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문대 변호사(법률사무소 로그)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정규직 노동자를 지목하고, 고용 유연화를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불붙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는 19일 노사정 합의를 시도한다. 노동시장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방향을 정하자는 것이다. ‘노사정 공동선언’을 원하는 고용노동부는 “근로계약 해지 및 근로조건 변경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방안을 강구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취업규칙에 저성과자 퇴출기준을 담겠다는 속내다. 아예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때 노조나 과반수 노동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법을 바꾸자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취업규칙을 통한 해고 유연화가 중소기업과 무노조 기업에 집중돼 정부 생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과연 지금 취업규칙 관련 제도를 고쳐야 할 때일까.



'공장의 법', 노동자 동의 없이 손대는 것 부당

강문대 변호사(법률사무소 로그)



고용노동부가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사실이라고 믿기 어렵다. 일단 노동부는 취업규칙의 작성 주체가 아니다. 노동부가 사용자의 일을 나서서 할 이유가 없다. 사용자가 저성과자에 대한 조치를 ‘게을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업무추진역’이니 ‘저축추진역’이니 하는 직책은 사용자가 저성과자들을 대상으로 만든 놀라운 창작품이다. 그리고 ‘저성과’라고 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것도 아니다. 사용자는 얼마든지 일방적으로 ‘저성과’를 선언할 수 있다. 따라서 저성과자에 대한 대책은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책이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요건 완화는 모든 근로자에 대한 해고요건 완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경우에도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취업규칙은 공장의 법이다. 그 법을 실행자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우리는 그런 행태를 ‘독재’라고 부른다. 독재를 용인하자는 주장이 온당한 주장이라고 할 수 없다.

위 두 주장을 합치면 이리 된다. 노동부가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취업규칙의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사용자는 근로자의 동의 없이도 그런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 이는 곧 모든 노동자를 고용불안에 떨게 만들 것인바 그런 조치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형식적이고 경직된 절차 바꿔야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최근 60세 정년연장 시행이 가시화되고 근로시간단축, 통상임금 논의가 활발해짐에 따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과 관련된 관심이 뜨겁다. 우리나라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관련 규정은 2004년 주40시간제 도입 당시에도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 처한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기존에 설정된 근로조건을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간소화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동의절차는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경직돼 있다. 노사 간의 불필요한 갈등만을 조장하고 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 개선은 동의절차가 아닌 협의절차만 거쳐도 가능하도록 완화하거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가능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미 대법원 판례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있다.

2007년 제정된 일본 노동계약법도 근로자가 받는 불이익의 정도, 근로조건 변경의 필요성, 변경 후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노동조합 등과의 교섭 상황, 기타 취업규칙 변경에 관련되는 사정에 비춰 합리적인 것일 때에는 취업규칙 변경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관련 제도 개선에 참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계약 법리에 어긋나고 약자 피해만 키워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



취업규칙은 집단적 근로계약에 해당한다. 계약을 파기할 때는 당연히 상대방의 의견을 묻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법률상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고용관계에서는 고용주가 강자고 노동자는 약자다. 그렇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은 집단 근로계약인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는 개별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집단의 의견을 듣거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주체는 노조가 될 수도 있고, 노조가 없을 경우 노동자 과반을 대표하는 자(집단)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에는 노조나 과반 노동자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조건으로 계약을 변경하는데 당연히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때문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조건을 완화하거나 관련 조항을 삭제하자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또 사용자 마음대로 취업규칙을 바꾼다면 소규모 사업장이나 노조가 없는 사업장, 즉 노동시장의 약자들이 더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계약에 관한 법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약자의 피해를 키우는 취업규칙 변경 조건 완화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비정규·무노조·영세사업장 노동자들 가장 큰 피해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



해도 너무한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한다더니 비정규직 보호는 온데간데없고, 정규직이 과보호를 받고 있으니 이를 완화해야 한다며 갖가지 발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중 백미는 아마도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고, 내친김에 관련법도 개정하겠다는 발상이 아닌가 싶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노동자 동의 조항이 유노조·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과보호를 고착화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현장의 실태를 모르는 주장이다. 경상북도교육청은 초등돌봄교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기존 단시간 계약에서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계약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인데도 당사자들의 집단적 동의과정을 밟지 않은 채 추진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 무노조·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해 집단적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렵고, 심지어 백지날인을 강요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취업규칙은 노사교섭을 통해 결정되는 단체협약과 달리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제정하거나 개정한다. 노조 조직률이 10%대임을 감안하면 노동자 열 명 중 아홉 명은 단체협약을 적용받지 못하고, 취업규칙만 적용받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노동자 동의조항은 대다수 무노조·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조건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일반 민사계약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 없는데, 하물며 지배·종속관계에 있는 근로계약의 내용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개정하자는 주장이 과연 상식적인지 되묻고 싶다.



'정규직 과보호론' 추종하는 후속조처 남발 우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



최근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겠다며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근로자 동의 조항을 없앤다거나 완화하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정규직 과보호'라는 잘못된 언급에, 그에 추종하는 듯한 후속조처들이 남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려된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경직되지 않았다. 재계에서 자꾸 캐나다 민간연구소의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 순위'를 가지고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다고 주장하는데, 한국의 정확한 실정도 파악하지 못하는 공신력 없는 결과를 바탕으로 노동시장의 기본구조마저 헤치려는 과도한 자기중심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노동부가 최근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이라는데 말할 가치도 없다. 기업의 인사노무관리를 왜 노동부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부처가 기업의 인력관리 관행에 대한 세부적인 문제까지 세세하게 관여하는 게 정상인가. 게다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게 아닌 약화시키는 문제다. 노동부가 굳이 나서서 정책이랍시고 입안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전반적으로 정부 정책으로 할 만한 수위가 아니다.

노동부가 지금 고민해야 할 일은 양극화 심화에 따른 고용불안 문제에 대비하는 것인데, 엉뚱한 데 힘을 쓰고 있는 모양새다.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을 너무 쉽게 제시하고 있다. 더 이상 확대되면 수습 불가능한 상황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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