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제조업 벤처신화의 원조 격인 팬택의 앞날이 오리무중이다. 팬택은 2000년대 중반 3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7위를 기록하며 벤처기업의 역사를 썼다.

하지만 올해 9월 팬택은 서울중앙지법에 매각공고를 낸 후 ‘새 주인’을 기다리는 처지다. 선뜻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없다. 3천400여명이었던 직원은 1천500명으로 급감했다. 직원 700여명은 유급휴직 중이다. 1차부터 3차 유급휴직 때까지는 임금의 56%를 받고, 4차 유급휴직 때는 임금의 30%를 받는다. 공장 가동률은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준우 팬택 사장과 직원들은 새 주인을 찾아 전처럼 승승장구하기를 바라고 있다. 총 4천965건의 특허를 보유할 정도로 탄탄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팬택 생산공장에서 박덕규(46·사진) 팬택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노조는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이다. 박 위원장은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하지만 팬택이 외국기업에 넘어가는 상황에 몰릴 때까지 정부 지원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 직원 절반이 유급휴직 중인데. 노조 위원장으로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휴직기간 동안 고향에 내려가 농사일을 돕거나 식당에서 일당을 받으면서 일하는 직원도 있다. 팬택이 이전처럼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다른 회사에 가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휴직 중인 직원들이 노조를 찾아와 언제쯤 상황이 좋아질지 묻는다. 오래가지 않을 테니 조금만 더 참자는 말밖에 해 줄 말이 없다. 배부른 시절이 있었으니 춥고 배고픈 시절도 견뎌 보자고 얘기한다. 실망하고 돌아가는 직원들에게 술을 사 주고 위로해 주면서 함께 아파한다.”



“팬택에 8만여명 일자리 걸려”



- 45일간의 최장기 이동통신사 영업정지가 팬택 위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는데.

“이동통신 3사가 최장 기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던 시기와 팬택이 야심차게 준비한 신제품 출시일이 맞물렸다. 대응을 제대로 못한 팬택의 잘못도 있다. 삼성과 LG가 영업정지로 입는 타격과 팬택이 입는 타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 이동통신시장과 휴대전화 제조업체의 특성을 정부가 고려했다면 영업정지 결정을 세밀하게 검토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팬택 협력업체협의회는 8월 “통신 3사가 팬택의 단말기를 받지 않으면 팬택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돼 협력업체가 줄도산한다”며 “박근혜 대통령님께 눈물로 호소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박 위원장은 “팬택이 쓰러지면 팬택 직원과 550개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는 8만여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며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를 만나 팬택의 성장 가능성을 설명하고 지원을 요구했지만 정부 고위관계자로부터 회의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팬택이라는 기업의 가치와 중요성을 높게 보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제2의 쌍용차 사태 막으려면 튼튼한 기업이 인수해야”



- 매각 과정에서 팬택의 기술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팬택이 출원한 특허가 무려 5천개에 육박한다. 세계 최초로 구현한 기술이 12가지다. 팬택은 기술혁신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해 왔다. 팬택이 외국기업에 팔리면 기술력이 해외로 유출돼 제2의 쌍용차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팬택뿐 아니라 한국 정부에도 손해다. 팬택의 기술력을 뺏기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재정적으로 튼튼한 기업이 팬택을 인수해 정상화시켜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매각 이후) 직원들의 고용을 지키는 게 관건이다. 팬택의 정상화를 바라는 직원들은 회사와 고통을 분담하면서 힘들게 버티고 있다. 분리 매각되든 통으로 매각되든 전 직원의 고용이 승계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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