의 양성화다. 기간제 노동자의 근속기간별 정규직 전환율을 근거로, 정규직 전환율 제고를 위해 기간제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려는 정부 대책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한편으로 여전히 절반에 못 미치는 정규직 전환율은 정부가 편법적 또는 불법적인 기간제 사용을 눈감아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기간제 노동자의 무기계약직 전환율 제고라는 목표를 부정할 수 없으며 차라리 보다 저비용으로 용이하게 기간제 노동을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을 연장하는 쪽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목표 달성의 여지가 큰 쪽이 기간제보다는 간접고용 규제완화라고 본 것이다. 기업들 또한 비용절감과 고용조정의 용이함은 물론 사용자 책임의 부담까지도 덜 수 있는 간접고용 활용을 선호한다.

파견과 관련한 정부 대책의 핵심 내용은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을 대상으로 한 파견 허용업무 확대다. 무엇보다 5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파견 허용 확대는 2013년 정년연장법(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됨에 따라 제기된 재계의 우려에 대한 반응이다. 2016년부터 정년이 만 60세로 의무화되긴 하지만 임금피크제 도입 등으로 인해 당분간 실질적인 퇴직연령이 55세 전후가 될 것임을 고려할 때 중고령층 노동시장은 파견노동자의 급속한 증가와 임금 및 노동조건 저하로 얼룩질 것이다.

문제는 고령자 대상 파견 확대가 중고령층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가운데 더 이상 가족에 의존할 수도 없는 청년층의 실업과 비정규 노동 문제가 심화할 것이다. 미래는커녕 당장 내일이 없는 청년층에게 중고령층 노동시장 유연화는 '내일 없는 오늘'이 죽을 때까지 계속됨을 의미한다.

인력난이 심한 업종부터 파견허용 업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 또한 정부가 인력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보상과 연계된 숙련의 미스매치가 원인임을 외면한 채 일자리 정보 부족이 인력난의 원인인 듯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정부 대책에서 파견노동 양성화에 수반돼야 할 파견사업에 대한 규제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수 파견업체 인증제 도입이나 표준계약서 도입이 고작이다. 파견업체가 파견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하고, 파견 대기기간 동안에도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등 파견노동자의 고용 및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조차 언급되지 않고 있다.

정부 대책의 간접고용 활성화 의도는 파견 확대방안 외에 사내하청 활용 양성화 방안에서도 드러난다. 파견과 도급의 판단기준을 명확화한다는 미명하에 원청기업이 불법파견 징표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해 회피해 온 '배려' 사항들을 징표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불법파견 판결들에서 징표로 여겨지던 것들을 제외함으로써 사실상 사내하청을 합법화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한 셈이다. 그 밖에 사내하청 안전보건과 관련한 몇몇 대책들도 ‘처벌규정 강화를 통한 원청책임 강화’라는 핵심에서 비껴 나 있다.

결국 정부 대책은 그간 묵인해 오던 편법적이고 불법적인 파견과 사내하청 관행을 인정해 주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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