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 겸
노동대학원장

2014년은 노동운동의 약세가 지속된 가운데 노사갈등이 제도권 밖에서 내연하고 노동시장 양극화의 파장이 문화계 등 여러 측면에서 부각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노조 조직률이 10% 정도에 머무는 상황에서 노사갈등은 제도권이 아니라 제도권 밖에서 철탑농성 등의 형태를 띠며 파상적으로 벌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노조 조직률은 2010년 9.8%를 기록했고 2011년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된 이후 증가세를 보여 2011년 말 10.1%, 2012년 말 10.3%로 상승했으나 2013년 말에는 10.3%로 전년과 동일해 복수노조 허용의 노조 조직률에 대한 영향이 0.5%포인트 정도임을 보여 줬다. 제도권의 노사갈등 지표인 파업건수도 전년에 이어 100건 미만을 기록해 표면적으로는 노사관계의 안정을 보이는 듯했지만 많은 분규들이 제도권 밖에서 벌어지거나 내연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노사관계가 안정됐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운 한 해였다.

2013년 말 철도파업이 노정갈등 양상을 띠며 진행돼 온 나라가 떠들썩했고, 이에 대한 여진으로 2014년에는 노사정 대화가 중단됐다가 2014년 하반기에 재개됐다. 연말에는 감시·단속 근로자인 아파트 경비원의 분신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반면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에서는 2013년 말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 파장으로 상여금의 통상임금 여부를 둘러싼 노사 간 협상이 진행됐다. 2014년 연말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은 노사관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을 갑과 을의 관계로 해석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2014년은 사회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고용과 노동이슈가 일반 국민 감성의 중심에 자리 잡고, 드라마·만화·영화 등으로 활발하게 표현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만화로는 청년 비정규직의 애환과 고민을 다룬 <미생>이 많은 이목을 끌며 드라마로 방영돼 ‘미생 신드롬’을 낳았다. 사회적 약자를 둘러싼 고용의 부조리와 노조활동의 어려움을 다룬 웹툰 <송곳>도 시선을 끌었다. 또한 마트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들의 해고와 노조결성·투쟁을 차례로 보여 준 사실적인 영화 <카트>가 관객을 모은 한 해이기도 하다. 노동과 고용이슈가 문화코드의 하나로 진입한 것은 지난 수십년간 보지 못하던 전례 없는 현상으로서 양극화의 파장으로 다수 국민이 비정규직이나 '을'의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결과로 보인다.

2015년은 박근혜 정부가 중반기인 3년차에 접어드는 해다. 모처럼 선거가 없는 해인 만큼 정부와 여당은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 확대와 연금개혁에 나설 전망이다. 정부는 정규직에 대한 유연성 확보와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 강화라는 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례 없이 다양한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관련해 비정규직 보호망을 강화하고 정규직에 대한 유연성 확대를 목표로 한 정부 대책이 지난해 말 발표됐다. 고용노동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은 35세 이상 기간제 근로자가 원할 경우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장 4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3개월(현행 1년) 이상만 근무해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으며 고용기간을 채웠는데도 정규직 전환이 안 되면 회사가 별도로 10%의 이직수당을 주도록 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성과가 낮은 노동자의 해고 가이드라인을 신설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협상을 앞두고 정부가 자신의 속내를 미리 발표한 셈이다. 정부의 안에 대해 노와 사가 모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결국 2015년 전반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화두로 노사정위가 합의를 위해 많은 파열음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원 등 특수직역에 대한 연금개혁은 2015년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이며 그동안 공무원 노사 간에 내연해 온 갈등을 크게 증폭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공무원 임금이 상대적으로 박봉인 점을 감안한다면 연금의 일방적인 축소는 극한적인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연금재정의 고갈과 고령화 추세를 감안해 결국은 정부와 공무원단체가 연금의 합리적인 축소, 임금피크제와 정년연장 도입으로 타결될 전망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일반 국민의 노동과 고용이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러한 관심의 확대가 노조운동에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조조직률은 여전히 2% 내외로 15%를 상회하는 정규직 노조조직률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당분간 획기적인 전환점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비정규직 이슈가 한국 노사관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현상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비정규직이 조직적·집단적으로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미칠 계기가 없는 한 10%대의 노조조직률과 100건 미만의 파업건수는 수년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민주노총이 2014년 말 쌍용자동차 출신을 첫 직선제 위원장으로 배출했고, 신임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즉각적인 총파업 등 초강경 투쟁노선을 발표했다. 하지만 오랜 양극화 추세 속에서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투쟁보다는 고용안정과 임금 등 눈앞의 생계문제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상황에서 새해에도 노동계의 투쟁동력이 크게 증폭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대부분의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는 비정규직의 포함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이 노조의 보호를 가장 절실히 원하면서도 고용이 불안해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지속되는 한 노동운동 침체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비정규직 문제를 부각시킬 이슈는 감시·단속 근로자인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최저임금 100% 적용이다. 최저임금 적용으로 임금이 급등함에 따라 관리비를 절감하려는 아파트 주민들이 무인경비 등 대체적인 경비시스템을 도입할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다. 전국적으로 20만명으로 추산되는 아파트 경비원 중 수만명이 일시에 해고될 우려가 있다. 이로 인해 고령의 비정규 노동자들의 애환과 사회 양극화의 그늘이 더욱 부각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통상임금과 근로시간단축, 불법파업 판정 등 노동이슈에서 법원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법정근로시간도 노사정이 모두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이슈 중 하나다. 근로시간단축의 쟁점 중 하나는 근로기준법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과 법원의 판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휴일근로 16시간을 포함한다면 주당 최대 68시간까지 가능한 것으로 해석한 반면, 법원은 노동부의 해석과 의견을 달리해 하급심에서는 연장근로한도에 휴일근로시간이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휴일근무까지 포함해 주 52시간이 최대 한도라고 판결했다.

2014년 상반기 근로시간단축을 둘러싼 대법원의 판결이 임박하면서 정치권에서 근로시간단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정치적인 해결책은 사실상 소진됐다고 볼 수 있다. 근로시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올해 상반기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 근로시간단축 판결은 2013년 12월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못지않은 파장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노사 간의 이슈는 법원보다는 당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노와 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 현장에서의 수용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때 가장 이상적이다. 2015년에는 노사정 모두 동원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고,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현안을 노사가 자율적으로 풀어 나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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