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가 결국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시장 유연화로 수렴되고 있다. 박 대통령을 필두로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정부·여당이 한몸으로 움직이고 있다. 재계도 경제위기론을 설파하며 거들고 나섰다.

표현도 거칠다. 최근 청와대와 정부가 "규제들을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겠다"(박근혜 대통령), "정규직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 인력을 못 뽑는다"(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말을 던지자 27일 새누리당과 재계가 화답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기업 투자 확대하려면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대기업노조가 임금격차를 키운다"고 주장했다. 당·정·청이 재계의 숙원인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총공세를 펼치는 모양새다.

◇여당·재계 정규직 '정조준'=김무성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디플레이션 우려를 떨쳐 버리기 위해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 내야 한다"며 "기업 투자 확대를 위해 고용시장 유연화 등 노동시장 개혁과 노사·노노 간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노 간 대타협"을 언급한 점이 흥미롭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정규직 노조를 겨냥했다. 이 최고위원은 "법으로는 해고가 가능하지만 강성노조의 압력 때문에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하다"며 "주로 강성노조가 대기업에 있어 임금인상 압력을 가중시키고, 그 부담이 중소 협력기업 근로자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최 부총리가 지난 25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정규직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서 인력을 못 뽑는 상황"이라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재계의 요구는 구체적이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포럼에서 노동규제가 도마에 올랐다. '한국경제를 긴급 진단한다'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한 김종석 전 한국경제연구원장(홍익대 교수)은 "우리나라 노동고용제도는 정책적 수요와 반대로 정규직이 우선이고 파견도 안 된다"며 "오히려 가진 자를 보호하려고 일자리 필요자들의 일자리를 막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기업투자가 위축되는 이유로 대기업 중심 노동운동을 꼽았다. 김 부회장은 "임금이 높고 근로조건이 좋은 대기업 노조가 노동운동을 이끌면서 임금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해 정규직의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규직 보호 완화론'이 처음 나온 얘기는 아니다. 올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이어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부 실행과제에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정규직 보호 합리화'로 담겼다. 기재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정규직 보호 합리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었는데, 최 부총리 취임 후 속도를 낸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사회적 대타협? 전쟁 선포!"=흥미로운 대목은 최경환 부총리나 김무성 대표가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정규직 과보호론'을 피력한 자리에서 "(노사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조금씩 양보해 윈-윈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고, 김 대표도 이날 "한쪽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고통분담을 통한 사회적 대타협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말에 발끈했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전쟁 선포 같은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인다"며 "정부가 재계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따라 읊어 대는 건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여당이) 사회적 대타협을 얘기하는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는 어떠한 사회적 대화나 논의도 가능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최경환 부총리나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그간 정부가 추진해 온 소득주도 경제성장 정책과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이라며 "결국은 내수가 위축돼 경기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반발에 부딪쳐 실행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박사는 "정부·여당이 안 될 일을 가지고 사회적 분란을 만드는 의도가 궁금하다"고 꼬집어 말했다. 그는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이 시행되면 결국 가계부채를 늘려 노동시장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며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말장난이었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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