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 축구평론가

4년마다 열리는 FIFA 월드컵, 그런데 'FIFI 와일드컵'도 있다. 지난 2006년 독일에서 한 번 열렸는데, 그 의미가 각별하다. 우선 FIFI, 이 영문 약자부터 풀어 보자. ‘International Federation of Independent Football nations’의 머리글자다. 영어로 하면 IFIF지만 불어식으로는 FIFI가 된다. 우리 말로 풀면 ‘독립을 추구하는 국가들의 국제축구연맹’ 정도가 된다. 다분히 FIFA(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국제축구연맹)를 의식한 단어다.

2006년 월드컵은 독일에서 열렸다. 그때 FIFA가 주관하는 이 월드컵에 ‘저항’해 ‘FIFI 와일드컵’이 열린 것이다. 역사적·정치적 이유로 FIFA가 인정하지 않고 있는 티벳·그린란드·지브롤터·잔지바르·북(北)키프로스 등 5개 팀과 독일의 프로팀 FC 장크트 파울리까지 모두 6개팀이 친선대회를 열었다.

잔디가 자라지 않아 모래밭에서 공을 차는 덴마크령 그린란드, 인구 3만명에 단 한 개의 축구장을 갖고 있는 영국령 지브롤터, 탄자니아령 잔지바르, 터키령 북키프로스, 그리고 중국의 강력한 통제 아래 놓인 티벳. 이렇게 보면 FIFI 와일드컵이 단순한 친선대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FC 장크트 파울리. 2014년 시즌에 2부 리그 하위까지 올라왔지만 당시에는 3부 리그에 머물던 팀이다. 그러나 독일, 나아가 유럽 축구사에 있어 FC 장크트 파울리는 독보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FC 장크트 파울리는 독일의 북부, 항구 도시 함부르크의 한복판을 연고로 한다. 이 유서 깊은 항구 도시의 한복판에 장크트 파울리라는 지역이 있다.

항구 도시? 이렇게만 말하면 부족하다. 한번 상상해 보자. 인천도 좋고, 부산도 좋고, 마산도 좋다. 거대한 항구 도시. 달리 말하자면 낮에는 항만 노동으로 움직이는 도시이자 밤에는 유흥가로 환하게 불이 밝혀지는 곳이 항구다. 노동과 유흥! 인류의 역사는 이 두 요소가 ‘자유’를 향한 집합적 열정의 낮과 밤이었음을 말해 준다. 1241년 인근의 항구 도시 뤼베크와 함께 체결한 방위조약을 바탕으로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거점이 된 함부르크는 일찌감치 자본주의를 향해 ‘발전’했다. 그렇다는 것은 이 도시가 중세의 신분적 억압으로부터 자유(자본의 자유를 포함한 다양한 의미의 사회적 자유)를 추구했음을 말해 준다. 해운·상업·조선·기계·전기·섬유·정유 등 독일 산업혁명의 기초가 된 도시가 함부르크다.

이런 도시에는 ‘어쩔 수 없이’ 유흥가가 형성된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선원과 노동자·사채업자·지식인·부랑아들이 유흥가로 몰려든다. 예술가들도 유흥가에 스며든다. 19세기 초에는 장차 브람스라는 이름으로 클래식 역사에 한 정상을 차지하게 되는 소년이 유흥주점에서 피아노를 쳤고, 20세기 중엽에는 장차 비틀스라는 이름으로 대중음악 역사에 가장 높은 봉우리를 차지하게 되는 청년들이 클럽 무대에 올랐다.

장크트 파울리라는 지역은 그러므로 단순히 ‘유흥가’라고만 말해서는 곤란한 곳이다. 유럽 북부에서 최초이자 최고 수준으로 자본과 산업이 발전한 함부르크이니만치 노동운동 또한 치열하게 전개된 곳이다. 19세기 중엽 벨기에의 브뤼셀과 함께 북유럽 노동운동의 거점이 된 곳이며 마르크스의 <자본>이 출간된 곳이 함부르크다. 마르크스는 1867년 4월 <자본>의 출판 원고를 최종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함부르크에 한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이렇게 노동의 자유와 영혼의 자유를 추구해 온 함부르크의 장크트 파울리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이라면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소설가 귄터 그라스는 FIFA의 비밀 관료주의와 상업주의를 매섭게 비판해 왔는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팀이 바로 FC 장크트 파울리다.

8부 리그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실력을 쌓으면서 2부 리그까지 도약한 FC 장크트 파울리는 진보적 가치를 공공연히 내걸고 경기를 한다. 반인종주의와 반제국주의, 반나치즘은 그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꾸준히 내건 슬로건이었다. 유흥가를 거점으로 하지만 시청과 가깝고 함부르크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항구 관광지 하펜 시티와 근접해 있으며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첨단 미술가·패션 디자이너·음악가·작가 등이 곳곳에 아지트를 형성하고 있다. 이 다양한 군상들이 또한 FC 장크트 파울리의 든든한 문화적 자원이 된다.

FC 장크트 파울리의 선수들과 서포터스들은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한다. 그런데 하루 자원봉사를 하거나 기금 마련 행사에 잠깐 얼굴을 내미는 식의 참여가 아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위한 시위에 언제나 참여한다. 실질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1996년 이 지역의 대학 총학생회는 "환경, 여성, FC 장크트 파울리를 옹호하며 우파와 유조스(사민당 청년단체), 그리고 함부르크 SV(함부르크 연고의 다른 명문 구단)을 반대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선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00여년의 구단 역사 동안 강팀으로 군림한 적이 없지만 어찌 보면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이는 팀이다. 80년대까지는 1부 리그에 자주 머물렀지만 90년대부터 점점 쇠락했다. 그럼에도 이 팀은 연전연승보다 사회의 변화와 세계의 진정한 평화에 더 관심이 많다.

현실적으로 말한다면 이 구단이 추구하는 구체적인 목표는 인종주의와 파시즘을 몰아내는 것이다. 히틀러 나치즘 시절에 구단이 큰 탄압을 받은 것도 원인이지만 그보다는 기본적으로 이 팀이 거점으로 삼는 장크트 파울리라는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가 인종주의를 혐오하고 파시즘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이 팀의 열혈 서포터스들은 자기가 성원하는 팀의 승리뿐만 아니라 이 강렬한 가치,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위해 헌신한다. 팀이 강등되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벌여 팀의 재정을 감당한다. 이 팀은 단순한 프로 팀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진보적 가치를 실천하는 ‘운동’ 팀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 팀의 아이콘은 체 게바라다. 게바라의 사진이 각종 깃발에 새겨져 있다. 국내의 어느 구단 서포터스들도 체 게바라의 초상을 걸개그림으로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 이미지를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에 반해 FC 장크트 파울리에서는 구체적인 실천의 상징이다. 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열혈 팬들은 록그룹 AC/DC의 ‘Hell Bell’을 외쳐 부르며 체 게바라의 초상을 뒤흔든다. 자본이 든든한 함부르크 SV와는 라이벌 관계다. 신나치주의자들이 대거 서포터스로 참여하고 있는 한자 로스톡과는 원수 관계다. 응원 중에는 성폭력적인 욕설이나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당연히 금지된다. 축구장 바깥이 그렇지 못하다면 축구장 안에서나마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자는 것이 이 팀이 추구하는 가치다. 인종차별에 반대하거나 FIFA의 거대한 권력놀음에 반대하는 친선대회도 자주 연다.

<모두를 위한 예술?>의 저자 우베 레비츠키는 권력과 자본이 지배하는 도시 공간에서 시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로 인해 민주적인 도시의 가능성을 보여 준 사례로 함부르크의 장크트 파울리를 꼽는다. 이 지역 시민들은 권력과 자본이 함부로 개발하고 조성하고 이익을 챙기는 도시 개발에 맞서 '파크 픽션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그 결과 2003년에 공원이 탄생했다. 조사·토론·설계 등을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진행했다. 단순히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한 공간 확보가 아니라 권력과 자본이 어떻게 도시 공간을 장악하는지를 검토하고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시민과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레비츠키는 이 지역의 프로젝트를 “진정한 공공미술의 가치는 약자나 저항자들을 위한 사회적·물리적 공간을 창출해 내는 것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장크트 파울리는 바로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도시다. FC 장크트 파울리 팀은 그런 가치로 공을 차고 있다. 서포터스들은 그런 가치에 역행하는 자본과 인종주의와 나치즘에 맞선다. 세계 축구사에 이러한 선수와 팬들을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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