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월7일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분신사건으로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주목받고 있다. 경비원은 감시·단속 업무보다 각종 청소·주차대행·택배물품 배달·민원서비스 업무를 많이 한다. 입주민의 과다한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어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좁은 공간에서 24시간 맞교대제를 기본 근무체계로 하기 때문에 장시간 야간노동에 대한 상시적인 부담과 피로가 존재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감시단속직 노인근로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신체적 폭력경험이 있는 아파트 경비원은 5.36%, 언어적·정신적 폭력을 경험한 경비원은 35.11%로 나타났다. 또한 영남의대학술지 제16권제2호에 실린 ‘아파트 경비원의 건강상태와 관련요인’ 논문에 따르면 182명의 아파트 경비원 중 97명이 소화기장애 증상을 겪고 있었다. 83.5%는 한 가지 이상의 신체화 증상을, 79.7%는 한 가지 이상의 우울증상을 겪었다.

기존 조사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경비원의 가장 중요한 직업병은 무엇보다 '뇌심혈관계질환과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질환'이다. 그럼에도 이들 두 상병은 산재승인을 받기 어렵다. 일단 뇌심질환이 업무상질병으로 승인되기에는 넘어야 할 벽이 높다. 근로복지공단의 지침 때문이다.

공단의 뇌혈관질병·심장질병 조사 및 판정지침(2013년 7월31일)을 보면 만성적 과로의 기준인 발병 전 12주 동안의 업무시간이 1주간 평균 60시간이다. 그런데 경비노동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판단지침을 추가하고 있다.

즉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60시간(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면서 비교적 업무강도가 낮은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업무시간과 함께 업무량·업무 강도·책임 등 업무 부담 요인을 고려해 평가, 경비직 등 감시적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본연의 업무와 함께 청소·주차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병행하는 경우에는 병행 업무의 내용 및 그 업무의 부담 정도, 수면의 시간 및 장소의 확보 여부, 휴게시설 유무 등을 고려하여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경비원의 근로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라도 '노동강도가 낮다'는 이유로 거의 불승인 처분이 되고 있다.

경비노동자의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질환은 산재 신청이나 승인 사례가 극히 드물다. 공단은 상병 발생 전 6개월 기간 내 업무적 스트레스 요인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조사하고 있다. 그리고 당해 노동자의 의견뿐만 아니라 사업주의 의견 또한 병행해서 조사하고 있다.

신현대아파트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비노동자가 정신질환으로 상병이 발생하는 이유는 고객(입주민)과의 갈등 때문이다. 을의 지위에 있는 용역업체는 경비노동자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재해요인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업체와 입주민과의 대결에서 병의 위치에 있는 경비노동자가 재해요인을 홀로 입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상황 탓에 정신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하기 이전에 거의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단은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 지침(제2014-23호)상 감정노동 직업군에 경비노동자를 포함하고 있지도 않다. 부실조사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거의 혼자 근무하는 현행 제도에서 목격자를 찾기도 어렵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업주와 입주자대표회의의 입장에 반한 진술을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비노동자 직업군에서 발병하는 가장 중요한 두 질병인 뇌심질환과 정신질환이 실무상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될 수 없고, 신청조차 거의 불가능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감시·단속적 노동자를 사실상 방치하는 지금의 제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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