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

우리 몸의 기억능력은 동일한 병원균이 다시 인체에 들어왔을 때 이에 대해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항체를 만들 수 있도록 해 준다. 한 번 걸린 병에 다시 걸리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이 면역체계에 대한 기억을 통해 신속한 면역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 문제는 몸의 기억능력과 동일한 차원에서의 사회적 기억능력에 대해 회의하게 만든다.

경비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감시·단속적 근로에 해당해 2006년까지는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았다. 2007년부터 순차적으로 최저임금 적용률이 높아졌다. 2007년 70%, 2008년 80%, 2012년 90%를 적용했고, 내년부터는 100%를 적용하게 된다. 최저임금 적용으로 인해 최저임금 인상률과 적용률 상승을 합쳐 19% 정도의 임금인상 요인이 발생하게 된다. 각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비노동자 고용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경우를 이미 세 차례나 겪었는데도 여전히 경비노동자 대량해고 문제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아파트 경비원 고용안정대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24일 고용노동부가 대책을 발표했다. 왜 미리부터 대응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감시·단속적 근로에 대해 최저임금 적용을 논의했던 2006년부터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여러 차례 연구용역을 했고, 지금까지 세 차례 경험을 통해 고용동향과 대응책 효과를 파악하는 등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을 노동부의 늑장 대응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소위 얘기하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경비노동자 해고 문제에 대한 정부의 신속한 대응과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도 요구된다. 상당수 자치단체가 주택법에 근거한 ‘공동주택 지원조례’를 가지고 있다. 공동주택의 관리·안전 및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근거조항을 가지고 있고 일정 규모의 예산도 편성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관내 아파트 단지의 고용동향을 파악하고 경비노동자 고용유지를 위한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사회의 노력도 필요하다. 시민 두 명 중 한 명은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관리비를 내고 있고, 결과적으로 경비노동자와의 관계에서 사용자적 지위를 갖고 있다. 필요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에 대해 단순히 비용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천박한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아파트 거주자 다수가 스스로 노동자임을 감안할 때, 나의 노동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나의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를 위한 노동도 소중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인식적 성숙을 위한 사회운동을 기대해 본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경비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라는 좋은 사례가 ‘함께 사는 아파트 만들기’ 운동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확산돼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과 기부를 촉구하기 위해 연쇄적으로 얼음물을 뒤집어쓰던 이른바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해 좋은 아파트 만들기 사례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아파트 경비노동자에 대한 당장의 고용문제만이 아니라 감시·단속적 근로에 대한 법·제도 개선도 차제에 고민해야 한다. 고용이 유지되더라도 24시간 격일제 노동에,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짧은 시간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는 노동조건을 법·제도가 유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근기법 제63조에 따르면 감시·단속적 근로의 경우는 근로시간·휴게·휴일에 대한 규정을 적용제외하고 있다.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로 보기 때문이다(근기법 시행규칙 제10조).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감시적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택배관리·주차관리·교통정리·재활용 분리수거·민원 업무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격일제 교대근무라는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근로시간 상한을 적용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기타의 노동조건을 적용해야 한다. 근기법은 최저조건을 규정한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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