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10년을 싸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싸움을 시작할 때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이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됐을 것이고, 없었던 흰머리가 생겨났을 것이다. 몸에 익었던 일도 낯설어질 시간이다. 싸움 초기에 가졌던 울분도 저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았을 수 있다. 10년, 아무리 죽고 못 사는 연인들이라도 그 사이에 대여섯 번은 헤어졌을 테고, 사랑을 맹세하던 부부도 그때쯤이면 조금씩 서로에게 지루해질 것이다. 그런데 10년을 한결같이 싸우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과천 본사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한 지 3년째, 단식을 시작한 지 30일을 훌쩍 넘겨 버린 코오롱 해고자들의 얘기다.

코오롱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지 벌써 10년이 됐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합의서가 있는데도 회사는 2005년 2월 78명을 해고했다. 50명이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를 만들고 10년간 죽는 것 빼고는 다 해 봤다고 할 만큼 많은 투쟁을 했다. 아니, 죽겠다고 손목을 칼로 긋기도 했다. 그렇게 싸우는 동안 12명만 남았다. 생계에 지쳐서,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어서, 그리고 아파서 싸움을 포기하는 이들의 손을 붙잡고 울던 이들 중 두 명이 이제는 끝장을 보겠다면서 짐을 싸들고 본사가 있는 과천으로 올라온 게 벌써 3년이다.

코오롱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10년을 버틴 이유는 ‘억울해서’라고 한다. 코오롱 같은 대기업이 돈이 없어 정리해고를 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노조가 양보해서 인원감축도 하고 임금도 포기했는데, 기어이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해 버린 회사의 비정함에 치가 떨린다고 한다. ‘왜 내가 해고 대상자냐’고 묻는 말에 ‘노래방에서 놀 줄 몰라서’라는 말도 안 되는 답을 들은 노동자들. 회사도 쌩쌩 잘나가고 성실하게 일한 것밖에 없는데, 법원은 정리해고가 정당하다 말한다. 노동자들이 어찌 억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없애기 위해 정리해고를 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10년을 버틴 이유가 단지 ‘억울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인간됨’의 주장이다. 기업들이 단지 숫자 78명으로 기억하는 그들은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고 아이들과 웃고 우는 부모들이고, 회사의 기계를 만지면서 자부심을 가졌던 노동자들이고, 자기 회사의 마크를 보며 은근히 자랑스러워했던 이들이다. 그렇게 '살아 있는' 이들을 소모품처럼 버리는 회사에 맞서, 자신은 소모품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 용기를 주고 따뜻한 온기를 전해 준 이들이 있기에 조금씩 힘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10년에 어찌 고통이 없었을까. 죽기를 각오하고 손목을 그었던 상처에,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농성의 후유증 가득한 몸뚱이에, 아무도 없는 농성장에서 바람소리 들어 가며 지새우던 날의 휘휘한 가슴에, 돈이 없어 아이들과 외식 한번 제대로 못했던 아픈 마음에, 파탄 나 버린 관계의 조각들에, 교섭에 나오지 않는 철벽같은 코오롱의 무관심에 다친 심장 속에, 그렇게 고통은 켜켜이 쌓였을 것이고 그것이 다시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일배 위원장은 바로 그 몸으로 단식을 시작했다. 12월11일이면 단식 37일째가 된다. 아직도 사람 좋게 웃고 있지만 그 10년의 고통과 37일 단식의 고통이 얼굴 주름 하나하나에 배어 있는 듯하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단단한 옹이를 품고 있는 나무가 돼 내성이 생긴 줄 알았는데 그 고통은 결코 내성이 생길 수 없었나 보다. 단식 34일째 ‘코오롱 연대마당’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김혜란 해고노동자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제발 현장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 눈물 속에서 돌아갈 곳이 있는 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읽는다. 코오롱 해고자들은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일터로,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고통이 몸과 마음을 완전히 잠식하지 않도록 이제 사람을 살려야 한다.

재계서열 30위 안에 드는 코오롱이 돈이 없어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리해고로 파괴된 삶은 10년이면 충분하다. 코오롱이 해답을 내놓도록 더 많은 이들이 힘을 모을 때다. 13일은 코오롱노동자 최일배 위원장의 단식 39일째 되는 날이다. 이날 연대마당이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 열린다. 많은 이들이 모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연대의 힘이 과천에 차고 넘쳐 말라 가는 단식자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힘을 전해 주기를, 코오롱의 막힌 귀를 열게 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