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훈 변호사
(법무법인 덕수)

대상판결/ 서울고등법원 2013누53679 판결

1. 사건의 경위

A는 사회적 일자리 지원 사업 등을 운영하는 재단법인이다. B는 A재단에 2010년 10월26일께 입사해 사회적 기업 설립지원팀장 등으로 근무하던 기간제근로자인데, A재단은 2012년 9월24일 B에게 2012년 10월25일 근로계약 기간이 종료된다는 통보를 했다(이 사건 통보).

이에 B는 이 사건 통보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부당해고구제 신청을 했는데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13년 1월24일 정당한 계약기간 만료 통보라고 봐 B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B가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 재심신청을 하자, 중노위는 2013년 5월22일 B의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됨에도 부당하게 근로관계를 종료했다고 판단해 B의 재심신청을 받아들였다(이 사건 재심판정).

A재단은 이 사건 재심판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서울행정법원은 2013년 11월21일 판결을 통해 A재단의 청구를 인용하며 B에 대한 이 사건 통보가 정당하다고 봤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11월6일 A재단의 청구를 기각하고 이 사건 재심판정이 정당한 것이었고 이 사건 통보가 부당해고임을 인정했다(이 사건 판결).

2. 이 사건 판결의 주요 내용

A재단의 기간제근로자 B에 대한 이 사건 통보가 부당해고에 해당하는지는 크게 두 가지 쟁점과 관련된다. 첫째 ‘B에게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갱신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둘째 ‘이 사건 통보의 근거로 사용된 A재단의 인사평가가 합리적이고 공정한 것이었는지’ 하는 점이다.

근로자 B에게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인사평가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것이었다면 부당해고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A재단이 이 사건 통보에 앞서 근로자 B에 대해 했던 인사평가는 절차적으로 매우 부실한 것이었고, 내용적으로는 극히 불공정한 것이어서 제1 쟁점인 갱신기대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가 항소심의 주된 쟁점이었다.

이미 대법원은 기간제근로자의 경우에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와 그 효과를 설시한 바 있다. 근로계약 갱신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당해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어 근로자에게 그에 따라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이에 위반해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로써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2011. 4. 11 선고 2007두1729 판결).

문제는 2006년 12월21일 제정돼 2007년 7월1일부터 시행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라, 위 법률 시행 이후에 체결된 기간제근로자에게도 갱신기대권이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기간제근로자와 사용자의 근로계약의 체결 시기가 기간제법 시행 전인지, 후인지가 문제되는 것은 기간제법 시행 후에는 근로자에게 인정되는 갱신기대권이 더 좁게 해석돼야 한다는 기존의 일반적인 기간제법 해석에 따른 결과였다.

실제로 기간제법 시행 후에 체결된 기간제근로자들의 경우 갱신기대권은 좀처럼 인정되지 못하고 있었다(서울고등법원 2011. 8. 18 선고 2011누9821 판결 등 기간제법 시행 이후 근로계약을 체결한 기간제근로자의 갱신기대권을 정면에서 다룬 대법원 판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앞선 대법원 판결 사례의 근로자도 근로계약의 체결은 기간제법 시행 이전에 이뤄졌다.

기존 기간제법 해석과 하급심 판결에 따르면 기간제법의 시행으로 기간제근로자들의 갱신기대권이 형성되지 못하게 하는 결과가 도래하고, 그 결과 기간제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입법된 기간제법이 오히려 기간제근로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기간제법 시행 후 체결된 기간제근로자의 갱신기대권을 부정한 서울고등법원 2011누9821 판결(참고판결)은 기간제법 제4조제2항을 강행규정으로 보고 기간제법이 기간제 근로계약의 재체결에 2년의 기간 제한을 할 뿐 어떤 제한을 두지 않고 있으므로, 기간제법 시행 이후에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2년의 기간 내에서 계약기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도 있고 2년을 초과하는 때에는 해당 기간제근로자에게 근로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의 지위가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기간제법 시행 이후에 신규로 체결되는 기간제근로자에게는 2년을 초과하는 갱신기대권이 인정될 수 없다고 봤다.

위 참고판결은 기간제근로자의 근로계약을 민법상 계약자유 원칙의 연장선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등한 지위의 사용자와 근로자가 근로계약기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간제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계약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경우 기간제근로자는 언제나 사용자에 대해 열등한 지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열등한 근로자를 위해 노동법이 존재한다. 노동법은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될 경우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근로자를 ‘위해’ 존재하고, 계약자유의 원칙을 넘어 일정한 제약을 사용자에게 부과하기 위한 사회법이다.

특히 기간제법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의 폭발적인 증가와 그로 인한 사회적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나름의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제정된 것이었다. 2006년 12월21일 제정된 기간제법은 입법 취지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기간제근로자·단시간근로자 등 비정규 근로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이들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와 남용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사용자의 남용행위를 규제함으로써 이들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보호하고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입법 취지에 따라 기간제법을 해석하면 참고판결과 같이 기간제법 제4조는 기간제 사용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사용자의 기간제 사용을 제한하는 데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갱신기대권 법리는 기간만료의 법리보다 우선해 적용돼야 한다. 갱신기대권을 인정하면서 갱신거절을 제한하는 법리는 해고를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제23조제1항을 근본적인 근거로 갖기 때문이다.

이 사건 판결은 참고판결과 달리 기간제법의 위와 같은 입법 취지와 그에 대한 정당한 해석에 따라 기간제법 시행 후에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게도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명시했다. “기간제법의 시행으로 사용자가 2년의 기간 내에서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고, 기간제근로자의 총 사용기간이 2년을 초과할 경우 그 기간제근로자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되더라도, 위 규정들(기간제법 제4조제1항 및 제2항)의 입법 취지가 기본적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의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근로자의 지위를 보장하려는 데 있는 점을 고려하면, 기간제법의 시행이 곧 재계약의 정당한 기대권의 형성을 막는다거나 이미 형성된 재계약의 기대권을 소멸시키는 사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이 사건 판결에서 근로자 B의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는 세부 근거로, A재단의 경우 일반직 기간제근로자는 대부분 정규직 근로자로 전환된 사례가 존재하는 점, B가 근로하고 있는 동안 A재단이 정규직 전환 약속을 계속 해온 점, B의 업무가 A재단의 고위직에 해당하고 정규직의 업무와 동일한 점 등이 제시됐다.

3. 기간제법 개정을 위해

이 사건 판결은 기간제법 시행 이후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라 할지라도 갱신기대권이 인정됨을 최초로 확인한 소중한 판결이다. 판결이 어떤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거나 법해석을 무리하게 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사건 판결은 기간제법의 입법 취지인 기간제근로자의 보호라는 근본적이고 중요한 목적을 재확인한 것이었으며 기간제법의 해석을 입법자의 입법 의도와 취지에 맞도록 지극히 합리적으로 행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 판결이 우리 사회 무수한 기간제근로자들에게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곧바로 부여할 것 같지는 않다. 이 사건 판결의 전제가 되는 여러 사실관계와 조건의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2007년 기간제법 시행 이후 우리 노동현실은 참혹하기만 하다. 최근 언론에 수차례 보도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 비교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비정규직이 1년 뒤 정규직이 되는 경우는 11% 정도에 불과하고, 3년 뒤에도 22% 정도에 불과해 OECD 16개 국가 중 정규직 전환율이 최하위로 확인됐다. 얼마 전 한 경제단체에서 일하던 기간제근로자가 2·3개월 쪼개기 근로계약을 견디며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다가, 성희롱을 당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은 우리 사회 기간제근로자들의 노동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기간제법이 비정규직 증가를 막지 못하고 있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가장 큰 문제는 기간제법에 사용자의 사용사유 제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됐다. 기간제법을 기간제근로자들을 위한 진정한 ‘보호법률’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간제근로자를 고용할 때 합리적 이유가 있을 경우만 가능하도록 사용사유 제한을 명시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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