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준비된 투쟁이냐, 즉각적인 투쟁이냐’, ‘비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 만들 것’

민주노총 위원장 등 임원 후보들의 합동토론회에서 후보들의 말을 인용해서 이런 제목의 기사로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이제 1주일을 앞둔 민주노총 위원장 등 임원 선출을 위한 직선제 선거를 앞두고 있다. 조합원 67만여명이 선거권자인 직선제 선거다.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전개된 이후 최대 규모의 선거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한 선거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이번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단지 민주노총을 넘어 이 나라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노총도 따지고 보면 노동자들의 단결체인 노동조합이다. 단지 단위노조가 아닌 그 최상급의 연합단체라는 점에서 다르다. 이 세상에서 노동자가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다른 노동자들과 조직한 단체가 노동조합이고 그중 한 나라 수준에서 최상급의 단체가 노총이다. 그러니 지금 민주노총 직선제 선거에서는 이 나라 최상급 수준에서 노조운동을 어떻게 조직해서 전개해야 할 것인지 종전까지 해 왔던 모습과 방식을 두고서 근본적인 고민도 해 볼 일이다. 이 나라에서 최초의 직선제 선거니 준비된 투쟁이든 즉각적인 투쟁이든 노동자의 단결체로서 노동조합의 존재형태까지도 한번 거창하게 고민해 보자.

2. 노동자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단체를 이루며 살아가는가. 크게 세 가지 모습이 떠오른다.

① 사람이 있다. 그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한다. 혈연이든 지연이든 또 무슨 관계를 따져 함께한다. 잠시 함께했다가 흩어지기도 하지만, 장기간 함께하기도 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니 그가 필요치 않으면 함께하지 않는다. 일에서든 놀이에서든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그것을 하는 데서 함께다. 일에서든 놀이에서든 혼자서 할 수 있는 그것을 하는 데서 함께여야 한다고 그를 구속하지 않는다. 함께하는 일에서 누구도 그의 의사를 대신하고서 그에게 일하도록 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많은 관계로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다. 여기서는 함께한다고 노동자는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는다.

② 조합원이 있다. 그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노동자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다른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가입한다. 사업장이든 산업이든 또 무슨 조직대상을 따져 노동조합을 한다. 그가 필요해서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가입한 것이니 유니언숍이 아니라면 그는 언제든지 탈퇴할 수가 있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일은 조합원인 그의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에서 그의 일도 그의 의사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대표가 정한다. 노동조합에서 그가 하는 일은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조합원수가 아무리 많아도 대표에게 어떠한 행위를 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선거 때만 되면 대표가 되겠다는 후보자들은 정책을 내걸고 자신에게 투표해 달라고 공약한다. 훌륭한 공약으로 당선된 대표가 당초부터 그 공약을 이행할 의사가 없었어도 그의 당선이 무효로 되거나 취소되지 않는다. 오직 당선될 때의 일반의결정족수보다 더욱 가중된 특별의결정족수(과반수 참석에 3분의 2 이상 찬성)로 해임할 수 있을 뿐이다. 노조법(제16조제2항)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규약에서도 이렇게 정하고 있다. 그러니 그가 지지해서 투표했어도 대표가 노동조합의 일을 어떻게 할지 그는 알 수 없다. 그래도 그는 조합원이니 그의 노동조합이다.

③ 노동자가 있다. 그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어떤 사업을 위해 설립된 회사에 입사한다. 그곳에는 그 외에도 다른 노동자들이 회사의 일을 한다. 노동자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하며 회사가 하라는 일을 한다. 그가 자신이 받는 임금보다 몇 배를 많이 일해 줘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맡아서 할 수도 없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노동자들인데 회사의 주인은 그들이 아니다. 그와 다른 노동자들이 아무리 많이 일하고 아무리 오래도록 일해도 일의 결과물은 그들의 차지가 아니다. 회사의 주인은 회사의 지분, 주식의 소유자고 이들이 회사의 조직과 운영·존폐 등 운명을 결정한다. 대표이사·이사 등 회사의 대표는 회사의 주인이 선임하고 노동자는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회사의 대표 선임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이 일해서 수백 배로 회사를 성장시켰어도 회사의 주인이 폐업하고서 그 회사의 자산을 챙겨가겠다고 하면 회사는 청산되는 것이고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자신의 의사를 밝힐 권한도 보장돼 있지 않다.

3. 세 개의 세상이 있다.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사는 세 가지의 방식이 있다. 그가 주인인 세상과 그가 주인이 아닌 세상, 그리고 그를 주인이라고 부르지만 그가 주인으로 행동할 수 없는 세상이 있다. 인간의 역사는 세 방식이 뒤섞이고 그 방식 사이에서 투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것은 오늘 노동자가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세 가지의 모습이다. 우리는 셋째 세상을 근대가 세워 낸 자본의 세상이라고 해 왔다. 그러나 일하는 자가 주인이 아닌 세상은 인간의 역사에서 오래된 것이다. 주인과 노예, 영주와 농노, 그리고 자본가와 노동자로 그 모습은 다르지만 일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고 일하지 않는 자가 주인이라고 사업장의 운명을 결정하는 세상은 너무도 오래됐다. 농장·장원·공장·사업장만 다를 뿐이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둘째는 오래된 방식이 아니다. 대표를 세운다는 것은 어찌됐건 대표를 선임하는 행위가 있어야 했다. 직선이든 간선이든 일하는 인민이 한 선임행위라고 인정될 수 있는 절차가 있어야 했다. 이런 방식은 근대에 국가권력을 둘러싸고 봉건왕정과 시민계급의 투쟁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초기에는 부르주아 시민계급에 대한 과세를 둘러싸고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구호에서 모습을 드러내 근대국가의 모습이 됐고, 오늘은 부르주아 시민계급이 아닌 인민을 대표하는 것으로 변화됐다. 그래서 오늘 국가권력은 국가에서 인민의 존재형태인 국민의 대표로서 권력을 행사한다. 봉건영주를 적대해서 부르주아 시민계급이 투쟁해야 했던 나라에서는 경자유전의 원칙으로 봉건영주의 소유권을 박탈해서 일하는 농민에게 농지를 분배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제1항 등에서도 선언하고 있다. 한편 부르주아 시민계급의 지배는 상공업에서 보장됐다. 일하는 인민은 그가 일하는 곳이 농장인지, 아니면 공장인지에 따라 자영농민으로 신분이 달라지거나 노동자로 신분이 달라지지 않았다. 부르주아 시민계급을 주인으로 둔 노동자는 시민혁명 이후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선언한 헌법 아래서 근로계약을 통해서 여전히 자신의 주인에게 복종해야 했다. 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에서는 근대 이후에도 셋째의 세상이 계속돼 왔다. 거기서 노동자권리를 보호하겠다고 노동법을 제정해서 시행했다. 그러나 그것은 근로계약의 질서를 넘어서려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를 지켜 내려는 것이었다. 노동운동이 전개됐다. 추상적인 국민의 자유와 평등이 아닌, 구체적인 노동자의 자유와 평등을 외쳤다. 그렇게 노동운동은 100년·200년 달려 왔다. 그리고서 멈춰서 있다. 어디로 달려 왔던 것일까. 오늘 어디로 달려가야 하는가.

4. 1980년대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전개된 지도 벌써 30년이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노조운동은 대한민국이 건국될 때부터, 아니 건국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 동안 얼마나 노동자의 단결체로서 노동조합과 노조운동을 고민했었던가. 기업별노조냐 산별노조냐 이런 노동조합의 조직형태를 둘러싼 논의 말고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체로서 노동조합을 세워 내는데 무엇을 했던가.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 왔으니 해 오던 대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다른 나라 노조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 하는 대로 노동조합을 운영해야 한다고 해 왔던 것이 전부였다. 민주노총이 오늘 직선제 선거를 추진하는 것은 조합원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고민에서이기도 했다. 진정으로 조합원의 관심은 민주노총이 자신의 것이라고 자신의 집이라고 인식할 때 확보될 수 있다. 노동자의 관심이 점점 멀어져 가는 오늘,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이 노동자 자신의 집으로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운영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앞에서 살펴본 세 가지 모습을 두고서 고민할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