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어디 헌법재판소였던 적이 있나요?”

헌법재판소가 19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심판 선고를 내릴 예정인 가운데 한 당직자가 한숨처럼 뱉은 말이다. 그가 헌법재판소 대신에 붙인 이름은 다름이 아닌 ‘정치재판소’였다.

한 나라 최고의 사법기관이 어쩌다 이런 비아냥을 듣게 됐을까. 이유는 따로 없다. 헌법재판소가 그동안 보여 온 정치적 편향성과 반노동적인 결정 때문이다. 정치적 중립과 모든 국민의 존엄을 수호한다는 기관이 이런 비판을 받고 있다. 그야말로 정체성의 문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3월 공무원에게 정당가입 금지 및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법률이 합헌이라고 판정했다. 헌법재판소의 논리라면 공무원은 국민이 아닌 것이 된다. 헌법 제11조가 “누구든지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는다”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24시 이후 시위 금지 △투표소 오후 6시 폐쇄 △쌍용자동차 노동자·용산 철거민 DNA 채취 합헌 결정도 박근혜 정부 들어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단이다. 하나같이 정부·여당이 환영할 만한 내용이다. 정치재판소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하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선고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커지는 것오 이 때문이다. 더욱이 헌법재판소는 최종변론 뒤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을 선고기일로 잡았다.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이 되는 날에 말이다. 현재 박근혜 정권은 ‘비선실세 국정개입’ 논란으로 레임덕에 가까운 위기에 빠져 있다. 빨라도 연말로 예상되던 해산심판이 앞당겨진 이유는 뭘까.

헌법에 정당 해산심판 조항이 담긴 것은 1960년이다. 그런데 정부가 실제로 정당 해산심판을 청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이승만 정부가 죽산 조봉암 선생이 이끌던 진보당을 등록취소 형식으로 해산시킨 적은 있지만 헌법에 관련 조항이 추가되기 전의 일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열린 최종변론에서 태극기·애국가·폭탄·공산집단 같은 자극적인 단어로 해산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은 올해 8월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아직 법원이 정부의 정당 해산청구의 핵심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을 결정한다면 정치재판소라는 오명을 벗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