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근로자공제회

“의지의 한국인 아닐까요?”

발파전문가인 이재일(59·사진) ㈜정희씨앤씨 화약주임은 자신이 32년간 걸어온 건설노동자 생활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1979년 강원도 탄광에서 발파업에 발을 들인 후 아직도 현장에서 뛰고 있다.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과 5호선 굽은다리역, 불암산터널이 그의 손을 거쳐 완공됐다.

이재일 주임은 국내 발파기술이 형편없던 80년대와 90년대 외국에서 발파기술을 배워 국내 현장에 적용했다.

83년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에 착암공으로 취업한 이 주임은 대규모 도폭선(철선 형태의 폭약) 발파기술을 배웠다. 스웨덴 국적 화약기술자들이 그를 가르쳤다. 89년에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장에서 비전기발파 기술을 터득했다. 당시 국내현장에서는 쓰이지 않던 선진기술이었다.

이 주임은 국내외에서 다진 경험을 토대로 후진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그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2014년 건설기능인의 날' 기념식에서 철탑산업훈장을 받은 까닭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날 기념식이 끝난 후 이 주임을 만났다.

노동자에서 장인이 되기까지

- 32년 발파 인생을 살았다. 처음 착암공으로 취업했을 때 상황이 어땠나.


“사우디아라비아와 리비아에 갔다가 한국에 오니 한국 노동자들이 외국에서 쓰는 화약을 만질 줄 몰라 쩔쩔맸다. 중동에 가기 전만 해도 도화선을 이용해 폭발시키는 방식이 많이 쓰였는데, 돌아와 보니 전기발파 방식을 막 쓰기 시작했다. 발파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전기발파는 낙뢰가 칠 경우 전기간섭이 생겨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외국에서 발파기술을 제대로 배운 만큼 발파사고를 방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 사우디아라비아·리비아 건설현장에서 일했는데. 에피소드를 소개한다면.

“결혼한 지 75일 만에 사우디아라비아에 갔고, 작은 딸이 돌을 막 지났을 때 리비아에 갔다. 국내에서는 비전이 없으니까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참아 보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그런데 1년6개월 만에 돌아오니 작은딸이 언니를 따라 아빠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저녁을 먹고 나니 집에 가라고 하더라. 엄마랑 언니랑 자기랑 셋이서 지내다가 내가 같이 살게 된 걸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에는 마음이 짠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추억인 것 같다.”

사고 예방 "첫째도 둘째도 원칙 지키기"

- 발파작업 때 안전사고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돌에다 구멍을 뚫고 화약을 집어넣은 뒤 발파작업을 한다. 구멍을 잘못 뚫거나 안전수칙을 안 지키면 돌이 제대로 안 깨져 위로 솟구친다. 실제로 돌에 맞아 목숨을 잃는 건설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발파전문가가 발파작업 전반을 꼼꼼하게 관리하고, 안전수칙을 지키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그걸 지키지 않으면 사고가 생긴다.

93년에 화약류 관리기사 자격증을 땄고, 그 후 20년을 현장관리자로 일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안전의식이 많이 향상됐다. 그때는 안전화도 안 신고, 안전모를 쓰라고 하면 덥다고 벗고 그랬다. 지금은 노동자들이 직접 안전을 챙긴다. 물론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현장 분위기는 잘 안 바뀐다. 외국 건설현장에 가면 동남아 노동자들이 가장 빨리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다. 산업재해율 세계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급할수록 안전과 원칙을 지키는 문화가 현장에 뿌리내려야 한다.”

- 내년이면 정년이다. 은퇴준비는 했나.

“지금 가지고 있는 발파·굴착 관련 자격증만 다섯 개다.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지만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5개의 자격증을 땄다. 부지런히 살았다. 돌만 보면 어떻게 구멍을 뚫고, 폭발하면 어느 쪽으로 돌 쪼가리가 날아갈지 머리에 그림이 그려진다.

내년이면 정년이니까 중소규모 건설현장으로 가야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10년은 더 일할 생각이다. 상왕십리역·굽은다리역·배우령터널은 내가 직접 공사를 했던 현장이다. 배우령터널은 국내 최장 터널인데 그곳을 지날 때면 어깨가 으쓱으쓱해지곤 한다. 딸아이들한테도 자랑스럽다. 철탑산업훈장은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일을 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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