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은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무렵입니다. 조상들은 집 안팎을 깨끗이 치우고, 차례를 위한 음식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제사를 치르고 난 후 제수음식은 가족뿐 아니라 이웃과 나눠 먹었죠. 세밑에 조상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세밑 따뜻한 정은 정치권과 재벌만 나누는 듯 보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 수감 중인 재벌총수들의 가석방을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재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하니 정부와 여당이 화답한 것입니다. 애초 대통령 사면을 요구했다가 여론의 반발에 부딪치자 가석방이라는 꼼수가 나온 셈이죠. 경제부총리인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이 앞장서고, 여당인 새누리당이 맞장구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가석방은 법무부 소관”이라며 사실상 묵인하겠다는 태세입니다.

정말 얼토당토않은 주장들입니다. 천하를 다 가진 듯 횡포를 부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국민의 공분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재벌총수에게 이런 특혜를 주다니요. 어이가 없는 발상입니다. 가석방 대상에 오른 최태원 SK그룹 회장·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은 형기의 3분의 1 정도를 채운 상태입니다. 형법 72조에 따르면 가석방은 형기의 3분의 1이 경과된 경우 법무부 장관에 의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형기의 3분의 2를 채울 경우 가석방이 가능할 정도로 매우 제한적입니다. 이런데도 재벌총수만 역차별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구속노동자후원회에 따르면 이달 24일 현재 차디찬 감옥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노동자·양심수만 53명에 달합니다. 건설노조·플랜트노조·엘지유플러스노조 등 비정규·이주노동자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통일단체 ·통합진보당 등 국가보안법 관련사건 양심수,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 참가자도 포함됐습니다. 헌법재판소 해산 결정에 따라 보수단체들은 통합진보당 지도부와 당원에 대한 ‘종북 낙인찍기’에 한창입니다. 때문에 구속노동자후원회는 "구속자가 속출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노동자·양심수는 형기를 다 채워야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가석방은 그들에겐 그림의 떡입니다. 역차별은 재벌총수가 아니라 노동자·양심수에게 집중됐습니다. 법은 그들에게만 엄격합니다. 말 그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였습니다. 구속 노동자·양심수에겐 털끝만큼의 관용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재벌총수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정부·여당의 행태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누구나 세밑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올해는 애동지라 ‘팥떡’을 먹는다고 하지만 삼가는 듯 보입니다. 그만큼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이겠죠. 되레 당·정과 재벌총수만 팥떡을 돌리는 모양새입니다. 반면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어려운 이웃들은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감옥보다 더 춥고 고립된 고공농성장에서 관심과 지원을 바라는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쌍용차·스타케미칼·씨앤앰 농성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함께 살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자신의 전부를 걸고 싸우는 노동자, 어려운 이웃과 함께 세밑을 보내는 건 어떨까요.

노사정 독자여러분! 올해도 수고하셨습니다. 매일노동뉴스는 청양의 해에 힘찬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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