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정부가 지난달 29일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 허용업종과 대상을 확대해 전 국민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일까요. 저는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으로 조성된 신공안정국을 이용해 노동계를 타깃으로 삼으려는 겁니다. 경기침체와 사회양극화의 책임을 정규직 탓으로 돌리면서 정부의 실정을 숨기려고 하는 거죠. 한마디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발상입니다.”

한상균(53·사진) 민주노총 위원장의 말이다. 우리나라 노동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치러진 민주노총 임원직선제를 통해 당선된 한 위원장은 <매일노동뉴스>가 선정한 ‘2015년 주목할 인물’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노사정 관계자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한상균 개인이 아닌 민주노총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며 “민주노총은 올해 상반기 ‘노동자 살리기 총파업’으로 자본과 정권의 폭주에 제동을 걸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한 위원장을 만났다.

- 사상 첫 민주노총 직선위원장에 당선됐다.

“조합원들이 직접 투쟁하는 지도부를 선택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당선증을 받는 순간에도 기쁨보다는 중압감이 컸다. 투쟁과 변화에 대한 조합원들의 갈망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노동시장을 뒤흔들 만한 의제가 다수 포함됐는데.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희망적인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할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정부의 선전포고다. 노동계에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뒤로 쏙 빠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를 이간질함으로써 노동자의 살을 깎으려는 것이다.”

- 정부 비정규직 대책 중 특히 심각한 대목이 있다면.

“몇몇 의제를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메가톤급 의제가 망라돼 있다.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 확대, 일반해고요건 완화, 직무·성과급제로 임금체계 개편, 근로시간 유연화 확대 등 노동자들의 삶을 벼랑 끝에 세우는 내용이 모조리 포함됐다. 정부가 민주노총을, 국민을 투쟁으로 내몰고 있다.”

"노동자 다 죽이고, 재벌에게는 면죄부"

- 정부는 ‘장그래 구제대책’이라고 주장하는데.

“장그래를 죽이는 대책이다. 장그래가 정사원 시켜 달랬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싶다고 했나. 기간제 사용기간이 4년으로 연장되면, 그 뒤에는 보다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다. 그저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파견 업종과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내용도 기만적이다. 법원이 자동차업체의 사내하도급 사용관행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결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정반대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법원 판결로 불법파견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사회적 압박을 받는 재벌 대기업에게 정부가 나서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일반해고요건을 완화하는 내용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의 정규직 고용보호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못 미친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2013년 한국의 정규직 고용보호지수는 2.17로 OECD 회원국 평균치인 2.29를 0.12포인트 밑돌았다. 현행 법·제도로도 해고가 충분히 손쉽게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취업규칙 변경 기준과 절차를 바꿔 기업에게 일반해고의 자유를 주려 한다. 해고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제거하려는 의도다. 정부 대책에서 섬뜩함이 느껴진다. 정부의 뜻대로 법·제도가 변경되면 살아남을 수 있는 노동자가 누구인가. 순망치한(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이라고, 10%에 불과한 노조조직률도 점차 낮아질 것이다.”

"산별연맹 돌려막기식 파업 안 한다"

- ‘즉각적인 총파업’을 공약했다. 공약을 언제쯤 이행할 생각인가.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4월 임시국회에서 입법전쟁으로 가시화될 것이다. 동시에 정부가 각종 가이드라인 제정과 시행령 개정을 시도하며 비정규직 대책을 관철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무원연금법 개악이나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투쟁도 상반기에 집중된다. 이미 총파업은 시작됐다. 2월12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구체적인 투쟁계획을 확정하겠다.”

- 민주노총이 위력적인 총파업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구체적인 구상을 밝힌다면.

“그동안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어느 산별연맹이 쟁의수순에 따라 파업에 돌입할 준비가 됐는지를 확인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민주노총의 조직체계를 ‘노동자 살리기 총파업 투쟁본부’로 전환하고, 정부 대책이 제조업·서비스·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입체적으로 점검할 것이다. 정부의 도발이 시작되면 즉각적으로 총파업에 돌입할 수 있도록 조직태세를 갖춰 나갈 계획이다. 국민과 함께하는 ‘장그래 살리기 국민운동본부’출범도 계획하고 있다.”

- 장그래 살리기 국민운동본부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매우 어려운 용어로 서술돼 있다. 일반 국민이 이번 대책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따라서 정부 대책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최대한 쉬운 언어로 국민에게 알려 내는 작업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국민이 나서 주셔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모든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

- 노동계 공동투쟁 가능성도 엿보이는데. 양대 노총 공조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정부 대책과 관련해 노동계의 한 축인 한국노총이 느끼는 분노 역시 크다고 생각한다. 양대 노총이 노동자 살리기 공동투쟁의 전선에 나서야 한다. 의례적인 만남은 무의미하다.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데, 노동계에게 힘이 있어야 협상력도 커진다. 정부의 노동자 죽이기 대책에 맞서, 노동계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국민에 대한 도리로서 양대 노총이 힘을 모아야 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다"

- 첫 직선위원장으로서 민주노총 조직개편에 대한 고민이 클 것 같다. 상임집행위원회 정무직화를 공약했는데.

“2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정무직제를 포함한 상집 개편방안을 다룰 계획이다. 투쟁을 잘하는 상집을 만들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현재 인원을 내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정무직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다. 스스로가 활동가임을 망각하는 순간 조합원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조직개편이 사무총국 동지들이 머리띠를 동여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매일노동뉴스>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 부탁드린다.

"지난 대선에서 어떤 후보가 저녁이 있는 삶을 얘기했는데, 지금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저녁이 오기 전에 다 죽게 생겼다는 것이다. 모두 함께 손을 잡고 살아가야 할 때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다. 2천만 노동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제시하는 민주노총을 만들어 가겠다. 독자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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