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얼어붙은 날. 해고자들은 공장 굴뚝에 올랐다. 할 일 보따리를 펼칠 생각도 않고 토요일 아침 나는 방바닥에 달라붙어 스마트폰에서 읽었다. 이 추운 날 어쩌자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쌍용차 평택공장 안에 있는 70미터 높이 굴뚝에 올랐다. 지난 13일 새벽 4시15분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공장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작업장도, 광장과 거리도 아니다. 송전탑·광고판·포크레인, 그리고 공장 굴뚝도 노동자가 투쟁하는 장소다. 일하는 작업장에서는 쫓겨났으니, 광장과 거리에서는 외쳐 봐야 듣지를 않으니, 투쟁하는 노동자는 올라갔다. 그 이틀 뒤인 15일 사용자 쌍용차는 “공장에 불법으로 무단 침입해 벌이고 있는 비상식적이고 생명을 담보로 한 극단적인 불법행위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입장 자료를 냈다. 공장 굴뚝의 고공농성을 불법·비상식·극단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동안 해고 노동자들이 외부 노동단체들과 연계해 쌍용차 불매운동, 대규모 집회·시위 등을 통해 쌍용차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방해하는 수많은 해사 행위(회사를 해롭게 하는 행위)를 한 지 오래됐으며, 또다시 이번과 같은 극단적이며 비상식적인 불법행위를 자행한 데 대해 이제는 우려를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렇게 해고자들의 굴뚝 농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 자료를 통해 사용자는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시했다. 사용자 쌍용차는 "극단적인 불법행위는 현재 회사의 종합적인 경영상황을 고려할 때 5천여 전 임직원과 가족, 그리고 협력업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이기에 이에 대해 원칙적이며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며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고 단호히 대처하기 위해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므로, 정부 역시 불법행위를 방치하지 말고 확실한 법 집행을 통해 이와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고공농성에 대한 국가의 확실한 법 집행을 당부했다. 엄동설한의 추위가 아니라 이런 사용자의 단호한 입장 발표에 공장 굴뚝의 해고자들이 얼어붙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사용자의 정부에 대한 확실한 법 집행 당부의 말에 조만간 공권력이 투입돼 굴뚝에서 끌려 내려오지 않을까 우려해야 할 지경이다. 이런 사용자에 맞서 도대체 어떤 결의로 투쟁하겠다고 쌍용차 해고자들은 공장 굴뚝에 오른 것인지 민주노총 게시판에 연결된 이창근의 트위터를 찾아들어가 봤다. “쌍용차 공장 안 동료들에게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옛 동료들에게 손잡아 달라는 마음으로 굴뚝에 올라섰습니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쳐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해고자들 손잡아 달라고 말입니다.”, “쌍용차 해고자인 김정욱과 이창근은 우리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70미터 굴뚝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약하고 나약한 존재이고 무서움 또한 많고 여린 인간인지를 알리기 위해 올랐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투쟁의 결의가 아니었다. 공장 굴뚝을 요새로 삼아 해고투쟁을 승리하겠다는 결의는 찾을 수 없었다.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며 쌍용차 해고자들의 복직 희망을 짓밟아 버린 대법원의 판결로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쳤음”에 틀림없었다. 이 나라에서 국가 권력은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그들의 청구를 짓밟았지만, 이 나라에서 자본은 사업장에서 그들을 추방하고서 복직을 호소하려는 행위마저 극단적이며 비상식적인 불법행위라며 분노하고 있지만 그런 권력과 자본의 행위에 대한 해고자들의 외침은 “도와주십시오”였다.



2. 노동자. 그는 사용자에 복종해서 일하는 자라고 이 세상의 법은 정의했다. 법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하고(근로기준법 제2조제1항제1호), 법원은 사용자에 사용종속돼서 사용자를 위해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판결하고 있다(대법원 1984.12.26 선고 84도2534 판결 등). 해고자, 사용자에 의해 사업장에서 추방된 노동자다. 사용자가 노동자에 대해서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겠다고 일방적으로 통지함으로서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추방하는 행위다(대법원 1998.1.20 선고 96다56313 판결 등). 이 세상, 이 자본의 세상은 자본의 인격을 사용자라고 정의했고(근기법 제2조제1항제2호), 그 사용자를 주인으로 섬기는 계약을 근로계약이라고 했다. 근기법은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이라고 근로계약을 정의했다(근기법 제2조제1항제4호). 이렇게 사용종속관계에서 사용자에게 복종할 자는 ‘근로자’라고 규정하고, 사람은 근로계약을 통해서 사용자에 복종하는 근로자로 된다고 규정했다. 국가 권력의 행사를 위한 매뉴얼인 법으로 사용자를 노동자의 주인으로 섬기는 계약을 이 세상에서 준수해야 할 질서로 세워 놓았다.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자유가 노동자에게 보장돼 있다고, 근로계약은 스스로 정당하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계약이 정당하다는 것일까. 주인과 노예의 질서를 만드는 계약인데도 정당한 것이냐는 의문도 없이 이 세상에서 권력은 법을 말한다. 법은 추호의 의심도 없고 법을 집행하는 권력은 단호하다. 감히 노동자는 어쩌지 못하는 벽이다. 그 벽 앞에서 낙담하고 절망할 뿐이다. 그 벽 앞에서는 “도와주십시오”라고 아무리 호소해 봐야 소용없다. 법대로 권력은 집행할 뿐이다.

이 세상에서 노동자는 사용자를 주인으로 섬겨야 하는 자다. 물론 사용자를 주인으로 섬겨야 하는 근로계약관계에서도 노동자의 권리는 있다. 근로계약에서 정한 노동자의 권리는 주인인 사용자의 의무다. 계약상의 권리의무는 국가 권력이 보장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이 있고, 사용자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법 집행이 있다. 근로계약에서 해고를 제한하지 않았더라도 사용자는 노동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지 못한다(근기법 제23조). 정리해고도 마찬가지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해고회피노력을 다해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해고의 기준을 정해서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고 근로자대표에 통보하고 협의해야 한다(근기법 제24조). 이렇게 노동자를 위한 법이 있다. 이 법을 구체적인 사건에 집행하는 법원 등 국가 권력이 있다. 그러나 법이 보장한 노동자권리만 보장할 뿐이다. 그 법대로 노동자의 권리는 보장된다.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고소하고 진정하고 구제신청하고 소송해 봐야 노동부·노동위원회·법원이 하는 대답은 법대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이 나라는 법대로 정리해고됐다고 대답했다. 대법원은 2009년 쌍용차의 정리해고는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정리해고를 제한하는 대한민국의 법은 쌍용차 정리해고자들에게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3. 계약도 법도 보호해 주지 않았다. 근로계약은 사용자에 의해 해지됐고, 근기법은 이를 승인했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를 두고서 자본과 권력은 정당하다고 외면했다. 이렇게 노동자는 작업장에서 쫓겨났다. 노동자는 이제 해고자가 돼서 대한민국의 광장과 거리를 서성이며 정리해고는 부당하다고 무효라고 주장했다.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작업장에 돌아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니, 근로계약을 체결해 놓고서 사용자의 형편이 어렵다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세상은 정당한 것일까. 사용자가 정리해고하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할 지경도 아닌데도, 지금보다 사용자의 형편이 나아질 수 있다고 노동자를 해고한다는 것이 정당하다고 이 세상의 법은 말하고 있다.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한 대법원의 판결은 쌍용차 정리해고자들에게 법의 이름으로 이런 말을 했다. 모두가 살 수 없기에 소수가 죽을 수밖에 없다며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지도 않았다. 노동자가 복종할 사용자가 살아야 하기에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도 하지 않았다. 노동자 모두를 살리더라도 사용자가 살 수 있는데도 정리해고가 사용자의 형편을 나아지게 할 것이라고 정당하다고 법원은 정리해고를 판결하고 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법과 판결은 정당할 수가 없다. 사용자의 경영사정을 위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제도가 정당할 수가 없다. 정당할 수가 없는 정리해고를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는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해고자들은 공장 굴뚝에 올라갔다. 그리고 말하고 있다. 자신을 해고한 사용자 자본에게, 그 해고를 정당하다고 한 권력에게 말하고 있지 않다. 해고자를 외면하고 금속노조를 버렸던 “쌍용차 공장 안 동료들에게 호소”하겠다고, “옛 동료들에게 손잡아달라는 마음으로 굴뚝에 올랐다”고, 5년 넘게 해고투쟁을 해 온 자존심도 다 버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약하고 나약한 존재이고 무서움 또한 많고 여린 인간인지를 알리기 위해 올랐다”고 말하고 있다. 보다 더 정리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법을 완화해야 한다고 떠들어 대는, 이 노동자권리가 얼어붙어 버린 세상에서 노동자들이 하고 있는 말은 이제 한 마디뿐이다. “도와주십시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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