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 20미터 높이의 옥외전광판에서 고공농성 중인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조합원 임정균(38)씨와 강성덕(35)씨가 매일노동뉴스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편집자>

내가 여기 올라온 지 벌써 9일째다. 처음 올라오게 된 마음처럼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동지들의 생활고, 점점 힘들어지고 아파하고 지쳐 가던 동지들의 모습, 그 속에서 지고 싶지 않다던 몸부림까지….

나에게는 저항보다는 절규였고 슬픔이었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우리들의 모습을 봐 달라고. 죽어 가는 한 마리 짐승이 마지막 저항을 하듯이 살려 달라고 외치는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순리처럼, 아니 당연한 법칙처럼 여기는 것에 많이 화가 났고, 힘없는 인간은 이런 대접을 받고 돈 없는 인간은 희생을 당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보였나 보다. 난 공부도 못했고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장점은 있다.

생태계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최고의 포식자는 인간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난 최고의 포식자라는 표현보다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인간이라 생각하는 인간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과연 당신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어본 적도 없고 대답을 듣고 싶지도 않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최근에는 없었으니까. 잘못된 교육과 주입식 교육만 받아 온 내가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적이 언제일까. 그런 생각을 한 지가 몇 년 안 되기에.

난 이제는 질문을 할 수 있고 그 질문에 답을 설명할 수도 있다. 생태계의 최고의 자리는 물과 풀이다. 물과 풀이 없다면 모든 생명은 존재할 수가 없다. 즉 물은 노동자의 땀이요, 풀은 노동자다. 이것 없이 이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자본과 저들은 본인들이 잘돼야 우리가 잘되는 것처럼 교육시켰고, 그렇게 아직도 말하고 있다. 오염된 물과 말라 죽어 가는 풀을 먹는 동물들이 건강할까. 또 병들어 있는 동물을 먹은 그 육식동물은 건강할까.

아주 쉬운 생각이고 아주 간단한 일을 저들은 어렵게 만들고 어렵게 설명한다. 우리를 속이기 위해서. 난 이렇게 해고를 마음대로 하는 선진국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저들은 선진국 국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그 어떤 규제도 규약도 법안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해태할 수 있기 때문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모펀드에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케이블방송 노동자들은 예전에는 지역주민 분들과 어르신들과 항상 웃음으로 같이했고 정이라는 단어 속에서 보이지 않는 배려를 했다.

그것이 사라진 시점은 사모펀드가 이사회에 자리 잡고 노동자 삶을 갉아먹으면서부터다. 이러한 문제점을 먼저 인식한 게 씨앤앰 정규직지부였고, 정규직지부는 아웃소싱됐던 우리 비정규직지부에게 같이 살자며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남아 있던 자들의 호의 정도로만 생각했다. 버려진 자들의 마음은 닫혀 있었고 남아 있던 자들의 손을 거부했었다. 이 과정이 매년 되풀이됐다. 결국 진심은 통했고 같이하자는 행동으로, 모습으로, 실천으로 나타났다. 난 이 과정을 처음부터 봤고 지금도 보고 있다.

그렇기에 비정규직 조합원을 믿을 수 있었고, 정규직 조합원을 믿을 수 있었다. 이곳에 올라온 뒤로 이틀 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래에 조합원들이 있었지만 강제진압과 충돌을 우려해 긴장 속에서 그들을 보내야만 했다.

3일차부터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점점 모여드는 많은 대오와 조합원들을 보면서 가슴속에 불안과 미안함과 고마움이 터져 버려서 종일 울었던 것 같다. 동지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의문과 의심을 하고 있었던 내 마음이 미워서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믿음이란 의문과 의심을 하지 말라고 믿음의 정의가 바뀌는 순간이기도 했다.

8일차 되던 날 저녁 문화제 때 씨앤앰 쟁의부장의 말 한마디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아래는 저희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위 두 분은 저희를 믿고 편히 쉬세요.”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정규직지부가 또 있을까. 난 또 하나를 배웠다. 정규직지부와 비정규직지부가 이렇게 같은 동지라고. 연대가 아니고 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얼마나 있을까.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위의 생활이 힘들지만 나를 위해, 우리 둘을 위해 희생해 주는 조합원들의 무한애정과 사랑 때문에 힘들지 않다. 조합원과 여러 본조 간부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족이 있기에 참을 수 있는 것 같다.

편지 한 장 쓰고 이 선택을 했을 때 나에 대한 원망과 왜 당신이어야만 하는지 물어보던 집사람에게 사실 미안해서 말을 못했다. 내가 해서 행복하다고, 그 누군가가 나라서 행복하고 마음이 편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할 수가 없었다. 집사람의 심정이, 마음이, 생각이 어떤지 알기에 더욱 할 수가 없었다. 원망이 왜 없으랴. 왜 화가 나지 않겠는가. 미안함과 고마움에 집사람의 걱정스러운 잔소리는 나에게는 달콤한 속삭임이요, 애정 있는 넋두리처럼 들린다. 요즘 애들이 아빠 일 몇 개 하면 들어오는지 눈만 마주치면 물어본단다. 큰놈은 선물 좋은 거 사 준다고 말해서인지 아빠보다는 선물을 기다리는 눈치라고 한다. 둘째 딸은 극성이라고 한다. 아빠 보고 싶다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한두 개 정도는 아빠 줄 거라고 안 먹고 냉장고에 넣어 두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너무 밉다고, 어린것 때문에 속상하다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심장이 아프다. 다른 표현을 못하겠다. 정말 아프니까. 가족 생각은 될 수 있으면 이곳에서는 안 하려 한다. 아프니까. 마음이. 몸 건강하게 내려가려고, 위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할 수 있는 운동을 시작했다. 팔굽혀펴기, 토끼뜀, 제자리뛰기….

체력이 있어야 버티기라도 할 수 있으니까. MBK와 씨앤앰이 극단의 선택을 안 했으면 좋겠다. 여태껏 싸움의 방식이 기다림과 대화였다면 이젠 육탄전이다. 누구 하나만 죽고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둘 다 죽든지, 같이 살든지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

[부모님 전상서] 강성덕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조합원

아버지, 어머니! 말씀 못 드리고 올라와서 죄송해요. 지난 11일 동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동생도 결혼해서 제수씨가 임신까지 했는데, 장남이 돼서 35살 평생 아버지·어머니에게 속만 썩이는 불효자가 된 것 같아 너무 죄송합니다.

아버지! 전 아버지가 하신 "회사 생활은 남에게 미움받지 않게 항상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며 업무시간에는 몸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제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저를 지켜 주지 않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자본가들은 코 푼 휴지를 휴지통에 버리듯 저를 버렸습니다. 아버지도 제가 처음 노조에 가입한다고 했을 때 반대 많이 하셨죠? 저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더불어사는희망연대'라는 이름처럼 노조는 매년 사측과의 교섭에서 사회공헌기금을 확보해 지역주민을 돕고 있습니다.

'아래로 향하는' 노조에서 활동하면서 저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처음 노조에 가입했을 때 너무나도 당연히 지켜야 할 근로기준법 준수,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생활인금 보장을 외치며 싸웠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부당해고'였습니다.

저와 동지들은 부당해고에 항의하며 130일이 넘는 노숙농성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다녔던 회사에서 부당한 처우에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를 하셨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저 또한 부당한 처우에 맞서 싸우고자 이곳에 올라왔습니다. 22일이면 아버지 생신이시네요. 저를 낳아 길러 주심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그런 날에 저는 전광판 위에 있겠네요. 또 한 번 뷸효자가 됨을 용서해 주시고 파업투쟁에서 승리해 내려가게 된다면 아버지의 바람이자 제가 해 드릴수 있는 효도를 하기 위해 꼭 결혼을 해서 손주를 안겨 드리겠습니다.

어머니! 그제도 어제도 제 걱정에 눈물을 흘리시며 잠 못 이루시는 어머니…. 어머니가 못난 불효자인 저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우실까 봐 말씀 안 드렸는데, 어떻게 또 아셔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계십니까. 전화를 드리면 계속 눈물을 흘리시며 우셔서 가슴이 아픕니다. 전화를 드리기도 죄송하네요.

엄마! 두 아들 키우느라 정말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하신 우리 엄마! 제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도 걱정하시겠죠? 전 아래에 있는 동지들이 맛있는 밥과 반찬 잘 챙겨 줘서 삼시세끼 잘 챙겨 먹고 있습니다. 옷도 여러 겹 입어서 하나도 안 추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 꼭 아무일 없이 내려가도록 할게요.

2014년 11월20일 못난 큰아들 배상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