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국민행복 10대 공약을 내걸었다. 그 6번째가 '근로자의 일자리 지키기'였다. 정년연장이나 해고요건 강화가 핵심 내용이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방지를 위해 사회적인 대타협기구를 설립한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정리해고 요건 강화는 국정과제에서 다시 언급됐다. 업무재조정이나 무급휴직 같은 해고회피 노력 인정사유를 법에 명문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출범 2년도 안 돼 박 대통령의 생각은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가 공약집에 명기했던 '약속실천의 리더십'을 포기한 셈이다.
노동자들은 괴롭다.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고용불안은 남 얘기가 아니게 됐다. 업종을 따지지 않고 곳곳에서 여러 형태의 정리해고가 넘쳐난다. 이익이 나는 회사가 미래 위험에 대비해 정리해고를 하는가 하면 분식회계로 위험을 부풀리기도 한다. 지금은 해고를 쉽게 할 수 있게 규제를 풀 때가 아니라 강화할 때다. 왜 그런지 당사자들에게 이유를 들었다.

이익 극대화 위해 정리해고 남용, 기업에 책임 물어야

이형철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
(흥국생명 해고자)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규직의 고용유연성을 얘기하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면 다시 정리해고에 노출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사회안전망이 갖춰진 나라라면 고용유연화에 나름의 합리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정리해고 요건 완화는 어불성설이다.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면 정부가 마르고 닳도록 얘기하는 경제활성화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

기업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흑자를 내면서도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행태도 심각하다. 생명보험사들의 경우 단순히 계량지표만으로 경영위기를 과장해 희망퇴직을 종용하면서 정리해고를 강행한다. 법원도 사용자들이 내놓은 경영상의 몇 가지 문제점만 보고 정리해고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정리해고 직전 900억원 이상 흑자를 냈는데, 2004 회계연도 당기순이익을 보면 263억원으로 뚝 떨어진다. 당시 흥국생명이 유가증권 부실을 털어낸 탓에 당기순이익이 감소했다. 그런데도 흥국생명은 당기순이익 감소를 이유로 그해 12월에 217명을 강제로 퇴사시켰다. 이듬해 1월에는 21명을 정리해고했다. 일반적인 경영지표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사용자가 정리해고를 남용하지 못하게 강제하고, 잘못된 정리해고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정말 모를까

 방운제
일진전기 반월공단
노조 위원장

지난 10월 일진전기 반월공단노조 조합원들은 회사로부터 정리해고를 통보받았다. 회사가 어려워 통신사업부를 철수할 테니 직원들은 희망퇴직을 하라는 얘기였다.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는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말이 좋아 희망퇴직이지 43명의 직원이 정리해고를 당한 것이다. 재계순위 50위인 일진그룹이 밝힌 긴박한 경영상 이유란 무엇일까. 43명의 직원을 거리로 쫓아낼 긴박한 이유가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모호하기만 하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도 두루뭉술하다. 노동자는 회사 경영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 회사가 거짓말을 해도 알 수 없다. 근로기준법이 정리해고 요건을 모호하게 규정한 것은 정리해고를 회사의 재량에 맡겨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한다고 한다. 지금도 회사 재량권이 크다. 당장 경영상황도 모른 채 거리로 쫓겨나는데 정리해고 요건을 더 완화하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눈앞이 캄캄하다. 정부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 요건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부당해고가 됐을 경우 빠른 시일 안에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고령의 나이에도 재취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가족들은 정신적인 고통과 경제적인 고통을 받으며 생활한다. 소송으로 부당해고를 확인받으려면 너무나 긴 시간이 걸린다. 이런 현실을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정말 모를까. 알면서도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정부를 이해하기 어렵다. 정리해고 요건을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

정규직 과보호론, 근거 없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전 국민의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도 “내년에 구조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거들었다.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은 “해고를 쉽게 하는 것은 유연화 과정의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고 사실상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정부 고위공직자들 중에서도 같은 현상을 놓고 처방이 다르다.

정규직의 해고가 과연 어려운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노동시장 지표를 비교연구한 보고서(2013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정규직 집단해고에 있어 34개 비교대상국 중 4번째로 쉽다. 쌍용차의 경우를 보더라도 정리해고의 전제조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폭넓게 인정돼 165명의 노동자가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다. 비단 정리해고만이 아니다. 대기업에서는 고용조정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절규가 과장된 것이 아닌 이유는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유연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덴마크의 경우도 유연성의 저변에는 안정성이 자리 잡고 있다. 최장 4년간 주어지는 실업급여의 수준이 재직시 임금의 90%로 크게 떨어지지 않고 훈련을 통한 직장이동이 수월하기 때문에 유연성에 대한 노동자들의 거부감이 크지 않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약속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심정이 다르다는 게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박근혜 정부는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고용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 정치권은 법 개정을 통해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한 것처럼 근로기준법상 ‘긴박한 경영상 이유’를 ‘경영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 등으로 구체화해 정리해고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

사회안전망 취약한 한국, 일자리라도 지켜 줘야

강훈중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장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는 경영상 긴박한 이유가 있을 때만 할 수 있다. 긴박한 이유가 있더라도 노동시간단축이나 임금인상 억제, 순환휴직과 같은 다양한 해고회피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했음에도 경영상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정리해고를 한다. 그러나 법원은 미래에 닥칠 경영상 위기까지 긴박한 이유로 받아들이면서 정리해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지금은 괜찮은데 앞으로는 어려워질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기업이 없다.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

경영계는 해고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이 매우 취약하다.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생존수단을 빼앗긴다는 말과 동의어다. 그래서 해고는 살인이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지 않고 고용유연화만 외치는 것은 너무 냉혹한 처사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국정목표로 세웠다. 고용률 70%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 일자리를 지켜야 달성할 수 있다. 해고요건을 강화하는 것만이 정부가 스스로 세운 목표에 부합하는 길이다.

정리해고 요건 이미 바닥, 강화할 일만 남아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

정부는 ‘정규직을 손쉽게 해고 못해서 비정규직이 늘어난다’고 주장하지만 진단이 틀렸다. 오히려 외환위기를 거치며 정리해고가 늘었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비정규직이 양산됐다고 진단하는 것이 맞다. 따라서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관련해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고 불순한 것이다.

노동시장이 경직됐다는 주장도 현실 왜곡이다. 명예퇴직·권고사직·정리해고는 불안정 고용사회의 일상적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삼팔선·사오정·오륙도란 자조 섞인 유행어도 이젠 더 이상 새로운 유행어가 아닐 정도로 고용불안이 만연해 있다.

한국의 정규직 고용보호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3위로 하위권이다. 평균 근속연수는 8.1년(비정규직을 합하면 5.1년)에 불과하다. 장기근속자 기준도 10년 이상으로 낮아졌다. 그 비율 또한 겨우 18.1%로 OECD 꼴찌다.

그나마 근로기준법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라고 정리해고 요건을 제한했지만 실효성은 없다. '긴박한 경영'의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기업 시각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심지어 미래에 닥칠 경영상 이유로도 정리해고가 허용되고(콜텍 등), 흑자상태에서 정리해고가 이뤄지기도 한다.

이렇게 해고가 손쉽다보니 구미 KEC 같은 악덕 사업장에서는 노조를 없앨 목적으로 정리해고를 악용한다. 게다가 이를 방어해야 할 법원조차 해고를 고유 경영권으로 인정하며 사용자들의 판단을 거의 수용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지난 대선에서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리해고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약속하더니 이제 와서 뒤집으려 한다. 정리해고 요건 강화, 더 이상 미룰 일도 약속을 뒤집을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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