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2014년 한 해 동안 우리 사회를 장식한 화두는 ‘안전(安全)’이었다. 6·4 지방선거에서도 후보들의 첫 번째 공약은 안전이었다. 유례가 없던 일이다. 급기야 1만 조직의 ‘국민안전처’가 탄생하기도 했다. 정치권이 내놓은 그 많은 안전공약에 의해 지금 우리 사회는 점점 안전한 사회가 돼 가고 있는 것일까.

지난 1년간 발생한 각종 참사를 보면 그 결과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올해 2월 깊은 산속에서 무려 11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주 마우나리초트 붕괴 참사에 이어 4월16일에는 바다에서 304명이 희생되고 실종되는 사상 초유의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그리고 8명이 화염으로 죽어 간 5월 경기도 고양터미널 공사 화재 참사, 22명이 화염으로 죽어 간 장성요양원 화재 참사,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10월 경기도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 참사…. 2014년 억울한 국민의 장례 행렬이 계속됐다.

올해는 성수대교 붕괴 참사가 발생한 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 연이어 터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이후 ‘감리제도 도입’ 등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됐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 조사에서 “설계 및 시공부실, 인허가 비리”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엮어 놓은 굴비처럼 터져나왔다. 설문조사에서도 “안전사고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국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한민국이 극도의 위험사회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도처의 산업현장에 도사리고 있는 산업재해와 잦은 원전사고, 교체주기를 이미 초과한 고속철도, 수십 년 노후한 국가산업단지 시설과 위험의 외주화, 썩고 있는 4대강 재앙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위험요소가 호시탐탐 국민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몇 년 전 필리핀에서 한국 기업이 건설 중인 수빅만 대형조선소 건설노동자들을 만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물었다. “혹시 한국말 하시는 분?” 한 노동자가 손을 들고 말한다. “빨리빨리, 새끼야!” 이 말은 한국 노무관리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라고 한다.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이쯤 되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기준으로 매년 산업재해·교통재해·화재를 비롯한 각종 재해로 무려 32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이 중 10%만 줄여 국민복지에 투자한다면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되지 않겠는가. 정부는 그 많던 복지공약을 내팽개치고 담뱃값 인상을 통한 예산확충 꼼수를 부리고 있다. 오죽하면 724명의 대학교수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했겠는가.

정부가 또다시 노동시장 유연화를 새로운 경기부양책으로 들고나왔다. 정규직에 대한 특혜를 줄이겠다는 의미다. 비정규직이 더 많이 양산되면 될수록 산업재해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자본의 무한한 탐욕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에게 힘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노동자대표의 참여를 보장하고, 명예산업안전감독관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구미 불산가스 유출사건으로 알 수 있듯이 사업장 안전 문제가 시민안전 문제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9만1천824명이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10명 중 8명은 비정규직이거나, 하청노동자들이었다. 위험의 외주화와 노동시장 유연화가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은 위험사회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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