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첫 임원직선제를 앞두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4명의 위원장 후보를 인터뷰해 연속으로 싣는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4명의 위원장 후보들에게 같은 취지의 질문을 했음을 알린다.<편집자>

 

▲ 정기훈 기자

남들이 모두 "안 된다"를 외칠 때 "된다"를 외치는 이들은 언제나 고독하기 마련이다. 기호 3번 허영구(58·사진) 위원장 후보에게 '직선제'는 신념이었다. 대다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던 직선제를 끊임없이 요구하며 민주노총 위원장실 점거농성까지 벌인 그를 보며 어떤 이는 "지독하다"고 혀를 차기도 했다. 하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결국 민주노총 첫 직선제 후보가 됐다.

허영구 후보는 95년 민주노총 결성 과정에 참여했고, 부위원장을 다섯 번 지냈다. 허 후보는 "민주노총은 더 낮은 곳을 향해야 한다"며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 100만명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롭고 제대로 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합정동 국민카페에서 허 후보를 만났다.

- 임원직선제를 주장해 성사시켰는데. 어떤 각오로 이번 선거에 임하고 있나.

"98년 민주노총 2기 집행부가 직선제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후 16년이 지난 올해 드디어 직선제를 치르게 됐다. 대다수가 직선제에 반대했지만 나는 2년 전부터 직선제 실시를 요구하며 대의원대회 때마다 캠페인을 벌였다. 민주노총 위원장실 점거농성까지 한 끝에 직선제를 이뤄 냈다. 직선제를 위해 고독한 투쟁을 했던 후보로서, 첫 직선제에 위원장 후보로 출마하게 돼 개인적으로 영광스럽다. 민주노총을 투쟁하는 조직으로 만들고 대표 노동운동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27년 노동운동 경력을 쏟아붓겠다는 의지로 출마했다."

- 다른 후보와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강점이 있다면.

"민주노총 창립 때부터 노동법 개정 총파업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투쟁, 발전노조 파업에 관여했다. 주요 투쟁의 핵심 기획자로 투쟁을 조직했다. 한눈팔지 않고 오직 노동운동 한길로 27년을 달려왔다. 어떻게 혁신해야 하고,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 선거운동이 중반을 넘어섰지만 현장에서 선거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민주노총이 선거관리에 급급해 선거홍보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직선제를 계속 유예하고, 직선제 기금을 전용하다 보니 조합원 개개인에게 공보물조차 보낼 수 없을 정도로 재정이 어렵다. 하지만 첫 출발이 어찌 됐든 민주노총의 선거기간이 대통령 선거보다 길고, 투표기간도 일주일이기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조합원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원의 힘으로 직선제를 쟁취하지 않았나. 조합원들이 선거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운동의 역동성을 만들어 낼 것이다."

- 67만명에 달하는 조합원이 투표권을 행사하지만 후보들의 정책공약은 여전히 어렵고 딱딱하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본인의 핵심 공약을 설명한다면.

"슬로건을 '옳은 길을 간다. 그래야 민주노총'이라고 정했다. 노동운동에서 옳은 길은 따뜻한 연대를 통해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일반 노동자들이 볼 때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상층에 있는 노동자들이다. 죽어라 일해도 100만원밖에 못 받는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투쟁, 공무원연금 투쟁에 연대할 수 있겠나. 100만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인상을 걸고 총파업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노총이 아래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한다. 앞으로 민주노총은 운동의 초점을 외환위기 이후 세대가 직면해 있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비정규 불안정 노동에 맞춰야 한다. 그것이 옳은 노동운동이다."

"기획은 중앙에서, 실행은 지역에서"

- 산별노조 중심 조직전략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밝혔는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유럽에서 생긴 산별노조는 산업자본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의 연대체다. 하지만 진짜 사장이 누군지 찾아 헤매는 오늘날의 금융수탈자본주의 시대에서는 개별화된 산별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서라도 지금 같은 산별체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3~5개 대산별로 축약하고 총연맹과 산별 중앙에 전략가를 배치해 전략·정책·기획조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산별 지역지부는 민주노총 지역본부에 편제하면 된다. 지역본부가 투쟁과 조직을 총괄하게 해야 한다."

- 민주노총 조직확대를 위해 비정규직 조직화는 중요한 과제다. 어떤 전략을 갖고 있나.

"지금처럼 정파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려고 경합하거나 갈등하고, 총연맹 차원의 전략 없이 산별단위나 지역단위에서 조직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조직확대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조직 내 갈등으로 결국 민주노총 투쟁의 발목을 잡게 된다. 전략조직화가 필요하다.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 전략조직화본부를 만들어 상근 활동가들을 대거 편입시키고 산별과 지역본부에 파견해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할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조직되든 민주노총에 한 번 가입하면 평생 그 노동자의 주소지에 따라 지역에 소속되고 직업에 따라 산별에 편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00만 비정규직을 조직화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천명의 전략조직 활동가가 필요하다. 특정사업장이나 업종을 전략적으로 선택해 조직화해야 한다. 500만명으로 추산되는 알바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전략적으로 50만명의 요양보호사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려면 재정이 많이 들어가는데. 재정대책을 소개한다면.

"조합비 납부 기준을 현행 통상임금 1%에서 실질임금 총액 1%로 재산정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조합비가 3천500억원 정도 걷힐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모인 조합비로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가진 해고노동자들에게 최소생계비를 지원하면서 이들을 전략조직 활동가로 규합할 것이다."

"당선되면 재정자립, 천막사무실도 각오"

- 위원장에 당선되면 민주노총 건물 임대료로 사용되는 정부보조금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는데.


"운동에도 도덕성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대정부 투쟁을 한다면서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 사무실을 운영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 지난해 민주노총 침탈사건을 보자. 우리는 '어떻게 정부가 총연맹 사무실을 침탈할 수 있냐'고 항의했지만 박근혜가 보기에는 '우리가 돈을 대주니 우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다. 당선되면 당선 1주일 내로 방을 빼고, 월세 사무실이라도 준비할 생각이다. 그것도 어려우면 천막사무실에서 시작하겠다. 지역본부도 장기적·단계적으로 독립시킬 계획이다."

- 조직혁신의 일환으로 제기한 사무총국 전원 정무직화 공약이 눈에 띈다.

"대다수 사무총국 활동가들이 정파에 소속돼 있다. 어떤 후보가 당선돼 운동노선을 펼쳐 가는데 기존에 있던 분들이 각자 자기 정파의 영향을 받아 제대로 일을 하지 않거나 다른 일을 하고 다닌다면 도덕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정파와 관련이 있거나 정파의 이해로 채용된 사람이라면 집행부가 바뀌면 나가 주는 게 정치적 도의이자 예의다. 사무총국은 책임 있게 사업을 기획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해야 한다. 처음부터 동상이몽인 사람들이 모이면 토론만 하다 끝날 수밖에 없다. 물론 생계형 활동가나 정파와 관련 없는 분들은 당연히 고용을 보장할 것이다."

-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 결의에 따라 중앙단위 노사정 대화에 불참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발언력을 축소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지금 같은 상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해체해야 한다. 한 주체가 빠져 있는데도 노사정위에서 합의하면 국회가 입법을 한다. 노사정위는 투쟁을 약화시키고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합의를 강제하는 폭력적 기구다. 노사정위에 안 들어가면 대화를 안 하는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다. 민주노총이 노정교섭을 할 수 있는 다른 틀을 제시해야 한다. 비상설기구로서 토론과 공론의 장 역할을 하고, 상호 간사를 두고 의장도 돌아가면서 할 수 있는 기구가 있다면 언제든 대화에 참여할 생각이다."

- 올해 개별 사업장 임금·단체협상에서 통상임금과 임금체계 개편 문제가 쟁점으로 다뤄졌다.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어떻게 보고 있나.

"전체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줄이며, 일자리를 나누는 프로그램 속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얘기해야 한다. 지금의 임금체계는 경기에 따라 임금이 오르내리는 경기순환형 임금체계다. 경기가 좋으면 야근·특근수당이 있다가 경기가 안 좋으면 없어진다. 연봉 7천만~8천만원을 받는 노동자가 경기가 안 좋으면 4천만원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경기 좋을 때 많이 벌어 두자'는 인식이 확산돼 버렸다.

노동자들이 더 많이 벌겠다고 나서면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는다. 일자리를 나누기도 어렵다. 법으로 노동시간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주당 30~35시간 일해도 현재 수준의 임금을 보장받으려면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 증액 투쟁이 단순히 알바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임금도 최저임금 투쟁과 맞물려 있다.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노동시간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일자리도 나눌 수 있다."
 

기호 3번 허영구 위원장 후보는


민주노총 1·2·4·5기 부위원장 및 3기 수석부위원장

한미 FTA와 비정규직악법 저지투쟁으로 구속·해고

전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

현 좌파노동자회 대표·알바노조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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