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나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이다. 11월19일 집으로 민주노총 제8기 임원선거의 공보물과 투표용지가 도착했고, 11월28일 부재자 우편투표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공보물에 담긴 각 선본의 공약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비정규 노동자 운동을 해 온 사람으로서 보기에 모든 선본이 ‘비정규직 조직화’를 주장하지만, 구체적 전망과 경로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는 투표에 많은 국민이 참여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니다. 투표를 해도, 그리고 누가 당선이 돼도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투표를 하는 행위가 우리 사회와 내 삶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을 체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다르다.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유권자인 조합원 과반수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선거 자체가 무산된다. 공직선거보다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를 더 무겁게 정하고 있다. 그리고 한 번 선출되면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과 달리 민주노총 임원은 대의원대회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조합원이 통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우리 사회의 조직체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담보하고 있는 곳이 노동조합인 셈이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는 오직 구성원의 참여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민주노총으로 표상되는 민주노조운동이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시기다. 나의 일터에서 임금과 고용,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보루는 법이 아니라 노동조합이다. 민주노조운동이 성장하지 않았다면 지금 누릴 수 있는 법·제도적 보호 등은 공문구에 불과했을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몸을 불살랐던 1970년과 지금의 근로기준법이 큰 틀에서 차이가 없지만 현실에서 다른 힘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14년 현재 노조가 있는 사업장과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노동조건이 똑같은 노동법제 아래에서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민주노조운동을 이윤 추구의 최대 방해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이고, 기업의 성장을 곧 국민경제의 발전으로 동일시하는 게 정부다. 박근혜 정부가 연일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정규직 과보호 완화를 떠들어 대는 것은 실제로 노동법 보호조치들을 완화하겠다는 목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삶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불만을 조직노동자에게 돌리기 위함이다.

현재의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총은 노동자 내부의 격차와 차별이 확대되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고 비정규 노동자를 비롯한 다수의 노동자들을 조직하지 못함으로써 이러한 고립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민주노총 최초의 직선제 임원선거에 출마한 모든 선본은 이 점을 인식하고 있고, 구체적이진 않더라도 나름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고, 최선의 선택지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최선이 아니면 차선, 그것도 아니면 차악, 나아가 기권의 방식이라도 조합원이라면 민주노총 임원선거 투표에 참여해야만 한다. 노동자의 삶을 방어하고 보다 많은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이, 민주노총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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