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나흘이 흘러갔다. 무심한 날들이 지나갔다. 진보당이라 약칭하던 정당이 해산결정 됐다. 2014년 12월19일 오전 10시. 헌법재판소가 해산결정을 하던 때 나는 임금청구사건 재판으로 서울중앙법원의 법정에 있었다. 이 나라에서 인민을 위하고, 노동자를 위하겠다던 진보의 당이 헌법의 이름으로 사형선고를 받던 날, 나는 언제나처럼 하던 일을 했을 뿐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변호사로서 노동자를 대리해서 대한민국의 법원에서 임금청구를 하고 해고무효를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정당을 죽이는 날, 나는 대한민국의 법전 속에서 노동자권리를 찾았다. 이대로라면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날에도 노동자권리 타령을 해 대며 상담하고 소송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망치로 내리쳤다. 헌법재판소는 민주공화국을 선언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이라는 망치로 통합진보당을 내리쳐 부셔 버렸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대한민국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정당이라는 이유들을 생중계로 무정하게 쏟아내고서 박살냈다. 헌법재판관들은 결정문에서 민주주의를 말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방어적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죽여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진보의 당 하나가 소수정당의 활동을 보장한다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죽임을 당했다. 그러고도 대한민국에서 아무렇지 않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언제든 그들의 위헌적 목적을 정당의 정책으로 내걸어 곧바로 실현할 수 있는 상황에 있다”며 결정 이유에서 적시했던 통합진보당(주도세력)은, 어찌된 일인지 대한민국이 위헌정당해산결정을 통해 자신을 죽이는 데도 이에 항의하는 집회·시위 말고는 의원직 상실 무효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무력하게 대응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2.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 주는 곳”이 헌법재판소라고 홈페이지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헌법의 수호자라고 자신을 규정짓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한다고 통합진보당의 해산결정을 했으니 헌법의 수호자로서 제 소임을 다했다고 앞으로 홈페이지에 소개할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헌법의 수호자라고 헌법재판소는 스스로를 자임하고 있으니 그 대한민국의 국민인 노동자도 이번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결정에 그저 무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나라 노동운동이 줄기차게 꿈꾸고 외쳐 온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 혹시 이 헌법의 수호자로부터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의심을 받을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위헌 ‘노동조합’ 해산결정의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부여하지 않고 있다고 안심하기만 할 일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한 정당을 창당해서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강령에 명시했다가 헌법재판소장의 방망이질에 해산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노동당이 제시하는 정치노선을 절대적인 선으로 받아들이고 그 정당의 특정한 계급노선과 결부된 인민민주주의 독재방식과 수령론에 기초한 1인 독재를 통치의 본질로 추구한다”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이 나라 노동운동의 정당이 강령으로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또 무슨 간첩사건·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헌법재판소가 그것을 ‘숨은 목적’이라고 충분한 증거조사도 없이 정부의 정당해산심판청구서만 믿고서, 나아가 노동자대회에서 경찰과 충돌하고 당 내부 경선과정에서 몸싸움 등 폭력 사건을 일으키는 등 활동까지 있었다며 “진정한 목적이나 그에 기초한 활동은 우리 사회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했다고 판단되므로,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결정하면 어쩌겠는가. 아무리 북한식 사회주의는 이 나라 노동운동 정당이 추구하는 세상이 아니라고 말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그리고 북한식 사회주의나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나 초록은 동색이라고 위헌정당이라고 해산결정하기라도 한다면 어쩌겠는가. 그때 가서 다시 한 번 노동자정치세력화를 하겠다고 당을 창당해서는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는 강령을 내걸 것인가.

3. 이번 결정에서 대한민국 헌법의 수호자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8조제4항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모든 폭력적·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자유와 평등을 기본원리로 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정치적 질서를 말한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는 ‘민주적 기본질서’란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입헌적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없다”고 평가되는 “최소한의 내용”을 의미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주권의 원리,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제도, 복수정당제도 등 ‘정치적’ 질서만을 의미하는 것이지 헌법재판소가 그 동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요소라고 판시해 왔던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는 정당해산의 요건인 민주적 기본질서에서 배제했다. 이로써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비판적이라는 것만으로 정당해산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단순한 위반이나 저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는 경우”를 가리키고 “강제적 정당해산은 핵심적인 정치적 기본권인 정당 활동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 제한이므로 헌법 제37조제2항이 규정하고 있는 비례의 원칙을 준수해야만 한다”고 했다. 이것이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밝힌 대한민국 헌법의 정당해산심판의 사유인 민주적 기본질서의 위배에 관한 법리다. 이런 법리만으로는 대한민국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유럽 어느 나라의 민주적 기본질서 보장에도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최종 목적으로 하고서 1차적으로 폭력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목적과 활동이 판단된다고 통합진보당을 해산결정 했다는 것이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최종 목적으로 하는지 여부는 통합진보당의 강령에서 명시하지 않고 있으니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나는 해산결정에 찬성한 8명의 헌법재판관들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마도 저 유신독재·군사정권하에서 수많은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등을 재판하면서 갈고 닦은 능력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그 대부분 사건의 활동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고 유죄판결은 재심판정으로 무죄로 판결받아 왔다. 내란 관련 사건,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및 관악을 지역구 여론 조작 사건 등을 “내용적 측면에서는 국가의 존립, 의회제도, 법치주의 및 선거제도 등을 부정하는 것이고 수단이나 성격의 측면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폭력·위계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민주주의 이념에 반하는 것”이라며 통합진보당이 폭력을 행사해 활동에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지점을 나는 참으로 한심하게 읽었다. 전체 정당의 활동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여부를 판단해야지 문제가 됐던 사건 몇 개만을 들어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창당 이후 지금까지 공직선거 후보자의 당내 선출에서, 중앙위원회 등 당의 각종 회의 운영에서, 당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통합진보당은 어떻게 해 왔던 것인지, 그것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라면 얼마든지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 등도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헌법의 수호자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법리의 적용에서 너무도 과감했다.

4. 이번 결정을 두고서 헌법재판소를 정치적 결정을 했다고 비난한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이정희 대표와 통합진보당이 친일과 독재 박정희의 후예라며 박근혜 후보를 비난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정치적 결정이라는 것은 헌법의 수호자에 대한 비난으로서는 정당하지 못하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수호자라면 당연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헌법은 정치적이다. 그것도 동지와 적으로 세상을 가르고 있을 만큼 정치적이다. 사실 국가 대한민국·민주공화국·법치주의 등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전제가 된 개념이 우리와 우리 아닌 자를 동지와 적으로 구분하고서 서 있다. 무엇보다도 국가 대한민국은 북한을 적으로 규정짓고 심판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번 통합진보당의 해산결정은 정치적인 것을 비정치적인 체하며 법률적으로 심판했다. 정치적으로 구성되지 않은 헌법재판소가 정치적인 정당해산을 결정했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이번 정당해산 결정에서 찬성과 반대가 8대 1이라는 대립은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이번에 찬성과 반대로 의견을 달리한 헌법재판관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재판관 중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하도록 한 헌법 규정에 따라 국회에서 야당 몫으로 배정된 1명의 재판관(김이수)을 제외하고는 대통령과 집권 새누리당, 그리고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에 의해서 등용된 자들이다. 그러니 8대 1로 나온 해산결정은 이미 정부가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를 한 그날부터 예정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고 법률전문가들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괜한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위헌정당해산의 사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법리에 관한 판시내용까지만 법률적이었을 뿐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이 나라에서 통합진보당에 적용될 때는 자신을 재판관으로 임명해 준 자를 보고 동지와 적으로 가르고 결정했다. 그러면 이런 대한민국의 헌법 수호자 앞에서 이 나라 노동운동은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모든 사물은 다른 사물과 구분으로 개념이 정해진다.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꿈꾸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은 그것이 아닌 세상과 구분 지을 수 있어야 한다. 노동운동에서 동지와 적은 누구인가. 헌법재판소는 위헌정당해산결정을 통해서 이 나라 노동운동에 묻고 싶었는지 모른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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