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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양극화와 위험의 외주화 금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9만1천824명이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10명 중 8명은 50인 미만 중소기업 노동자였다. 전체 산재는 매년 줄어드는 반면 소규모 사업장 산재는 늘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과 50인 이상 사업장 재해율을 비교해 보면 2007년에는 격차가 3배 정도였다. 반면 지난해에는 3.5배로 그 격차가 확대됐다. 대기업들이 위험요인을 중소기업에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주로 산재 위험에 노출된다. 산업재해도 양극화됐다는 얘기다. 지난 1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산업재해 위험직종 조사’는 이런 실태를 보여줬다. 이번 연구는 조선·철강·플랜트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 원·하청업체, 안전보건공단, 전문가 조사로 진행됐다.

이에 따르면 "원청 노동자에 비해 산재 위험이 높다"고 여기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대다수였다. 산재 위험이 높은 이유는 더 많이 일하면서 주로 위험업무를 맡고 있는 탓이다. 작업시간이 불규칙한데 이의제기조차 하지 못하고, 안전조치도 미흡하다고 지적됐다. 대부분 산재사고는 원청의 공기단축 요구에 따라 서둘러 작업을 하다 발생했다는 답변이 나왔다. 문제는 조선업의 경우 하청노동자 절반(47.7%)이 산재 경험이 있는데도 산재보험은 7.2%만 적용받았다는 사실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작업 중 사고가 일어나도 알아서 치료한다는 것이다. 원·하청 업체의 강압에 따라 또는 불이익을 우려해 노동자 스스로 산재를 은폐한다는 것이다. 철강과 플랜트 업종의 조사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사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이런 실태는 새삼스럽지 않다. 안전보건단체와 양대 노총에서 끊임없이 제기한 사안이다.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이를 확인해 준 것이다.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산재 비율이 높고, 원청·하청 모두 산재를 은폐하는 현실을 보여준 셈이다. 이런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산업재해 통계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 산재통계는 산재보험이 적용된 재해자수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로 인정하고 치료비와 보상금을 지급한 건수가 곧 산재통계다. 고용노동부는 산재발생 유형이나 양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통계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알아서 치료하기보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한다면 산업재해자는 현재보다 훨씬 더 많아진다. 때문에 우리나라 산재통계는 신뢰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간 대기업의 경우 위험작업을 외주화하면서 산재보험금 감면 혜택을 누려왔다. 산재를 줄이면 보험금을 깎아주는 ‘개별실적요율제’라는 제도를 활용했다. 2012년 기준으로 20개 대기업이 감면받은 산재보험료만 3천460억7천만원이다. 개별실적요율제에 따른 전체 산재보험료 할인액(1조1천376억원)의 30.4%다. 올해 8명의 하청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한 현대중공업의 경우 2013년 184억원의 산재보험금을 할인 받았다. 이러니 대기업은 사내하청에 위험작업을 떠넘기거나 사고가 일어나도 은폐하는 것 아닌가. 산재통계가 왜곡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인권위의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우선, 산재 통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고용형태별로 산재실태를 파악해 공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 실시되고 있는 고용형태공시제를 준용해 산재공시제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의 산재를 합산하는 것도 방안 중 하나다.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노동부뿐만 아니라 노조 제보와 시민사회단체의 모니터링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업무는 하도급을 금지해야 한다. 적어도 원청업체가 선 안전조치 후 위험작업을 하되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사고가 일어날 경우에는 힘없는 하청업체 관리자만 처벌하지 말고 원청사업주도 엄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산재사고는 곧 중대범죄’라는 인식이 확립된다.

이미 국회에는 상시적 위험작업의 사내하도급을 금지하는 법안이 상정됐다. 산재 양극화 해소를 위해 위험작업의 외주화부터 금지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런데 경영계와 여당 내부에서 난색을 표해 법안이 표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위험작업 외주화 규제는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후 예방대책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정책이다. 이것마저 밀려선 안 된다. 담당부처인 노동부는 경영계와 여당 설득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박성국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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