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표
공인노무사
(한국발전산업노조 법규부장)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규정된 내용 중에서 현장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제도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바로 단체협약의 효력확장 제도다. 비록 무임승차 내지 단결력 약화라는 비판이 있지만 단체협약을 체결한 노조의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일정한 요건하에서 비노조원과 소수노조의 조합원에게도 단체협약을 적용하는 제도가 사업장 차원의 일반적 구속력 제도(제35조)와 지역적 차원의 지역적 구속력 제도(제36조)다.

2001년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해 호기로운 마음으로 동기들과 노무법인 현장을 설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계약직 신분인 상시위탁집배원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실무적으로 일반적 구속력 제도를 접하게 됐다. 체신노조(현 우정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임금협약)을 조합원이 아닌 상시위탁 집배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필자가 검토한 바로는 일반적 구속력의 적용 대상으로 보였으나 노동자들의 내부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사건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 당시 일부 노동자들만 정규직 집배원으로 전환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것이 필자가 14년 동안 노무사로 활동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접한 일반적 구속력 관련 사건이었다.

그런데 최근 일반적 구속력 제도를 접했다. 이번에는 법률 검토 단계가 아니라 실제 사건으로 소송까지 가게 됐다. 필자는 2008년부터 2년간, 2012년부터 현재까지 한국발전산업노조에서 법규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1년 한국전력의 발전 분할로 설립된 발전노조에는 복수노조 도입 전 유니언숍에 근거해 7천여명의 조합원이 있었다.

이후 MB정권의 공공부문 노동탄압과 발전회사의 민주노조 탄압(조합원들에게 승진·인사고과·발령 등을 앞세워 발전노조를 탈퇴하게 강요하거나 회유함)으로 인해 5개 발전회사마다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기업별노조가 설립됐다. 발전노조는 1천500여명의 조합원만 남아 있는 상태다.

5개 발전회사 중 하나인 한국남부발전주식회사에도 2011년 기업별노조가 설립됐다. 현재는 기업별노조가 다수노조이고, 발전노조는 소수노조다. 발전노조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도입으로 인해 2011년까지만 단체교섭권을 인정받았고, 그해 12월 기본 호봉의 정률인상에만 합의했다.

남부발전은 2011년 7월1일 시행된 창구단일화 절차를 피하면서 기업별노조에 교섭권을 주기 위해 법 시행 바로 전인 2011년 6월29일 기업별노조와 임금협약을 체결했다. 기본호봉의 정률인상과 직능급의 정액인상에 합의한 것이다.

남부발전에 2개의 임금테이블이 따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2012년부터는 각종 법정수당이 기본호봉과 직능급으로 산정되면서 기업별노조 조합원과 발전노조 조합원 사이에 임금 차별이 발생했다. 그해 발전노조는 내부 사정으로 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하지 않았다.

발전노조는 남부발전이 2012년부터는 노조법 제35조의 일반적 구속력에 따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회사는 기업별노조가 반대한다는 이유를 들며 발전노조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기업별노조는 조합원을 늘리기 위해 발전노조를 탈퇴하고 가입하면 더 많은 임금을 지급받게 되는 것이라고 홍보했다. 결국 발전노조는 남부발전의 임금 차별과 부당노동행위를 막기 위해 지난해 민사소송(서울중앙지법 2014가소5270677)을 제기했다.

법원은 12월5일 "발전노조의 조합원들이 청구한 임금을 모두 지급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복수노조를 악용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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