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섭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노동사건에서 시간은 노동자들의 편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해고사건의 경우 해고된 노동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생활고에 하루하루 버티기도 어렵지만, 사용자는 소송이 길어진다고 하여 사업운영에 별다른 영향을 받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고노동자와 사업장 안의 다른 노동자들을 분리시키고 사업장 노사관계를 재편하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므로 딱히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2010년에 있었던 파업을 이유로 해고된 지 4년, 회사가 대법원 상고를 제기한 지 1년4개월이 되고 있는 대구 소재 자동차부품 생산회사의 해고노동자들은 아직도 현장에 복직하지 못하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0년 12월13일 해고된 직후 지방노동위원회를 시작으로 법에 정해진 각종 절차를 통해 부당해고를 인정받았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이므로 복직명령을 내렸으나 회사는 이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이행강제금을 납부하면서까지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의 기나긴 법정다툼을 통해 1·2심 모두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에 사건이 올라간 지 1년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언제 판결이 확정될 것인지, 언제쯤 회사에 다시 복직할 수 있을 것인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이 기나긴 싸움이 끝나고 가족과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 아무것도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단체협약 해지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 목포에서 제지를 생산하는 회사의 노동자들은 회사측의 단체협약 해지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임을 이유로 단체협약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사용자의 단체협약 해지권 행사에 대한 권리남용 내지 부당노동행위가 문제된 국내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해 꼭 필요하고 합당한 기준을 제시해 줄 것을 기대하면서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2012년 8월2일 상고장이 접수돼 같은달 29일 노동조합이 상고이유서를 제출하고, 같은해 11월23일 회사측이 답변서를 제출함으로써 사실상 양측의 주장입증이 완료됐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까지 판결은 선고되지 않고 있으며, 선고기일조차 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조직력은 날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습니다. 단체협약이 해지된 2009년 12월께 조합원수는 전체 직원의 70% 이상이었으나 단체협약이 해지되고 그 후속조치로 이뤄진 △사내 인트라넷의 ‘노동조합방’ 삭제 및 폐쇄 △노조사무실 인터넷 차단 △전임자 복귀 요구 및 전임자 처우 중단 △지회장 차량 출입 금지 △노동조합 사무실 전화·팩스·인트라넷 차단 △노조의 매점운영권 회수 △조합비 급여공제 중단 △유류지원 중단 △노동조합 회의 활동시간 불허 △노동조합에 대한 장소협조 전면 금지 △노조사무실 반환 요구 △노동조합 게시판 철거 △난방용 전기 단전 △세면장 온수 단수 △노조사무실 전기 전체 단전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정리해고 등으로 말미암아 단체협약이 해지된 지 4년 반 이상이 지난 현재 불과 30여명의 조합원만이 남아 노동조합을 지키고 있습니다.

헌법 제27조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긴 소송기간은 당사자가 승소하더라도 그 판결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거나 그 가치를 크게 감소시키므로, 신속한 재판만이 진정한 의미의 권리보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헌법은 “신속한 재판”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법원절차 지연은 재판청구권에 대한 침해입니다. 해고노동자가 대법원에 제출할 탄원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당사자끼리 문제를 풀지 못하면 제3의 기관인 법원에 의뢰해서 판결을 기다립니다. 저희 해고자들은 재판이 빠르게 진행돼 이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010년 12월13일 해고되고 3년9개월 넘게 공장 밖에서 기약 없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더욱 절실합니다.”

해고노동자들의 절실함이 저 멀리 있는 법원까지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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