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선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요즘 유행하는 드리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흔히 뉴스를 양파 같다고 합니다. 사실이라는 껍질을 깔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기 때문이죠. 비로소 우리는 진짜 진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미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가 모두 진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겠지만 사실이라는 껍질을 깔수록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결국 외형적으로 보이는 사실이 아닌 진짜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는 이 대사는 우리 삶 어디에서나 적용할 수 있다.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생산공정에서 근무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사실은 현대차와 기아차가 직접 고용해야 하는 노동자임이 밝혀졌다. 이달 4일 한국지엠에서 근무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역시 한국지엠이 직접 고용해야 하는 노동자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현대차·기아차·한국지엠(이하 ‘이 사건 사용자’) 등 우리나라 굴지의 자동차 생산회사에서 사용하는 이른바 ‘사내하도급’이 사실상 ‘불법파견’이라는 점이 인정된 것이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 업종을 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사건 사용자들이 파견법상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는 제조업 생산공정까지 파견근로자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정규직으로 고용했을 때 준수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상 의무를 준수하지 않으면서 마음껏 업무지시명령을 하고, 정규직에 비해 낮은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욕망이다.

사용자들은 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도급’이라는 개념을 끌고 들어왔다. 도급은 수급인이 어떤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도급인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을 의미한다(민법 제664조). 예를 들어 정원사에게 정원의 나무를 모두 다듬어 주는 것을 목적으로 돈을 지불하거나 건물을 짓는 것을 목적으로 돈을 지불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사건 사용자들은 사용자 회사 내의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업무 중 일부 업무에 대해 소규모 협력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작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용자의 주장은 일견 그럴싸해 보인다. 왜냐하면 사용자들은 파견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사실상 아무런 능력도 없는 협력업체와 자동차 생산공정 중 매우 작은 일부분(예를 들어 왼쪽 바퀴 조립업무, 오른쪽 창문유리 조립업무 등)에 대해 계약을 하고 업체가 선발한 노동자들을 해당 공정에 투입해 사용했고, 도급비는 일의 성과와 완성한 작업량에 따라 지급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소송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주장한 노무도급·물량도급이다.

그러나 앞의 드라마 대사처럼 외형적으로 보이는 ‘사실’이라는 껍질을 까고 또 까다 보면 ‘도급’이라고 주장하는 사용자의 주장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사용자들이 하도급 협력업체라고 주장하는 업체들은 외형적으로 사업자등록증도 있고, 소속 노동자에게 임금도 지급하며, 4대 보험도 납부하고 있다. 이 사건 사용자들과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도급비 역시 물량에 따라 지급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모두 이 사건 사용자들의 업무지시를 받았고, 하다못해 출퇴근이나 연장근무·휴일근무 역시 사용자들의 지시에 따랐다. 이 사건 사용자가 직접 작성한 표준작업서나 작업지시서 등을 가지고 업무를 익혔으며, 정규직 근로자와 혼재돼 근무하기도 했고, 심지어 산업재해 등으로 정규직 결원이 발생한 경우 그 업무를 대신 수행하기도 했다.

이 사건 사용자가 물량도급이라고 주장하며 지급한 도급비의 대금산정 기준이 되는 생산물량은 컨베이어벨트의 이동속도와 투입된 근로자수와 연동돼 있다. 결국 이 사건 사용자와 협력업체가 체결한 계약은 내용은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의 노동력 제공’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근로자파견계약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들에서 우리가 알게 된 진실은 무엇일까.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문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기업 사이에 추진되는 이른바 ‘사내도급’ 형태의 분업적 생산방식이 도급계약의 외형을 빌려 파견을 통해 공급된 근로자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면, 근로자파견의 장기화·상용화를 억제해 파견근로자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근로조건을 보장하고 기업들의 합리적 고용구조를 창출할 목적으로 제정된 파견법의 적용을 잠탈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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