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노동조합이 ‘갑질’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조합원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교섭대표노조가 소수노조를 상대로 벌이는 횡포가 대표적이다.

16일 중앙노동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 7월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된 이래 월 평균 12~13건의 공정대표의무 위반 시정신청이 중앙노동위와 지방노동위원회에 접수되고 있다. 연간 150여건의 사건이 노동위에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교섭대표권을 확보한 다수노조나 회사를 상대로 부당함을 호소하는 소수노조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교섭에서 체결까지 '소수노조 모르게'=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9조2항은 “교섭대표노동조합의 대표자는 교섭을 요구한 모든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을 위해 사용자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제29조의4는 “교섭대표노동조합과 사용자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동조합 또는 그 조합원 간에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며 교섭대표노조에 ‘공정대표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문은 현실에서 무용지물이다. 2011년 정리해고 논란이 휩쓸고 지나간 부산 한진중공업에는 현재 한진중공업노조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가 활동 중이다. 교섭대표노조인 한진중공업노조는 올해 회사를 상대로 임금·단체협상을 진행하면서 교섭경과와 합의내용을 지회에 알리지 않았다.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할 때도 지회 조합원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국립대법인 서울대학교에서도 최근 유사한 갈등이 불거졌다. 서울대에는 정규직 조합원을 둔 서울대노조와 무기계약직으로 구성된 대학노조 서울대지부가 있다. 교섭대표노조인 서울대노조는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지부를 배제하고, 무기계약직을 단체협약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합의를 했다.

소수노조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협약의 내용을 정하거나, 협약의 내용이 소수노조 조합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경우 교섭대표노조가 공정대표의무를 저버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노동위원회의 판정례도 교섭대표노조가 소수노조에게 성실하게 교섭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추세다.

◇'회사노조' 악용 소지 커=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를 집계하는 과정에서 소수노조 조합원들의 표를 빼 버린 노조도 있다. 인천 두산인프라코어 교섭대표노조인 두산인프라코어전사노조와 소수노조인 금속노조 두산인프라코어지회는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설명하거나 찬반투표를 할 때 지회 조합원을 참여시키기로 사전에 약속한 상태였다. 이 같은 약속에 따라 지회 조합원들도 찬반투표에 참여했다. 그런데 두 노조 전체 조합원 대비 48.53% 찬성률로 합의안이 부결됐다. 그러자 노조는 지회 조합원들의 표를 제외한 뒤 노조 조합원 투표 결과만을 반영해 합의안을 가결 처리했다.

이런 경우 교섭대표노조가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했는지 단언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교섭대표노조가 자체 규약에 찬반투표 대상을 자신의 조합원으로 한정해 놓았다면, 소수노조 조합원을 투표에 참여시키지 않아도 절차상 문제를 삼기 어렵다. 자신의 규약을 넘어서는 부분까지 책임질 의무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사례처럼 교섭대표노조가 찬반투표 집계 과정에서 소수노조의 표를 빼 버리더라도 이것이 공정대표의무를 저버린 행위인지 명쾌하게 해석하기 어렵다. 노조법상 공정대표의무는 ‘내용의 공정성’ 보다는 ‘절차의 공정성’에 가깝다. 법적 다툼으로 비화됐을 때 소수노조 조합원을 찬반투표에 참여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교섭대표노조가 공정대표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교섭대표노조가 사용자의 입김을 크게 받는 소위 회사노조라면, 이러한 제도의 빈틈을 악용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최근 금속노조가 13개 기업의 교섭대표노조를 상대로 단체협약 무효확인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섭대표노조의 횡포로 금속노조 소속 소수노조들이 단체교섭권을 박탈당했다는 것이 소송에 돌입한 이유다.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되자 사용자들은 기존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복수노조 설립을 지원하고, 신규노조를 다수노조로 만들어 기존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작업을 해 왔다”며 “이러한 폐단으로 헌법에 보장된 단체교섭권이 형해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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