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미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현장)

영화산업협력위원회가 실시한 ‘2012년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영화 스태프의 1주 평균 근로시간은 75시간, 1일 평균 야간근로시간은 5.5시간이다. 주당 5일을 초과해 일하는 비율이 52.7%나 되고 정기주휴일이 부여된 비율은 32.4%로 현저하게 장시간 노동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스태프의 약 40%가 임금체불

그런데도 영화산업에서 벌어들이는 연평균 수입은 1천107만원(감독급을 제외할 경우 872만원)에 불과했다. 이들의 실제 근로시간에 따른 시간당 임금은 최저임금의 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더욱 큰 문제는 조사 대상자의 39.6%가 임금체불을 겪었다는 점이다.

필자는 영화산업고용복지위원회 실무교육센터에서 영화 스태프들을 상대로 임금체불 예방에 관한 강의를 진행해 왔는데, 강의시간에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바로 “영화산업이라는 좁은 바닥에서 신고나 고소를 했다가 찍히고 소문나서 앞으로 일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였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금체불 등 부당한 대우를 겪었던 스태프들의 76.8%는 피해를 감수하고 기다리거나 포기했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영화인신문고에 임금체불로 신고한 많은 신고인들은 체불을 당한 지 반년 만에, 혹은 1~3년 만에 용기를 내서 신고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만큼 제작사라는 갑을 상대로 을인 스태프가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노동자성 부인하는 노동부

소위 ‘찍힐 것’을 감안하고 임금체불에 대응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 진정을 한 스태프들이 있다. 이들의 진정에 대해 노동부에서 노동자성을 인정한 경우도 일부 있었으나, 다수의 경우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대법원에서는 “그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여러 가지 노동자성 판단 징표를 제시했는데 그중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등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큰 사항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했다.

영화 스태프들은 사용자(제작사)가 정한 규율의 적용을 받으며, 사용자로부터 지휘·감독을 받고, 사용자에 의해 근무시간과 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을 받으며 근로의 대가로서 보수를 받는 등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노동자성 인정 기준에 따를 때 노동자로 인정돼야 한다. 그럼에도 노동부에서는 많은 경우 영화 스태프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마도 근로계약서가 아닌 용역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점, 월 기본급여가 없이 계약금과 잔금 형식으로 지급받았다는 점,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납부했다는 점 등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큰 사항들을 근거로 영화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부정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스태프들이 지금도 추위와 싸우며 촬영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다수의 노동부 판단에 따르면 영화촬영 현장에는 노동자가 없다. 몇 개월 전 한 스태프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노동부에서는 제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럼 전 뭔가요.”

국가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영화 스태프의 약 80%가 비정규직이다. 고용불안 속에서 아직도 많은 스태프들이 실제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으로 법정 근로시간보다 2배에 가까운 노동을 제공한다. 실태조사에서는 불규칙한 수입, 금전적 어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39.6%의 스태프가 전직할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체불 등 영화 스태프들이 겪는 부당한 대우에 대한 개선을 위해 영화산업협력위원회는 분쟁중재기구인 영화인신문고를 운영을 하고 있다. 영화인신문고에 분쟁 중인 자로 등재될 경우 노사정이행협약에 따라 각종 지원의 제한은 물론 투자·배급·상영이 금지된다. 더욱이 2014년 10월29일 체결된 제3차 노사정이행협약에서는 전국영화산업노조, 영화산업의 사용자 단체들과 대기업들, 영화진흥위원회,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16개 단체가 참여해 영화산업에 만연한 임금체불을 근절하기 위해 ‘영화근로자 임금 별도관리’제도를 도입했다. 표준근로계약서 작성과 4대 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진정한 영화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영화 스태프에 대한 보호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영화산업의 제작사, 투자·배급사들마저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임금체불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아직까지도 영화 스태프를 실질을 외면한 채 형식적인 요소만으로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산업내 노사협약을 통한 보호만으로는 이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영화 스태프들이 당당하게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개별계약이 아닌 통계약(팀별계약), 주휴일 미부여, 시간외수당 미지급이 엄연한 불법이라는 점을 제작사와 스태프가 모두 인식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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