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원 공인노무사(노동부유관기관노조)

정부 산하 공공기관노조 정책실에서 일하며 종종 공공기관 임금교섭 자리에 들어가곤 한다. 그럴 때마다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은 사용자도 노동조합도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 뻔히 잘 안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앞에서는 직원복지와 근로조건 향상에 이견이 없다고 말하지만 정작 들어가 보면 기획재정부의 가이드라인과 정부의 방만경영 억제정책에 막혀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기재부가 단체협약 타결 요건까지 제시하며 노골적으로 개입하니 허튼소리도 아니다.

이를 잘 아는 노조 역시 대립각을 세우려 해도 도무지 각이 나오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벌어진다. 진짜 주인은 저 너머에 있는데 마치 ‘마름’과 마주 대하는 형국과 같다.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에서도 진짜 주인에 대한 논쟁이 최대 이슈였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엘지유플러스·씨앤앰 등 굴지의 업체들이 모두 열매만 취하고 주인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얼마나 우리 사회에 간접고용이 만연해 있고 그 피해가 산적해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렇다 보니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쟁취하려 해도 누구에게 달려가야 할지 그 대상조차 찾지 못하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근로관계를 사용자와 노동자로 대별해 놓고 그 위에 사용자가 지켜야 할 것과 노동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축으로 열거하고 있다. 그 둘은 대등한 권력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집단을 이뤄 대응하게끔 길을 열어 놓았다.

문제는 노동자는 있는데 그 주인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노동법이 노동현실을 뒤따르지 못하고 있으니 노동법을 고쳐 써야 할 판국이다.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최근 검찰이 세월호의 진짜 주인을 찾겠다며 호들갑을 떤 일이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청해진해운이 소유주지만 실제 주인은 따로 있다며 검찰이 열정적으로 주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아마도 그 기운과 방법을 그대로 모방한다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진짜 주인 나오라’는 구호가 허공에만 맴돌지 않을 성싶다.

근데 검찰의 수고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법원은 현대중공업의 부당노동행위를 판결하면서 직접적으로는 근로관계가 성립돼 있지 않더라도 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사실상 사용자에 해당할 수 있어 일정 정도 사용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익히 밝힌 바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흔히 공공부문의 단체교섭을 가리켜 아무 권한도 없는 대상과 헛심을 뺀다고 해서 ‘섀도복싱’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외국의 경우 공공부문의 임금 및 근로조건이 단체교섭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교섭이라는 것이 권한 있는 자와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더 이상 정부는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공공기관에게 그 권한과 책임을 모두 넘겨주고 팔짱 끼고 지켜보든지, 아니면 협상 테이블 맞은편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공공기관을 칸막이 삼아 권한은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어정쩡한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차제에 민간영역에서도 주인을 찾아 헤매는 시간을 줄여 주는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극구 내 것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것을 보면 때로는 물건보다 사람이 소홀히 대접받는 경우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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