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구조개혁이 뜨거운 이슈다. 그런데 이번 노동시장 구조개혁 논의에는 많은 불완전한 요소들이 숨겨져 있어 노동현장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먼저 핵심적인 문제 한 가지를 살펴보자.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전체 프레임을 정규직 과보호 정도를 완화하고(낮추고)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해(높여서)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가져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정말 균형이 맞춰질까. 현재까지의 양상을 보면 언론이나 일반 국민, 심지어 국회조차 모두 이 프레임에 갇혀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니 그간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해 언론에 띄운 풍선은 기재부의 단독 범행(?)이다” 혹은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 등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는 고용노동부의 뻔한 거짓 속삭임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으리라고 본다.

필자가 볼 때 정부가 말하는 정규직 과보호 완화의 핵심은 저성과자에 대한 계약해지를 위한 가이드라인 설정,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 등을 포함한 '일반해고'의 유연화고  비정규직 보호제도의 핵심은 기간 연장이다.

필자의 생각이 맞다면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초점을 잘못 잡은 것이다.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대로 안전망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낮추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정규직 보호요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과는 다른 차원의 사회안전망(예를 들어 최저임금의 생활임금화)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화되지 않은 90%, 특히 중소기업 재직자는 완화된 해고의 ‘정당성’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게 된다. 과연 정규직이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는 나락으로 기꺼이 떨어져 줄까.

‘높이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2년을 힘겹게 버텨 온 비정규 노동자는 그 낙인으로 인해 혹시 시장 진입과 동시에 저성과자가 돼 있는 것은 아닐까.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비정규직으로 평생 살든지 정규직 시장에서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운명이다. 정부가 만든 프레임의 허구성은 바로 이런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노동개혁은 정규직에 대한 안전망 부담, 비정규직 고용에 따른 부담을 경영계와 정부가 지고, 그런 전제조건에 노동계가 동의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프레임을 다시 짜야 한다는 얘기다.

혹시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은 없는가. 우리는 분명 근로시간단축과 통상임금 범위, 정리해고 요건 강화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 문제조차 깔끔하게 해결된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일반해고 요건이니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라는 말이 나왔지 하는 의문 말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까이는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구성됐던 노사정 사회적 논의 촉진을 위한 소위원회(노사정소위)에서 노동계의 노동기본권 의제 포함 요구에 대응해 경영계가 제출한 추가 의제였다. 당시에도 워낙 파격적(?)인 이슈라 애써 무시하려 했고 그래서 잊고 있었던 것을 정부가 이번 협상의 주요 카드로 들고나온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금의 노사정 협의 상황이 2009년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정부가 행정부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면서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풀어내는 프로세스는 완전 판박이다. 예컨대 △미리 언론을 통해 풍선을 띄워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다는 점 △경제발전을 위해 경영계의 요구를 수렴하는 형식으로 정부의 경제팀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 간다는 점 △과거 비정규직 100만 해고대란설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는 근거나 실증 없이 일단 지르고 본다는 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협상에서 제시했던 블랙리스트·교섭창구 단일화 지침처럼 노사관계 문제만 생기면 늘 들이대던 ‘법과 원칙’이 중요한 국면에서 실종된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노사정 협상은 그때와 다르다. 노조법 개정 당시 정부와 여당이 노조법을 개정하지 않겠다는 ‘배 째라 식’ 카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노조법에 이미 복수노조 시행·전임자급여 지급금지 규정이 명문화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더군다나 현재 진행되는 대화 의제는 단일 이슈가 아니라 ‘주요한 근로조건’인 해고·근로시간·임금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논의 의제가 이 정도 핵폭탄급이라면 단순히 노사정 간에 이뤄지는 협상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의‘사회적 대화’로 접근하지 않으면 정부가 말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성공하기 힘들다. 진정성 있는 대화가 되고 성공적 개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며칠 전 “청와대가 힘을 실어 주는 데다 국회 다수당이 여당이고 국민 여론도 나쁘지 않아 노동부가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노동부는 여당이 정부의 거수기에 지나지 않고, 유행한 드라마 이름을 법에만 붙이면 국민 여론이 좋아진다고 보는 것 같다. 제발 정신 좀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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