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연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법률원 대전충청지부)

12월에 들어서자마자 폭설이 내렸다. 우리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 아저씨들은 가을엔 낙엽을 쓸어내느라, 겨울엔 눈을 치우시느라 더 힘이 든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의 무시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분신해 숨진 사건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그런데 해당 아파트의 입주민들은 사람의 죽음 앞에 그간 자신들의 태도를 되돌아보기는커녕, 아파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경비노동자 전원을 해고했다. 우여곡절 끝에 고용이 승계되기는 했지만 경비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가 목숨을 건 호소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연말이 되자 이번에는 전국의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해고 위기로 불안감에 떨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2015년 1월1일부로 감시·단속적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90% 감액적용이 폐지됨에 따라 경비노동자들도 최저임금 100%를 받게 됐다. 그간 ‘최저임금’이라는 사회의 최저 보장선에서 소외돼 있던 경비노동자들에게도 이제야 최저임금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경비노동자 인건비 인상을 이유로 경비노동자 5만여명이 해고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어느새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돈의 논리가 판을 치는 가운데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러나 이런 대량해고를 막아야 할 노동부의 대책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노동부는 지난달 24일 발표한 대책에서 2017년까지 고령자고용지원금을 지원하고 내년 4분기에 집중점검을 통해 경비노동자들의 해고를 막겠다고 한다. 전체의 6%에 불과한 지원대상자, 분기별 18만원에 불과한 지원금의 실효성은 둘째 치고, 이미 대량해고가 진행됐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4분기에 집중점검을 하겠다는 것은 노동부가 얼마나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지 명확히 보여 준다 할 것이다.

정부는 2011년 11월 감시·단속 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을 80%에서 90%로 높이면서 ‘100% 적용’을 2015년으로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대다수의 아파트에서는 경비업무를 용역업체에 위탁하거나 근로조건 개선 없이 경비노동자의 휴게시간을 편법적으로 늘리는 방식으로 경비노동자의 실질임금 인상을 막아 왔다.

최저임금제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인권 실현을 위한 중요한 제도 중 하나다. 즉 재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한계·저임업종 노동생산성 증가율' 등을 고려해 '줄 수 있는 만큼'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최저생활을 보장할수 있도록 차별 없이 공정하고 유리한 임금으로 결정돼야 함에도, 수습노동자나 감시·단속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감액적용이 용인돼 온 것은 너무나 부당한 일이다.

노동자가 고용주에 대해 공정하고 유리한 위치에 있기 힘든 사회구조에서 저임금·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일수록 단결권·단체협상권·단체행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국민연금·고용보험·퇴직금 등 각종 노동조건 적용이 15% 안팎이라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한국 사회에서 경비노동자와 같은 저임금·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권리박탈을 경험하고 있다.

경비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노동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최저임금 적용이 당연하다는 국민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들은 입주민의 노예가 아니라 우리의 안전을 지켜 주는 상호의존적인 공동주택의 구성원이다. 우리 아이들이 집을 나설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이웃이기도 하다.

다행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이미 2년 전에 경비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100%를 적용해 왔다. 적정임금도, 생활임금도 아닌 겨우 최저임금의 전면적용이었지만 입주자대표자회의가 ‘관리비 인상’과 ‘경비업무 외주위탁’ 중에서 고심 끝에 관리비 인상을 선택한 결과다. 그나마 우리 아파트에서는 “해고는 안 된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나,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에 못 미치는 현실을 생각하면 입주민으로서 안타깝고 죄송하다.

단지 입주민의 배려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기에 최저임금제도 개선과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시민들이, 입주민들이 공동주택의 구성원인 경비노동자 인권에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관리비 인상이 우리에게는 커피 한 잔 값 정도의 적은 액수이지만 경비노동자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모두의 관심과 연대로 인간의 노동이 깊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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