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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해고' 조장 말고 '절망퇴직'부터 규제해야
지난 9월1일 정부세종청사 기자회견실에 모인 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관계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금융보험업 구조조정이 확산돼 여론이 들끓자 세 부처가 함께 나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올해 들어 금융권 취업자보다 퇴직자가 1만1천명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그야말로 마이너스 고용상태였다. 정부 관계자들은 고용유지지원금·임금피크제 지원금 등을 활용해 감원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로부터 3개월 이후인 지난달 25일 정책세미나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목소리는 격앙됐다.

"정규직이 과보호를 받다 보니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기업들이 겁이 나서 정규직을 못 뽑는 상황이다."

최 부총리는 해고요건을 완화해 고용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며 이렇게 역설했다. 최 부총리의 발언은 취임 당시 직장인 지갑을 채워 소비를 늘리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외친 것과 대조적이었다. 3개월 전 금융권 감원바람을 우려해 고용유지대책을 발표했던 정부도 정책기조를 180도 변경한 셈이다.

당초 기재부가 마련한 '2015년 경제정책 운용방향'에는 비정규직 관련대책이 포함됐는데 최 부총리의 강력한 주문으로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도 추가됐다는 후문이다. 기재부가 부랴부랴 이를 검토하면서 설익은 정책이 쏟아졌고, 부처 간의 조율이 덜 끝난 상태에서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정리해고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취업규칙마저 쉽게 변경하는 방안이 숙성되지 않은 채 언론보도로 쏟아진 것이다. 기재부가 치고 나가고, 노동부가 빗발치는 항의와 언론보도를 뒷수습하는 형국이었다. 뒤늦게 노동부가 기재부의 언론 플레이에 항의하고 나섰지만 상황을 수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두 부처의 엇박자처럼 비쳐지긴 했지만 언론에 발표되는 시기와 형식에 국한될 뿐 두 부처의 조율없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노동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최근 최 부총리와 기재부는 국면전환을 시도했다. 노동단체의 강한 반발과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의식한 것이다. 타깃은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으로 향했다. 기재부는 '실적 부진자'에 국한해 해고요건을 완화하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방안까지 구체적인 대상을 거론했다. 최 부총리는 "한 번 뽑으면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것이 정규직 과보호 사례"라고 거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회마저 그간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위한 법제도 개정을 논의해 온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방향을 급격하게 변경하는 이유는 무얼일까. 2016년부터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기업들이 법정 정년 60세를 시행해야 하는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기에는 최 부총리와 기재부의 행보는 너무 앞선 것이다. 최 부총리가 시쳇말로 '판을 흔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전문가들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에서 관련 논의가 진행되는 있는 것을 감안해 논의를 압박하려는 수순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경영계 입장을 반영해 정책기조를 밝혔으니 노사정위 논의에 속도를 내달라는 식이다. 또 노사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는 이런 정책기조로 '마이웨이' 하겠다고 선언한 모양새다. 현재로선 두 가지 모두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점쳐지고 있다. 노사정위 논의 흐름, 노동단체와 국민여론의 향방에 따라 정부의 행보가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정부 행보에 정치권이나 국회가 어느정도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3개월 전으로 돌아가 보자. 세 부처의 고용유지대책 발표는 금융권 구조조정의 장기화를 인정한 것이었다. 기업들이 해고보다 희망퇴직을 선호하는 이유는 근로기준법 규제를 회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는 해고 예고기간·근로자 대표와의 협의를 포함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정리해고의 전제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물론 최근 법원은 '미래의 경영상 어려움'도 정리해고 사유로 해석할 정도로 사용자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다. 또 법원은 근무평가를 통한 해고를 정당한 것으로 평가하는 데는 인색하지만 인사조치는 사용자 재량권으로 넓게 인정하고 있다. 기업들은 정리해고 요건이 충족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그간 평가를 통해 실적부진자를 정한 뒤 후선배치·역지위·대기발령 같은 인사조치를 하면서 희망퇴직을 유도했다. 굳이 경영상 위기가 닥치지 않은 흑자상태에서도 상시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주가를 올리거나 주주배당을 높이기 위해 희망퇴직을 활용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의 정책방향은 '해고요건 완화'이면 안 된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겨냥한 마녀사냥을 할 이유도 없다. 되레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상시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절망퇴직'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이미 여야 의원들이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위한 법 개정안을 발의하지 않았나. 법정 정년 60세에 따른 임금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면 정부는 노사정이 자율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면 된다. 굳이 무리하게 판을 흔들려 하지 말아야 한다.

박성국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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