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기자

신환섭(49·사진) 전국화학섬유노조 위원장을 노조 사무실에서 볼 수 있는 날은 1주일 중 하루나 이틀뿐이다. 나머지 날들은 대부분 지역 사업장을 찾아다니며 교육을 하거나 현장 간부들을 만나며 보낸다. 그는 "다들 현장이 죽고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실제 가 보면 그렇지 않다"며 "현장에 공을 들이면 그만큼 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지난달 화섬노조 위원장에 당선됐다. 3선 위원장이다. 지난해 1월부터는 민주화학섬유연맹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임기 3년간의 목표는 현장 조직력을 복원하고 제2의 산별노조운동을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정국이 노동자에게 불리해지고 복수노조로 인해 현장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어려울수록 노조가 현장에서부터 기초적인 힘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 노조사무실에서 신 위원장을 만났다.

"산별사업·조직사업으로 현장을 튼튼하게"

노조의 산별전환사업은 정체기를 맞고 있다. 최대 규모이지만 산별 미전환 조직인 LG계열사 지회들과 꾸준히 접촉하고 있지만 사측의 현장 통제 등 장애요인이 만만치 않다. 금속노조와 2009년부터 논의해 온 제조산별 건설도 눈에 띄는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신 위원장은 "조직을 튼튼하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통합지도부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형태를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산별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산별운동을 선포한 지 1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산별과 기업별 노조가 하나가 되지 못한 채 함께 존재하다 보니 조직 내부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업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점도 있어요. 임기 3년 동안 최대 과제는 산별전환사업을 완성하는 겁니다. 최종 목표는 엘지그룹사 조직을 산별로 전환시켜 산별사업을 완성하는 것이죠."

노조는 지난해부터 신규노조 조직사업을 벌여 왔다. 그 결과 이달 현재까지 10여개의 신규조직을 만들었다. 그런데 복수노조가 허용된 뒤 노조가 설립돼도 교섭권을 갖지 못하고 사측에 의해 와해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타임오프로 인해 전임자나 교육시간을 확보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이와 관련해 노조는 간부 역량강화 교육 외에도 자체 교육시간이 부족한 신규노조를 위한 별도 집중교육을 하고 있다. 노조를 지도하고 지원하는 활동가를 양성하는 것도 향후 과제다. 노조가 신임간부교육과 활동가 교육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노조 지원을 위한 매뉴얼 제작을 고민하는 이유다.

신 위원장은 "노조 설립 상담에서 교섭까지 지도하고 지원해 주지 않으면 신규노조가 생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본은 노조 대응 매뉴얼이나 경총 지침을 갖고 대응합니다. 반면 노조는 사업장마다 특성이 틀린 데다 명확한 지도 매뉴얼도 없어요. 활동가 양성과 동시에 노조 상담부터 교섭까지의 과정을 매뉴얼로 만들 생각입니다."

지역과 함께하는 새로운 시도, 화학물질알권리법

신 위원장은 화학물질 관리와 지역사회 알권리법·조례 제정을 핵심 사업으로 꼽았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인 만큼 화학물질 안전 문제는 노조의 중요한 화두다. 올해는 지역 주민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는 "세월호 사고를 보며 지역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한 공장에서 1년에 십수 명이 안전사고로 죽는데도 공장을 계속 돌리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예요. 세월호 사고도 그 연장선상에 있죠. 법적 규제를 하지 않으면 이제는 모두가 위험합니다. 사실 공단과 주거지가 뚜렷하게 구분돼 있지 않아요. 공단에서 사고가 나면 그 옆 아파트가 피해를 당하는 상황입니다."

신 위원장은 "발암물질 없는 현장만들기 선언을 단체협약에 반영하고 있지만 노조만 안전 규제를 외치면 노조만의 문제로 규정된다"며 "지역주민과 함께 들고일어나면 거부할 수 없는 만큼 지역과 노조가 함께하는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화학물질 관련 법·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9월부터는 지역 어린이집이나 학교 주변 유해화학물질 위험정보를 제공하는 '우리동네 위험지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중이다.

"현장에서부터 탄압 막아 내야"

최근 들어 법과 제도가 노동자에게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 대법원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를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화학연맹 소속 코오롱지회 정리해고 노동자는 20일이 넘도록 단식을 이어 가고 있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이다.

신 위원장은 "박근혜 정권은 정말 갈 때까지 간 정권"이라며 "노조가 기본적인 조직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그가 현장을 바쁘게 찾아다니는 까닭이다.

"코오롱부터 쌍용차까지 대법원은 한 번도 노조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은 정리해고 요건 완화까지 언급할 정도로 철저하게 노동자를 탄압하고 있어요. 자기 현장에서 스스로 조직력을 복원해 내고, 밀려오는 자본과 정권의 탄압을 자기 현장에서 막지 못하면 바깥에서 몰아치는 탄압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단위사업장 조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대정부 투쟁을 할 동력을 어디서 모으겠습니까. 크든 작든 스스로 싸워 보며 제 힘을 확인하고 강화할 수 있는 노조를 만들어야지요. 총연맹과 산별조직이 현장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신 위원장은 올해 1월 결성된 제일사료지회의 사례를 들었다. 그가 노조 설립 초기부터 교육을 주도했던 곳이다.

"공장이 익산과 대전으로 나뉘어진 곳인데, 지난달 익산공장이 부당징계 철회 투쟁을 벌이자 대전공장에서도 함께 싸웠어요. 결국 회사가 징계를 축소했죠. 인사권이 아무리 사측의 고유권한이라 해도, 자기들이 불리해지면 바로 철회합니다. 작은 사례지만 피하지 않고 스스로 투쟁해 보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싸워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갈 때 정리해고도 막아 낼 수 있습니다. 당장 법을 바꾸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그런 교육을 많이 하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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