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LG유플러스에 이어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의 노사교섭도 파국을 맞았다. 협력업체와 협력사협의회를 대리해 교섭에 나선 한국경총이 주요 쟁점에서 "결정권이 없다"며 노조측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는 지난 11일 비슷한 이유로 교섭을 중단했다.

노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지부장 이경재)는 16일 오전 서울 중구 SK브로드밴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이경재 지부장은 "지난 15일까지 경총과 집중교섭을 진행했지만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한 이중착취와 상시적 고용불안 해소, 성과급 위주 임금체계 개선 같은 쟁점에 대해 '하청업체들이 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비판했다.

지부는 이날 기자회견에 이어 지난 9일 선임된 이인찬 SK브로드밴드 사장 면담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원청인 SK브로드밴드가 교섭장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지부와 경총은 9월부터 집중교섭을 벌여 왔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 지부는 지난달 20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한 상태다. 노조의 주요 요구는 △업체 변경시 고용승계 △업무 재하도급 금지 △고정급과 작업시간을 반영한 개통수당 책정 △노동시간단축 등이다. 경총은 그러나 고용승계 요구는 "결정권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재하도급 금지도 "불가피한 경우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임금협상도 풀리지 않고 있다. 경총은 기본급 120만원에 작업시간이 아닌 업무처리건수에 따라 1천원에서 7천원의 건당 수수료를 지급하겠다는 주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지부는 이후 SK브로드밴드와 대주주인 SK텔레콤을 대상으로 직접교섭을 촉구하는 국회 기자회견과 집중집회를 벌일 방침이다. 지부 관계자는 "노동자의 업무량과 노동시간은 원청의 업무할당방식에 달렸고 협력업체의 유일한 수입은 원청이 지급하는 수수료"라며 "이중착취와 고용불안의 근원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원청이 비용 문제를 해결하고 원청-협력업체 간 위수탁계약서에 관련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길어지는 통신비정규직 투쟁, 원인은 '원청'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장기화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16일로 각각 27일·28일째 전면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섭이 교착된 원인은 모든 결정권을 가진 원청이 사용자성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치·수리기사들은 원청과 도급계약을 맺은 협력업체에 소속돼 있고, 원청과 협력업체가 맺은 위수탁계약 조건에 따라 업무량과 노동조건이 결정된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경우 원청이 구축한 프로그램에 접속해 업무를 할당받는다. 원청은 노동자의 업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면서 영업실적과 해피콜에 따라 협력업체를 평가하고, 평가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 지급하거나 폐업시키기도 한다.

올해 4월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분석했던 류하경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SK·LG 협력업체들은 원청하고만 계약하고 계약이 끝나면 폐업한다"며 "원청이 주는 수수료 외에 독자적으로는 이윤을 낼 수 없는 구조인 데다, 수수료 지출항목 또한 원청이 지정하고 있어 다르게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하청 노동자의 임금수준과 복리후생·노동조건을 원청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원청 없는 교섭은 공전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원청이 사용자성을 부인하고 교섭을 거부하면서도 노조의 쟁의행위에 맞서 대책인력을 투입한 것도 노사관계를 악화시킨 요인이다.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모두 노조의 파업에 맞서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SK브로드밴드는 최근 일당 20만원짜리 대체인력을 투입한 문건이 공개되기도 했다.

류 변호사는 "노동부는 집중 근로감독을 벌여 불법적 관행을 시정하고 원청의 사용자성을 밝혀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사태가 장기화하는데도 노동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한국 기업들이 하도급을 남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신케이블 회사들의 교섭 결과가 미칠 파장이 막대하다"며 "경총이나 전경련을 필두로 자본이 간접고용 관행에 대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교섭이라 사측이 전향적인 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소장은 "당사자만으로는 풀리지 않을 문제인 만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정부나 국회의 합리적 중재와 시민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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